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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Jul 22. 2022

성자가 된 청소부

십여 년 전에 인도의 명상을 다룬 책들이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 한동안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성자가 된 청소부”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하도 오래 전에 읽은 책이고 어떤 사건을 줄거리로 하여 엮어낸 소설류가 아니라서 그 내용은 거의 생각나지 않지만 학교 생활을 하면서 “성자가 된 청소부”라는 책제목만은 자주 떠오르곤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학교에 근무하는 한 선생님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문예실은 교무실이나 서무실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불편한 점도 많지만, 조용하고 특히 산과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창이 있어 좋다. 이곳으로 사무실을 옮긴 후에 틈나는 대로 창 밖의 풍경을 한가롭게 감상하는 것이 어느새 취미로 되어버렸다. 그때 자주 내 시야로 들어오는 것이 바로 그 선생님의 모습이다. 양복이나 와이셔츠 차림으로 왼손에는 휴지통, 오른손에는 집게를 들었다. 햇볕에 그을려서 그런지 얼굴은 까맣고 바닥만 보고 다녀서 그런지 어깨와 허리는 구부정하다. 그리고 언제나 바쁜 표정으로 주위를 살펴본다.


그분의 학교 생활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청소로 시작해서 청소로 끝난다. 길바닥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지 않은가? 복도 바닥에 얼룩이 지지 않았나? 화장실 주변에 휴지가 널려 있지 않나? 교실의 비품이나 게시물은 잘 정리되어 있는지.... 수업이 없는 쉬는 시간이면, 흐트러지고 지저분한 곳을 찾아 학교 건물의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닌다. 아마도 그분만큼 우리 학교 건물의 구석구석을 손바닥 보듯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나는 가끔 학교 전체가 잘 정돈되어 있고, 티 하나 없이 깨끗하면 그 선생님은 뭔가 허전한 느낌을 갖지나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특별실 한 구석에 쑤셔 박혀 있는 쓰레기 더미를 찾아내면서, 화장실 문짝이 학생들의 장난으로 부서져 버린 것을 만져보면서, 그 분은 끓어오르는 도전의식과 새롭게 솟아나는 삶의 의욕을 되찾곤 하는 게 아닌지....


그런데 우리 학교의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은 학교 환경을 깨끗이 하는데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우리들은 그 분의 마음 씀의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례로 교실과 복도의 바닥을 살펴보자. 그 분은 교실이나 복도의 바닥이란 사람에게 있어서 얼굴과 같다고 생각하시는지 그곳에 대한 정성이 남다르다. 그래서 학급마다 홈스타를 그야말로 넉넉하게 공급해 주고, 아침마다 각 교실을 돌며 바닥과 벽에 묻은 얼룩을 제거하도록 학생들을 독려하고, 손수 물걸레에 홈스타를 묻혀 바닥 곳곳을 문지르곤 한다. 그 분이 한바퀴 돌고 난 다음의 복도는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마친 아이의 얼굴처럼 환하게 빛난다.


하지만 몇 시간만 지나면 그곳은 또다시 학생들이 남긴 슬리퍼 자국으로 더럽혀지곤 한다. 그런데 그런 슬리퍼 자국이 정상적으로 활동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걸을 때 사뿐사뿐 걷지 않고 발에 힘을 주어 찍찍 끌거나 막 뛰어가다가 갑자기 멈출 때, 서로 장난치느라 벽을 걷어찰 때라야 그런 자국이 생기는 것이다. 만일 우리 학교 학생들 모두가 그분의 정성을 만분의 일이라도 생각한다면 이런 슬리퍼 자국 정도는 금방 사라지리라 믿는다.


나는 아침에 학교를 돌아다니다가 학생들 몇몇이 교실이나 복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물걸레질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다. 이것은 어쩌면 이 글의 주제와는 상충되는 문제일 수도 있다. 바로 이렇게 열심히 바닥 청소를 하는 것이 오히려 학생들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서 바닥의 얼룩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홈스타의 옆면을 읽어보면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십시오”, “피부에 닿거나 눈에 들어간 경우에는 물로 잘 씻은 다음 의사와 상의하십시오.”“사용시에는 고무제의 손장갑 또는 수세미를 사용하십시오.” 등, 몇 가지 주의 사항이 부착되어 있다. 화학 방면에 문외한 나로서는 이 세정제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증명할 방도가 없다. 그러나 자사 제품의 안전성을 옹호하는 것이 당연한 업체에서 이런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는 것은 이 제품이 인체에 해로운 것이라는 데 재론의 여지를 없애고 있다. 우리 학생들은 이 홈스타를 얼룩이 진 바닥의 곳곳에 마구 뿌려 놓은 다음 손걸레로 문지르고, 수도에 가서 대충 빨아 두었다가 다음날 또 그런 일을 반복한다.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걸레질을 하는데다가 청소하던 중에 수업시작종이라도 나면 손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교실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홈스타의 성분 분석 표시를 보면, 연마제가 44%로 나와 있다. 연마제란 다른 물체의 표면을 깎아 내기 위해 단단한 석영이나 유리를 미세한 가루 상태로 하여 만든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교실과 복도에는 얼룩을 지우는 과정에서 생겨난 연마제 가루가 무수히 남아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가루가 말라서 공기 중에 떠돌고, 특히 겨울철에 환기를 시키지 않는 실내에서는 그것이 누구의 호흡기로 들어가겠는가? 이건 그 약품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보다 더 좋지 않다.


이렇게 볼 때 결국 깨끗한 환경의 문제는 곧바로 우리들의 건강한 삶의 문제로 귀결된다. 태풍 경보를 무시하여 소리도 앞 바다에서 좌초된 시프린스호의 기름유출이 우리의 환경에, 나아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우리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우리가 학교의 환경에 무관심할 때, 우리 모두의 건강한 학교생활 또한 보장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리 학교의 건물이나 시설이 전국에서 제일이라고 자랑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겉보기에 번지르르한 것보다는 그 속에서 생활하기에 쾌적하고 편리한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겠는가?


우리 이제부터 휴지 하나 버릴 때도, 몇 발자국 떼어놓을 때도 우리의 환경을 생각하자. 우리 모두 성자가 된 청소부의 마음으로 우리 학교, 우리 사회를 가꾸어 나가자.


얼마 전 우리 집 꼬마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해안 도로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아빠, 누가 바다에다 쓰레기를 저렇게 많이 버렸어? 나쁘다. 그지?”


눈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니 어민들이 양식을 위해 죽 늘어놓은 부표들이 하얗게 떠 있었다. 난 아이에게 그걸 설명해 주면서 가슴에 와 닿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하나의 명제를 계속해서 되뇌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깨끗한 자연 그대로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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