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시간의 틈을 헤맨다


불안은 언제나 ‘지금’보다 한 발 앞서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말하지 않은 대화, 결정하지 않은 선택에

그 누구보다 먼저 반응하고 걱정하고 상상한다.


불안은 늘 미래형이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먼저 가 닿아

그곳의 그림자를 가져와 지금의 감정을 흔든다.

결국 나는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들 때문에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 온다.


불안은 나를 살게도 하고,

나를 갉아먹기도 한다.


누군가는 불안이 있어야 준비된 삶을 산다고 말하지만,

나는 준비를 하려다가

끝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불안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삶의 방향을 바꿔놓는다.

더디게 걷게 만들고,

지레 겁을 먹게 하고,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만든다.


가장 무서운 건,

불안은 논리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괜찮을 거야”라는 말보다

“혹시라도 안 되면 어쩌지?”라는 말이

훨씬 쉽게 믿어진다.


불안은 내 안에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척 말하고,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내 과거를 꺼내오고,

이성이라는 탈을 쓰고 내 감정을 흔든다.


그래서 한 발 내딛는 일이,

말 한마디 꺼내는 일이,

그렇게 어렵다.


불안은 시간의 틈에 머무른다.

지나간 후회와

다가올 걱정 사이의 회색지대.


그곳에서 사람은 자주 길을 잃는다.

마음은 지금 여기에 있지 않고,

몸은 한참 전에 멈춰 있거나,

머리는 멀리 앞서 달려가 있다.


그렇게 분열된 시간 속에서

내 마음은 늘 어딘가 허공을 딛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불안을 없애려 할수록

그것은 더 또렷해진다는 것을.

불안은 없애는 감정이 아니라,

살펴보고 다독여야 할 감정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불안이 몰려올 때마다

“또 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거야?” 하고

조용히 들어주기 시작했다.


그제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불안이 자리를 줄였다.

나도 모르게 한 칸, 한 호흡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지금도 불안은 여전히 나를 찾아온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감정은 나를 망가뜨리려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려는 방식이었음을.

어쩌면 서툴고, 조급하고,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

그 이름으로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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