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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쳐도 따라오는 마음의 그림자


피하고 싶었다.

그 기억도,

그 감정도.


말하지 않았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살아내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이 달라지고,

공간이 바뀌어도

마음 어딘가에서는

똑같은 감정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처음엔 우연이라 여겼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고,

내가 예민해졌다고.


하지만 반복될수록 알게 되었다.

감정은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지 않았다고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어느 날 문득

아무렇지 않은 풍경 속에서,

뜻밖의 말 한마디에

묻어두었던 감정이

조용히 불쑥

나를 흔들었다.


그건 마치

도망쳐도 따라오는 마음의 그림자 같았다.

멀리 달아났다고 생각했는데,

해가 기울면

어김없이 내 발밑에 서 있는.


나는 자주 그 감정을 외면했다.

아프다고 말하는 게 미안했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게 두려웠고,

그냥 덮고 지내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은

감정을 덮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감정은 다른 얼굴을 하고

내 삶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불안처럼,

무기력처럼,

때로는 말끝의 날카로움이나

어딘가 모를 거리감으로.


감정은 묻는 존재였다.

“그때 왜 아팠는지,

이제라도 말해보지 않을래?”

“그 순간 참았던 마음을,

지금이라도 꺼내보면 어때?”


그 질문을 오랫동안 지나쳐오면

감정은 그림자가 된다.

앞만 보고 걸어가도

발밑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무언가.


그 감정은

나를 무너뜨리려는 게 아니었다.

놓치고 간 마음의 조각,

끝내 이해받고 싶었던 내 마음의 일부였다.


그래서 요즘은

그 감정을 바라보려 한다.

조금 천천히,

조금 덜 두려워하며.

도망치지 않고

그림자에게 말을 걸어보는 연습.


감정은 마주할 때 비로소

그림자에서 빛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마음만이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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