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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Jul 30. 2022

다시 찾아온 오인방

지난 겨울 대입 결과가 발표되던 날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3년 전 중3 때 담임을 맡았던 고3 졸업반 여학생이었다. 그 아이가 이름을 밝히자 내 머리 속에는 그 아이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 5명의 얼굴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아! 그 오인방.


그랬다. 그들은 그 당시 제철중학교 졸업반의 유명한 오인방이었다. 고입시가 시행되던 때라 아침자율학습부터 보충수업과 야자까지 담임은 하루종일 반 아이들을 감시하고 오직 공부만 하도록 독려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 때 우리 반에 공부시간, 자율학습 시간, 쉬는 시간 등, 항상 붙어 다니는 여학생 5명이 있었다. 급기야 매점에 갔다가 늦는다거나 수업시간에 쪽지를 돌리고 자율학습 시간에 서로 눈짓을 하는 등, 그 정도가 심해 담임으로서 통제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다섯 명은 성적이 전교 500여명 중에서 20등부터 400등 정도까지 다양하고 성격도 각각이라 우리 보통 어른들 생각에는 그렇게 붙어 다녀봐야 좋을 게 없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내가 그 애들을 떼어놓으려고 시도한 이유는 그들이 반 분위기를 해치는 면도 있었지만 그 보다 그들 중에 성적이 제일 낮은 아이가 모의 고사 등, 자료를 분석해 볼 때, 이 상태로 가면 제철고에 떨어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덜 어울리도록 하려고 개별면담, 전체면담으로 지도하기 시작했다. 사정도 하고 매를 들기도 했지만 안 되어서 부모들까지 불러서 협조를 구했지만 그들은 죽어도 서로 떨어질 수 없다고 버텼다.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맹세도 했다. 고 입시에서 그들 중 4명은 제철고에 합격했지만 1명은 낙방해서 1시간 정도 버스를 타야 하는 곳으로 진학해야만 했다.


그리고 3년이 흐른 뒤 그들 중 한 명이 전화를 걸어 학교로 찾아오겠다고 한 것이다. 숙녀 차림의 다섯 명과 휴게실에 둘러앉고 보니 삼 년 전의 아웅다웅하던 교실에서의 다툼들이 그저 즐거웠던 추억으로 떠올라 왔다. 어느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다들 각각이다. 3년 전 1명이 떨어져 나갔던 것이 이젠 모두 찢어져 각자의 길을 걸어 나갈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다.


요즘도 나는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손잡고 서로를 마주보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애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 그들은 그 먼 각각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서로 떨어지지 앉으려고 얼마나 애를 쓰며 살아갈까? 이번에 그들이 함께 나를 찾아 온 것은 어쩌면 이제 서로 떨어져야만 하는 오인방의 마지막 불꽃을 밝히려는 몸부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점점 나이를 먹어 가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지만 또한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도 겪어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어느새 우리 아이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 간다.


그들이 중3 때 가졌던 필사적인 우정이 앞으로 각자가 만들어 가는 삶에서 힘과 용기를 솟게 하고, 힘들고 외로울 때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면 그들을 떼어놓으려 애썼던 나의 실책을 흐뭇한 미소로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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