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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Jun 25. 2022

달리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무엇이든지 달리는 모습은 아름답다.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스포츠카, 트랙을 도는 육상선수, 푸른 초원을 질주하는 야생마..... 그들의 몸매는 얼마나 날씬하며, 튕겨져 나갈 것 같은 근육은 얼마나 단단하며, 전방을 응시하는 눈매는 얼마나 날카로운가. 거기에는 꿈틀거리는 생명이 있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에너지가 넘친다.


  만일 당신이 무기력과 나태함으로 반복되는 일상사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거리로 나서 보라. 그리고 탁 트인 대지와 하늘을 향해 가슴을 열고 바람처럼 달려 보라.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라톤이 주는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나는 마라톤에 입문한 지 15년 된 베테랑이다. 오래 전부터 테니스에 빠져 거의 매일 테니스장에 나가 살다시피 했는데, 공을 치러 나가려고 하면 비가 내리거나 구장이 안 좋아서, 별 생각 없이 해안도로를 5km 정도 뛰어 보았다.


  몇 번 해보니 비가 와도 상관 없고, 같이 운동할 파트너 구하느라 고민할 필요 없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엄청난 운동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재미를 붙여갈 무렵, 벌써 몇 년째 마라톤을 계속해 오던 박샘이 마라톤도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니 클럽에 가입하라고 권하면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나는 아무 옷이나 입고, 그냥 뛰면 되는지 알았는데, 마라톤도 다른 운동처럼 법도가 있다는 걸 알았다.


  마라톤 전문화를 새로 사고, 복장도 얼추 갖추었다. 연습을 할 때는 속옷을 전부 벗고 맨몸에 런닝복을 입어야 하고, 시작할 때와 끝날 때는 반드시 몸풀기를 해야 달리기 부상을 피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월 1회 정도 대회에 참가해야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게 되고 자기 기량을 점검할 수 있다고 해서 ‘삼천포 노을마라톤대회’ 하프코스에 처음 참가하였다. 시작한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우리 마라톤클럽의 코치격인 김샘이 “마라톤 한두 달 하고 말 거냐?”고 10km만 뛰라고 말렸지만 “뛰다가 힘들면 걷지 뭐.” 하는 심정으로 도전했다.


  다행히 박샘이 처음부터 반환점을 돌 때까지 계속 함께 뛰면서 격려를 해 줘서 큰 힘이 되었다. 15km 정도는 별 어려움 없이 갔는데 거기서부터가 문제였다. 발목이 끊어지는 것처럼 아프고, 무릎의 뼈들이 서로 맞부딪치는 것 같았다. 목과 허리까지 결리는 바람에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진행요원들에게 수도 없이 파스를 뿌려 달라 하고,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였다. 2km 정도를 남겨둔 지점에서의 거리 개념은 정말 10km보다 멀게 느껴졌다. 시간뿐만 아니라 거리도 상대적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겨우 골인 지점을 통과하니 2시간 20분을 넘기고 있었다.


  대회 날은 그렇게 힘들었지만 일주일 쉬고 나니 몸이 거의 회복되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달에는 ‘곡성 심청이 마라톤대회’ 하프 코스에 등록했다.  이번에는 걷는 일 절대 없이 정상적으로 달리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 날 풀코스를 신청했던 남샘이 갑자기 집에 일이 있어서 참가를 못한다고 하였다. 욕심이 났다. 내 번호를 버리고 그 번호를 달았다. 하프나 풀이나 별 차이가 있겠는가 하는 마음이었다.


  이번에도 박샘이 출발부터 계속 옆에 있으니 안심도 되었다. 4시간 15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서 반환점까지는 힘들이지 않고 쉽게 돌았다. 섬진강의 맑은 물줄기와 길가에 활짝 피어 있는 코스모스, 청명한 가을 하늘.....  조건도 너무나 좋았다. 그런데 30km 정도를 지나면서 몸에서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아직 12km나 남았는데 말이다. 뛰다가 걷다가, 쭈그리고 앉아 스트레칭을 하는 등, 이를 악물고 버텼다. 골인 지점을 통과하니 무려 4시간 53분 54초. 몇 분만 더 걸려도 제한 시간 5시간을 넘길 뻔 하였다.


  풀코스를 완주하고 나니 후유증에서 벗어나는데 2주나 걸렸다. 혹시 뼈가 잘못된 게 아닐까 걱정되어 병원에 가볼 생각도 했다.


  이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알아서  ‘하동 백사청송 마라톤대회’에서는 당초의 풀코스 계획을 바꿔서 하프를 신청했다.


  이번에는 한번도 걷지 않았다. 별로 힘들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고 지극히 정상적으로 달려서 1시간 53분 01초로 여유 있게 골인하였다. 이제 나도 마라톤을 좀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달리면서 느끼는 쾌감을 사랑한다. 그리고 동류의식이랄까. 길에서 뛰어가는 사람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것이 비록 안 좋은 일로 급히 뛰어가는 일일지라도.....


  “무슨 재미로 마라톤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에게는 해 줄 말이 너무 많다. 건강증진은 물론이고, 스트레스 해소, 날렵한 몸매 가꾸기,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런 모든 이유보다도 나는 달리는 것이 좋아서 마라톤을 한다. 달리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누군가 달려가는 모습만 눈에 띄어도 나는 가슴 속이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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