누구나 한번 쯤 생떽쥐베리의 소설 '어린왕자'를 읽어 보았을 게다. 나도 중학교 때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열번은 넘게 읽은 것 같다. 그런 만큼 이 책이 주는 감동은 어쩌면 진부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을 수도 있다. 따라서 독후감처럼 이 작품의 줄거리를 나열하기보다는 글에 등장하는 감동적인 장면들을 중심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과 연결해 가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 보고자 한다.
먼저 떠올릴 장면은 왕자가 자기의 조그만 별에서 매일매일 물을 줘가며 기르는 장미꽃. 그러나 장미꽃은 그런 왕자의 사랑과 정성에 고마워하기보다는 짜증을 내고 불만만 토로한다. 우리네 인생도 그런게 아닐까?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소중함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무조건 고맙게, 그냥 순수하게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곡해하거나 무시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왕자는 자기 별을, 다시 말해 자기가 그렇게도 사랑하던 장미꽃의 곁을 떠난다. 우리들 중에도 사랑을 쏟던 대상이 자기에게 너무 소홀하게 대한다는 실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 대상에게서 스스로를 멀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왕자는 지구로 내려와서 수많은 장미꽃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 수많은 장미꽃들은 자신의 별에 있던 한 송이 장미와 대체가 불가능한, 아무 의미없는 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까운 사람에게 실망해 이리 저리 떠돌면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아도 진정한 내 사람, 관중과 포숙아 같은 친구를 만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도리어 진정한 사랑이라는 허상만 쫒다가 더욱 외롭고 쓸쓸한 골짜기에서 허우적대는 삶의 질곡으로 빠져 들게 되기 마련이다.
왕자가 사막에서 만나는 여우. 여우는 자기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길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길들인다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를 맞춰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자 살아온 환경이나 성격이 다른 우리네 인간관계에서 서로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려 자기가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관계맺기는, 특히 새로운 관계맺기는 지난한 인내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왕자가 지구에서 만나는 여러 군상들. 술주정뱅이, 수학자, 점등하는 사람 등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인간들이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고 진정한 친구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왕자는 자신이 떠나온 별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 한번뿐인 인생이기에 어떤 한 길을 선택하게 되면 또 다른 길을 가 볼 수 있는 방도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왕자는 자기가 떠나온 별로 돌아가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한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이 장면이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뱀의 독을 빌어 육체는 지상에 남지만 영혼은 자신이 떠나온 별로 돌아가는, 어린왕자가 모래언덕 위에서 그림자처럼 슬며시 쓰러지는 장면 말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라는 배경은 고단한 우리들 인생의 여정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캄캄하고 광막한 하늘에 별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듯이 우리들은 누구나 가슴속에 꿈이라는 별 하나를 품고 살아간다. 별을 딸 수 없듯이 우리들의 꿈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삶이라는 사막 위에서 별을 바라보면서 걸어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