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에서 태어난다


"쟤는 왜 저래?"

초등학교 3학년 때, 체육 시간이었다.

나는 달리기를 하다 넘어졌고,

무릎이 까진 것보다 더 아팠던 건

친구들의 웃음소리였다.


그 이후였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두려워졌고,

작은 실수도 ‘망신’처럼 느껴졌다.


그땐 몰랐다.

그때 내 안에서 수치심이 자라기 시작한 줄은.


수치심은 참 이상한 감정이다.

명확한 이유 없이 찾아오고,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무너진다.


무언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틀렸어. 내가 부족해.’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리고 그 감정은,

누군가의 시선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 부모가 한숨을 쉬며 던졌던 말,

"너는 왜 항상 그렇게…"

칭찬은 아껴도 지적은 쉽게 하던 선생님,

단체 사진에서 혼자 겉돌던 느낌.

이 모든 것들이 마음속에서 ‘나’에 대한 기준을 만들었다.


그 기준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남들이 정한 기준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나 자체가 부끄럽다’는 감정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수치심의 정체다.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 방식 자체가 틀렸다"는 감각.


수치심은 무서운 감정이다.

그것은 사람을 조용히 움츠리게 만든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고,

시선을 피하게 하며,

관계에서 한 걸음 물러서게 만든다.


그런데 상담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감정을

죄책감과 혼동한 채 살아간다.

“내가 잘못한 것 같아요.”

“그때 제가 그랬던 게 아직도 마음에 걸려요.”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그 감정은 종종 이렇게 바뀐다.

“그때, 내가 너무 부끄러웠어요.”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라나지만,

그것을 치유하는 건

나 자신의 시선이다.


"나는 그때 최선을 다했어."

"그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었어."

"그 순간의 나도 괜찮았어."


그렇게 자신에게 말해줄 수 있을 때,

조금씩 마음이 펴진다.

타인의 평가 대신

내 안의 목소리를 믿게 된다.

수치심은 줄어들고,

대신 자존감이 조용히 숨을 쉰다.


이제는 안다.

누구의 시선도,

내 존재를 부끄럽게 만들 권리는 없다는 걸.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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