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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Jul 19. 2022

사라진다는 것

오늘 또 하루를 마감하면서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말을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겨버린 요즈음은 더욱 깊이 느끼곤 한다.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이제 더 이상 발전할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데서 오는 자괴감일까?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적게 남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착이 예전보다 더 커졌다.


푸르름을 잃고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낙엽들, 해지거나 유행이 지나 버려지는 옷들, 쓸모가 없어진 구닥다리 가구며 가전제품들, 뿌연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폐지공장으로 가는 책들, 그리고 이런 덧없는 것들을 놓칠세라 꼭 움켜쥐고 아둥바둥 살아왔으나 결국은 빈손으로 가야만 하는 우리네 인생들......


나에게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상념에 젖어들 때마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기억 저 밑바닥에 찍혀 있는 유년 시절의 사진 한 장이 있다.


기와집.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집을 아무 집에나 붙일 그런 일반적인 명칭으로 불렀다. 강원도 영월. 읍내에서 걸어서 한나절은 가야 하는 산골에 그 집은 있었다. 100여 가구쯤 되는 마을 한복판에 위치한 그 집은 그곳에서 유일하게 두껍고 까만 기와로 지붕을 얹고 수십 칸의 방을 가진 그야말로 고래등같은 기와집이었다.


우리네 집들은 볏짚이나 아니면 드물게는 얇은 돌을 지붕 위에 덮고 초라하게 그 집을 바라보며 엎드려 있었다. 볏짚을 엮어서 기둥에 고정시킨 후 그 위에 흙을 바른 벽, 그 위에 겨우 덧씌워진 누런 벽지, 온돌 위를 덮은 흙바닥에 깔린 엉성한 돗자리, 그리고 몇 년이나 묵은 지붕에서는 갈색 벌레가 끊임없이 기어 나왔고, 구멍이 숭숭 뚫린 손바닥만한 창호지 문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술술 묻어 나왔다.


그런 형편이었던 우리네 눈으로 볼 때 그 집은 당시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와 있는 복숭아꽃 만발한 거인이 사는 집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몇 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큰 그 집이 차츰차츰 헐려 나가고 있었다. 맨 먼저 기왓장이 뜯겨져서 길가에 차곡차곡 쌓였다. 1 장 나르는데 1 원인가 준다고 하여 우리 조무래기들은 눈깔사탕 하나 사먹을 욕심에 겨우 한두 장 등에 지고는 먼길을 낑낑대며 걸어갔다.


몇 해에 걸쳐서 그 집은 조금씩 헐려나가 우리 집이 그 마을을 떠날 무렵에는 본채만 하나 달랑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오래도록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집엔 묘하게도 어린아이 하나 없이 호호백발의 할머니와 환갑을 앞둔 부부, 그리고 스무 살쯤 된 병약한 아들 하나가 살고 있었다. 어느 겨울밤, 그 할머니가 꿀을 너무 많이 먹고 취해서 안방에 놓아둔 불을 벌겋게 피운 화로에 주저앉은 것이다. 살 타는 냄새가 집안에 진동하여 사람들이 달려갔을 때에는 이미 엉덩이가 새까맣게 타버린 후였다. 그 할머니는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두고두고 그 집의 무거운 짐으로 남지 않았나 싶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집이 읍내로 이사를 한 후 나는 생활에 파묻혀 한동안 그곳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직장 생활을 하던 중 불현듯 솟아오른 추억의 힘에 이끌려 그곳을 찾았다.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강, 강가에 서 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리고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과 언덕은 그대로였지만 그 안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은 변해버렸다. 내가 4 년 동안 다녔던 양철지붕과 판자 벽으로 지어진 초등학교는 새하얀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어 있었고, 초가집은 몽땅 슬레이트로 지붕개량을 했거나 아예 벽돌로 새로 지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고래등같이 당당한 모습으로 주위의 집들을 위압하던 그 기와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엔 얇은 블록 벽에 유치하도록 빨간 기와를 얹은 초라한 건물 하나만이 달랑 서 있었다. 그 집은 필시 옛날 집이 있었던 자리이거나 마당이었을 듯 싶은 터무니없이 넓은 텃밭 한가운데에 생경한 느낌을 주며 그렇게 엉거주춤 서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곳에 서서 지나가 버린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여름이면 하루종일 발가벗고 누비던 강, 밤이 이슥하도록 술래잡기며 깡통차기며 땅따먹기로 우리들의 발자국이 수없이 찍히던 학교 운동장, 진달래꽃을 따거나 소나무 새로 난 어린 가지를 벗겨서 먹으며 헤매던 뒷동산, 그리고 기운 곳이 성한 곳보다 많던 양말짝, 좀더 환한 불빛을 내려고 매일같이 정성스럽게 닦곤 하던 남폿불의 유리, 그 남폿불에 둘러앉아 속옷을 벗어 뒤집고는 보리쌀처럼 살이 오른 이를 사냥하느라 온통 빨갛게 변하곤 하던 엄지손톱, 날이면 날마다 끼니로 먹는 옥수수가 지겨워 그 위에 고추장을 얇게 발라 뜯어먹는 형편이었지만 왕성하기만 하던 식욕.......


어찌 생각하면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부끄럽고 비참했던 과거의 장면들이지만, 가슴 저 한 구석에서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차 오르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치기 어린 감상은 아닐 게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그 때를 아십니까’란 프로를 방영하여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처럼 지나가 버린 과거를 떠올려보는 우리들의 가슴 밑바닥에는 묘한 애정이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과거란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삶이었고, 지금의 우리를 존재하게 한 바탕이 된 때문이 아닐까?


사라진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이든, 우리 주위를 떠나버리는 모든 것들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그곳 영월에 큰 댐이 들어선다는 기사가 나와 있었다. 댐이 완공되면 그나마 남아있는 것마저 모두 수몰될 처지다.


이래저래 우리는 점점 더 고향을 잃고 방황하는 고독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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