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로 사고 안 치는 아이였어요. 그냥, 잘 웃고, 말 잘 듣고, 분위기 안 망치려 했죠.” 이 말을 하는 그녀는 어느새 쉰을 넘긴 중년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투는 마치 아직도 어린아이 같았다. 애써 웃고 있었지만, 그 눈빛엔 오래된 질문 하나가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착하게 살았는데… 왜 나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죠?”
열등감은 비교에서 시작되기도 하지만, 더 깊은 뿌리는 “사랑받기 위한 전략”으로서의 착함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울면 짜증이라고 하고, 화내면 버릇없다고 하고, 싫다고 말하면 눈빛이 차가워진다는 걸. 그래서 그 아이는 선택한다. 감정을 누르고, 입을 닫고, 웃는 아이가 되기로.
가상의 인물 '하윤'은 초등학생 때부터 ‘어른들이 좋아하는 아이’였다. 학교에선 모범생이었고, 집에선 동생을 잘 돌보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혼자 울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그냥 피곤해서요”라고 대답했다. 성인이 된 하윤은 인간관계에서 늘 긴장하고, 실망당할까봐 끊임없이 맞춘다. 감정이 차오를 때조차 상대의 기분부터 살핀다. “내가 이래도 괜찮을까?” 그 질문이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속 '기쁨이'는 슬픔이를 밀어내며 아이의 감정을 통제한다. 슬픔이의 역할이 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밝고 긍정적으로 만들려 한다. 그 결과 주인공 라일리는 자신의 진짜 감정을 외면하게 되고, 결국 정서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한다. 기쁨만을 강요받은 아이는 슬퍼할 줄 모르는 채로 무너진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도 이 흐름을 품고 있다. 영우는 비범한 지능을 가졌지만, 끊임없이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존재일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에는 슬픔과 동시에 오래된 배려가 묻어 있다. “내가 문제를 만들지 않아야,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줄 거야.” 바로 그것이 착한 아이의 내면이다.
이런 아이들은 대체로 ‘문제행동’이 없다. 그렇기에 어른들은 말한다. “얘는 손이 안 가. 참 고마운 아이야.” 하지만 그 말은 때로 아이에게 이렇게 들린다. “네가 괜찮은 애니까, 나는 널 힘들게 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너도 절대 나를 힘들게 하면 안 돼.”
문제는, 그 착함이 아이의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는 점이다. 사랑받고 싶어서, 버려지기 싫어서, 혼나지 않기 위해 감정을 숨긴 결과가 ‘착함’이었다면 그 아이는 결국 자신의 감정이 틀렸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어른은 자신에게조차 진심을 허락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가상의 인물 ‘재혁’은 회사에서 늘 “착한 사람”이었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무례한 상사의 말도 웃으며 넘긴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 일도 아닌 듯한 말에 주먹을 쥐고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를 부여잡고 울었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착한 게 아니라, 참아온 거였구나.”
착한 아이는 어른이 되면 두 가지 길로 나뉘곤 한다.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맞추는 사람, 혹은 아예 관계를 피하고 혼자인 게 편한 사람. 왜냐하면 둘 다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내 감정은 누군가에게 짐이 될 수도 있어.” 그 믿음이 마음 깊이 자리할 때, 사랑받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두렵다.
하지만 감정을 숨긴 아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잃는다. 기쁘지 않아도 웃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다 보면 정작 ‘진짜 내 마음’이 뭔지 모르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절실해지면서도 동시에 멀어진다. 왜냐하면 진짜 나로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사랑도, 신뢰도, 전부 ‘조건 위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싫다고 말해도 괜찮아.” “화내도 돼. 실망시켜도 돼. 그렇게 해도 넌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어.” 착한 아이는 사실, 사랑받고 싶은 아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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