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해야 할 일들은 책상 위에 그대로였고,
방은 흐트러졌고,
시간은 멀뚱히 흘러갔다.
그런 날,
무엇보다 나를 지치게 하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내 안의 나였다.
“왜 또 이렇게 흘려보냈어.”
“이럴 거면 뭐 하러 계획을 세워?”
“진짜 넌 답이 없다.”
조용한 방 안에서
그 말들을 가장 많이 들려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마음은 쉴 틈 없이 조여왔다.
해야 할 일 앞에선 숨이 막히고,
못한 일 앞에선 죄책감이 밀려오고,
결국 나는
일은 하지 못하고,
나를 혼내는 일만 열심히 하며 하루를 다 써버렸다.
나를 다그치는 그 목소리는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말들,
비교당했던 기억,
실망시켜선 안 된다는 강박.
그게 이제는 내 안으로 자리를 옮겨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목소리로 남은 건 아닐까.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이 필요하다.
몸도, 마음도
잠시 멈추는 시간이 있어야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조용히 스스로 가라앉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그 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나를 몰아세우느라
그 하루의 고요함마저 빼앗아 버렸다.
오늘 나는 이렇게 말해보려 한다.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야.
마음을 붙잡느라
애쓴 하루였어.”
다그치지 않고,
달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나와 함께 있어주는 말.
그 말 한 줄이면,
내일은 조금 덜 아픈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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