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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bel Sep 16. 2024

Was machen Sie beruflich?

무슨 일을 하시나요? 

나의 꿈은 무엇일까?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온 이 말속에는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를 묻는 거였다. 

좋아하는 일을 적는 게 꿈이지, 하며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화가'라는 단어를 칸에 적어 넣었다. 

십 대 때는 잘하는 걸 하다 보니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입시미술을 하다 보니 어느새 예술대학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만드는 걸 참 좋아한다. 이리저리 만지면서 형태를 이뤄가는 조형도 좋고, 손 가는 대로 끄적이는 드로잉도 좋고, 시선을 보여주는 사진도 좋다.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하는데 제약이 따른다. 형태를 만들 때에는 비율이 맞는지 봐야 하고, 끄적인 드로잉은 왜 그렇게 표현한 건지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사진을 찍을 때에는 구도를 신경 써야 한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좋아하는 게 싫어진 건 아니지만, 순수하게 즐겁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워진 건 아니었을까.


그림을 그리면서 내게 가장 좋았던 부분은 나의 한 조각을 내보냄으로 마음의 짐들을 덜어낼 수 있다는 거였다. 

단순히 사물을 묘사하는 드로잉을 할 때, 온전히 관찰하는데 보내는 시간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사물이 아닌 내적풍경들을 그려낼 때에는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을 이미지로 풀어내는 것이 정신적인 피로해소에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이미지를 다시 언어로 해석해야 한다는 부분은 다시금 어려움을 겪게 했지만 말이다. 


한 교수님이 어느 날 강의에서 말씀하셨다. 보통 사람들은 직업과 취미를 따로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예술가의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는 취미인 예술을 통해서 경제적인 소득을 얻기 때문에 , 다른 취미를 갖는 것이 정서적으로 필요하다고. *취미 : 인간이 금전이 아닌 쁨을 얻기 위해 하는 활동 즉,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사실 오랜 시간 동안 그 말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했는데, 최근이 되어서야 조금씩 의미를 이해하는 것 같다. 


미대 졸업 이후에 나는 독일로 유학길을 올랐다. 미술대학을 들어가서 그림을 좀 더 배울 생각이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 좀 달랐다. 그림으로 경제활동이 언제 가능해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병행이 가능한 무언가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아우스빌둥을 접하게 되었다. 인턴십을 하는 과정에서 가구 만드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했다. 그림 말고도 이렇게 재밌는 게 있구나, 실용적인 예술/공예는 또 색다른 세계네.  그렇게 나는 목공아우스빌둥을 시작해 지금은 정식목수로 일을 하고, 내년에는 마스터학교를 앞두고 있다. 


독일에 와서는 사실 그림을 매일 그리지는 않는데, 어릴 때 아무 생각 없이 그 시간을 즐기는 것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림뿐만 아니라 조금씩 만들기도 다시 하고 있다. 어렸을 때 적은 꿈처럼 화가가 된 것은 아니지만 '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가구를 만드는 일도 좋고, 집에서 그림도 그리고, 때때로 카드나 장식품을 만들어 선물하는 일도 즐겁다. 이런 게 바로 내가 꿈꿔왔던 건 아니었을까. 


독일에서든 한국에서든 아직까지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자가 목수일을 한다고 놀라는 사람들도 있고,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도 흔하다. 예전에 외국에 있는 한식당에 갔는데 거기 주인분이 여기서 무슨 일 하시냐고 해서 목수라고 답하니 막노동하시냐고 물어봤다. 가구를 주로 한다고 하니 그럼 가구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셔야죠 하며 웃으셨다. 나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야 하며 넘겼지만 그 순간이 오랫동안 마음에 걸렸다. 반면에 목공을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같이 무언가를 만들거나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도 많은데 직업으로 목수가 아니더라도 목공일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나 유럽은 집에서 스스로 집을 고치고 인테리어도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그분들은 진심으로 이 일이 얼마나 본인들을 행복하게 하는지 여러 번 내게 들려주었다. 


화가가 되지 않아 후회하지 않을까?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창작활동을 한다. 세상에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다. 결국 예술이라는 것도 보고 듣고 느끼며 행복해지는 것 아닐까. 대학생 때 이런 질문을 한적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그리는 게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잡고, 그걸 깊게 파고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것도 관심이 가고 저것도 관심이 가요.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교수님은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구슬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 가지각색 구슬을 만들다 보면 언젠간 하나의 목걸이로 연결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거야. 그때가 되면 하나로 엮인 전체를 볼 수 있는 순간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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