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 위해 침묵했던 아이

어릴 적 나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아이였다.

혼날까 봐서가 아니라,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무엇보다, 미움받는 게 두려웠다.


엄마가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아빠가 무표정하게 TV를 보고 있을 때,

나는 조용히 눈치를 봤다.

장난감이 부서졌을 때도,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도,

그저 내 안에서 꿀꺽 삼켰다.

조용한 아이만이 사랑받는다고 믿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말을 줄이는 방식'으로

나를 지켜내는 법을 익혀갔다.

감정을 말하지 않으면 덜 미워질 거라 믿었고,

상처받을 확률도 줄어들 거라 여겼다.

누군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침묵은 내가 쥘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무기였다.


하지만 그 전략은

어른이 된 나의 삶에서 이상한 방식으로 되돌아왔다.

회사에서 부당한 요구를 들어도 “네, 알겠습니다”라며 웃었고,

친구가 내 마음을 상하게 해도 “괜찮아, 네가 힘들었나 보네”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툰 날에도

“내가 좀 예민했지?”라고 말하는 쪽은 늘 나였다.

내 감정보다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버릇은

이제 내 몸에 깊숙이 달라붙은 습관이 되었다.


어느 날, 연인에게 울먹이며 말한 적이 있다.

“나 요즘 너무 힘들어.”

그때 돌아온 말은 이랬다.

“너는 항상 괜찮다며? 난 네가 그런 줄 몰랐어.”


순간, 서글펐다.

항상 괜찮은 척을 한 건 바로 나였다.

괜찮지 않다고 말하면,

상대가 나를 피하거나 멀어질까 봐.

그러면 사랑이 멀어질까 봐.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어릴 적 나와 닮은 눈빛이 있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을 눈빛 속에 꼭 쥐고 있는 아이.

그 아이는 조심스럽게 묻고 있었다.

“이 말을 해도,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내가 솔직해지면, 나를 떠나지 않을까?”


나는 그 아이에게 처음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이제는 괜찮아.

너는 말해도 되는 사람이야.”


심리학에서는 이를

‘조건적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라 말한다.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 감정을 억제했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을 ‘보류’하는 데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관계를 지켜내려 한다.


하지만 그건 관계를 지키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를 잃어가는 길이었다.

표현하지 않으면 오해는 쌓이고,

관계는 얕아진다.

말하지 않으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도 생기지 않는다.


이제는 안다.

정말 깊은 관계는 침묵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감정의 파동이 솔직하게 드러날 때,

관계는 그제야 비로소 진짜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배운다.

표현하는 법을.

“지금은 좀 힘들어.”

“그 말에 마음이 아팠어.”

“난 지금 사랑받고 싶어.”


이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것이다.


사랑받기 위해 침묵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

나는 지금도 계속 속삭이고 있다.


“괜찮아. 네 감정은 충분히 말할 가치가 있어.

넌 언제나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야.”





※ 이 글은 심리상담학자로서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만나며 관찰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상담 장면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감정 패턴을 엮은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상처 입은 내면과 회복의 기록’ 시리즈 중 하나로, 타인의 기대 속에 감정을 숨긴 채 살아온 이들을 위한 정서적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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