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


가끔은 그런 날이 있다.

분명히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눈앞의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책을 펴도 글자가 들어오지 않고,

전화벨이 울려도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뭔가 잘못된 걸까?

아니, 그냥 내가 게으른 걸까?

그 생각만 자꾸 맴돈다.


하지만 이상하게

몸은 느리고, 머리는 무겁고, 마음은 텅 비어 있다.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

억지로 움직이려 해도

바닥에 깔린 무게가 쉽게 일어나게 두질 않는다.


어느 날, 내담자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요즘은 양치하는 것도 힘들어요.

그게 그렇게 큰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혹시, 마음이 지쳐 있는 건 아닐까요?”


사람은 신체 에너지가 다 떨어져도 눈에 보이지만,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땐

대부분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마지막 신호일 수 있다.


그럴 땐 억지로 일하려 애쓰기보다

잠시 멈추는 용기가 필요하다.


의자를 뒤로 밀고 창밖을 바라보거나,

마실 물 한 잔을 천천히 입에 머금고,

‘이대로 괜찮다’고

속으로 조용히 말해주는 거다.


무언가를 해내야만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감정과 리듬을 가진 생명이기에

때론 멈추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오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

그건 마음이 숨 쉬려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저 그 시간을

조용히 지나가게 두면 된다.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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