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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은, 나를 안아주고 싶었다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돌아와도 괜찮다고 내 마음이 내게 말해 주었다


한참을 멀리 서 있었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할 때가 있다.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지만,

어느 날 문득,

그 자리에 다시 서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라는 걸

서로 알고 있으니

그건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살다 보면

때론 너무 벅차서 등을 돌려야 할 때가 있고,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입술에만 맴돌다 사라질 때도 있다.


그 시절의 나도,

그 모든 감정 속에서

어떻게든 나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조금은 다르게 속삭일 수 있다.


괜찮다고.

돌아와도 된다고.

이젠 예전보다 더 부드러운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 같다고.


사람 사이의 시간은

한 번의 오해, 한 번의 고요로도 멀어질 수 있지만

그만큼

한 번의 다정한 시선, 한 번의 따뜻한 기억으로도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조금은 믿게 되었다.


무너진 게 아니라,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던 거라고

어쩌면 그 시간이 있어야

더 다정하게 만날 수 있었던 거라고

내 마음이 내게 말해 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내 안의 따뜻한 무엇이

조용히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그리움도 미안함도 결국 나를 지키려는 마음이었다


어떤 감정은

한동안 입 안에서 맴돌다가도

끝내 꺼내지 못하고 삼켜진다.


말하면 상처가 될까 봐,

표현하면 멀어질까 봐,

그래서 조심하고 또 머뭇거리게 된다.


그리움도 그렇고,

미안함도 그렇다.

사실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손을 뻗었는지

차마 다 말하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멀리서 바라만 본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보고 싶으면 보면 되잖아.”

“미안하면 솔직히 말하지.”

“왜 그렇게 어렵게 돌아가?”


하지만 어떤 감정은

너무 깊어서,

너무 간절해서,

오히려 아무 말도 못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리움이란 건,

단지 누군가를 다시 보고 싶은 감정이 아니라

그 사람 앞에서

이전의 나로 무너지지 않기 위한 마음이기도 하다.


미안함도 마찬가지다.

자책이라기보단,

다시 상처 주지 않기 위한 조용한 다짐처럼

가슴속에 오래 남는다.


나는 안다.

그 모든 감정들이 결국,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었다는 걸.


쉽게 말하지 못했던 건

말하지 않을 만큼 그 마음이 컸기 때문이고,

돌아서 있던 건

정말로 등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조차도 무너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그런 나의 마음도

조금은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움도,

미안함도,

결국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애쓰던

소중한 마음의 한 표현이었다는 걸

이제는 천천히 이해하게 되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그건 아마 내 마음일 거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내가 너무 조용해졌을 때,

내가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을 때,

그 모든 시간을 누군가 바라보고 있었다면

그건, 어쩌면 내 마음일지도 모른다고.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가장 늦게 알아챈다.

다른 사람의 눈빛에는 예민하면서도,

정작 자기 안의 떨림에는 오래 눈을 감고 산다.


하지만 마음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무너져 있을 때도,

조용히 멀어진 날에도,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며

다시 살아날 틈을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

그건 어쩌면

내 안의 어떤 다정함이

나를 놓지 않고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말없이 다가와 등을 토닥여주는 느낌,

울컥하지 않게 조용히 숨을 쉬게 해주는 감각,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내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작은 구조 신호였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누구도 몰랐지만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고,

조용한 내 마음도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조용한 마음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괜찮다고.

천천히 해도 된다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은

어쩌면 아주 멀리 있는 어딘가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나를 지켜보던

내 마음의 가장 깊은 자리일지도 모른다.







나를 미워하던 시절이 지나고서야 사랑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한때는,

거울 속 내 얼굴조차 마주하기 싫었던 날들이 있었다.

자꾸만 어긋나는 말들,

스스로조차 이해할 수 없는 반응들.


그 모든 걸 견디는 나에게

누구보다 내가 가장 모질게 굴었다.


“왜 그랬어.”

“왜 그렇게밖에 못했어.”

“넌 왜 항상 문제야.”


그 말들은 내 안에서

조용히 쌓이고 쌓여

작은 숨결까지 무겁게 만들곤 했다.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나를 오래도록 미워했다.


그리고 사랑은,

그런 나에게 너무 먼 단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언가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단지 어느 날,

지친 마음을 조용히 바라보다

처음으로 이런 말을 건넸다.


“너,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그 한마디가

내 안의 굳은 마음을

조금씩 풀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사랑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향한 것,

다른 사람을 향한 것,

그리고 아주 오래전,

내가 한 번쯤 받아보고 싶었던 그 따뜻한 감정들.


사랑은 거창하지 않았다.

그건 때로

조용히 밥을 챙기는 일이었고,

잠들기 전 나를 안심시키는 말 한 줄이었으며,

무너지지 않게 손을 쥐어주는

작은 마음의 움직임이었다.


나를 미워하던 시절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사랑이

한 번도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었다는 걸.


다만,

그 사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내가 내게 돌아와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를.







나에게 말을 걸어준 순간, 조용히 울었다


오래도록

내 안의 누군가가 조용히 울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울음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어디에도 닿지 못한 외로움이

천천히 쌓여가고 있다는 걸.


하지만 그 외로움에

정작 나조차 말을 걸지 못했다.

무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고,

그 울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너무 아플까 봐

외면하고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조용한 순간에

내 마음이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

“그만 애쓰고 잠시 쉬어도 돼.”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아.”


그 말들이 내 안을 천천히 흘러갈 때,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조용히, 오래 울었다.


누군가의 위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처음 건넨 다정함이

이토록 따뜻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그 울음은

서럽거나 슬픈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너무 오랜 시간 기다려온 온기가

드디어 닿았다는 안도의 눈물이었다.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은 조금씩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고,

억지로 웃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으면서

나는 나를 향한 시선을

조금 더 다정하게 바꾸어 갔다.


그리고 그 다정함은

어디론가 흘러가듯 번져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조용히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모르게 울고 있던 나에게

말을 걸어준 것은

결국,

나였다.







나를 향한 따뜻한 온기가 다시 세상을 향한 온기로 번질 때


한때는 모든 따뜻한 말들이

멀게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차가웠고,

누군가의 위로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내 안의 문이 닫혀 있었던 것이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내가 너무 오래 아팠고,

내 마음조차 나를 감싸 안을 여유가 없었던 것뿐이다.


그런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준 온기가 있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았고,

조언하지도 않았고,

그저 내 옆에 앉아 있어 주던 따뜻한 무엇.


나는 몰랐다.

그 조용한 온기가

내 마음을 천천히 열고 있었음을.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온기가 나를 감쌌을 때,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 이렇게 따뜻해도 되는 거구나.

이렇게 지켜져도 되는 거구나.

이렇게 다시 살아가도 괜찮은 거구나.


나를 향한 그 다정한 온기가

조금씩 내 안을 채우고 나니,

신기하게도

세상도 다시 따뜻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여유,

작은 일에도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감각,

그리고 아주 오래 전의 상처 앞에서도

이젠 잠시 눈을 감아줄 수 있는 마음.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자라났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잠시 머물 수 있는 온기가 되고 싶다.

그 사람을 바꾸지 않아도 되고,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온기는 충분히 전해진다.


나를 향한 따뜻한 온기가

이제는 세상을 향해 번져나간다.

말없이,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스스로를 다정하게 바라볼 때 관계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예전의 나는

늘 나에게 가장 엄격한 사람이었다.

작은 실수에도 마음속에서 나를 다그쳤고,

어느 누구보다도 나를 먼저 미워했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사랑하기엔

내가 나를 향해 쌓아 놓은 비난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지쳐버린 어느 날,

나는 이렇게 말해보았다.


“그래도 너, 정말 애썼어.”


그 말 한마디가

내 안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건드렸다.

딱히 울지도 않았고,

눈에 띄는 변화도 없었지만

그날 이후,

나를 대하는 내 마음이 아주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부드러움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서운해했을 말들을 그냥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고,

작은 다정함에

더 쉽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를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자,

사람들과의 거리도

조금 더 따뜻해졌다.

서로를 바꾸지 않아도

조금은 덜 긴장된 얼굴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변화는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마음속에서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목소리가 생겼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나와 더 가까워졌고,

관계는 그에 따라 천천히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어떤 관계는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는 걸.


나를 부드럽게 바라보는 그 시선 하나가

세상을 향한 온기가 되어

다시 누군가에게

조용히 닿아가는 순간이 있다는 걸.







나에게 가장 날카로운 건 나였다


나는 오래도록

내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이 되려 애써왔다.

누군가의 말을 받아주고,

서툰 마음까지도 안아주고,

늘 웃으며 “괜찮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날카로운 말은

언제나 내 입에서 내게로 향하고 있었다.


“왜 또 이러니.”

“그 정도도 못 견뎌?”

“넌 늘 부족해.”


세상 누구보다 나에게 가장 가혹한 심판관이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늘 참는 사람이었다.

화를 내지 않고,

서운함을 말하지 않고,

감정이 차올라도 삼켜버리며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런데 그게

나를 더 강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 안을 조금씩 마르게 하고

조용히 갈라지게 만들었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문득 내 마음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친구처럼.

멀리 떨어져 버린 사람처럼.


그때 처음으로

나는 내게 속삭였다.


“괜찮아, 너도 이제 좀 쉬어도 돼.”

“지금까지 버텨줘서 고마워.”


그 말을 나에게 건넨 순간

내 안에서 뭔가 작게 울컥하며 흔들렸다.

조금 미안했고,

조금 고마웠고,

조금 안도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가장 가혹하게 다루면서도

그게 ‘성숙’이라고,

‘책임’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나에게 가장 먼저 다정해야

타인에게도 다정해질 수 있는 법이다.


내가 나를 미워하던 시절에는

세상도 늘 날카롭게 보였다.

내가 나를 이해하기 시작하자

사람들도 조금씩 따뜻하게 보였다.


지금 나는

나를 다그치는 대신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려고 한다.

“괜찮아. 천천히 가자.”

“그때 너 참 힘들었지.”

“지금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한 일이야.”


그렇게 나에게 말을 걸자

내 안에 숨죽여 있던 마음들이

조금씩 돌아왔다.

낯설었던 감정들이

조용히 나를 안아주기 시작했다.


나에게 가장 날카로운 건 나였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따뜻한 사람도

결국 나일 수 있다.


그걸 알게 된 순간,

나는 내 삶과 사람들을

조금 더 포근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내 안에 잃어버린 연결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괜찮다"였고, 가장 덜한 말도 "괜찮다"였다


"괜찮아."

너무 흔해서, 너무 자주 들어서

이제는 내 안에서 울림조차 사라져 버린 말.


힘들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말,

아프다고 하면 더는 묻지 않게 되는 말,

내 마음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 입에 달고 살았던 말.


"괜찮아."

그 말에 내가 몇 번이나 숨었는지,

그 말에 내가 얼마나 무너졌는지도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나조차도.


어쩌면 그 말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는 지금 그럴 수 있어.”

“정말 힘들었겠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그런 말은

늘 마음속에서만 맴돌았고,

누군가에게 닿기도 전에

조용히 삼켜졌다.


사람들 틈에선 늘 잘 웃었고,

작은 상처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도와달라는 말을 꺼내는 법도 잊어버렸다.


그렇게 “괜찮아”라는 말로

감정을 포장하고, 마음을 눌러두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진짜 내가 어떤 마음인지

나도 헷갈릴 만큼 무뎌져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알고 있었다.

그 말들 사이로

얼마나 많은 감정이 조용히 묻혀 있었는지.

그 침묵 안에

얼마나 오래 외로움이 앉아 있었는지.


어느 날,

말없이 걱정해 주는 한 사람의 눈빛을 보며

나는 문득 알게 되었다.

내가 진짜 듣고 싶었던 건,

“정말 괜찮니?”라는

조용한 질문 한 줄이었다는 걸.


마음을 다 열지 않아도 괜찮다.

모든 걸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그 마음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는 걸

알아봐 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숨을 조금 덜 죽이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괜찮아”라는 말로

스스로를 너무 오래 달래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말이 없지만,

사실 누구보다 다정한 마음을 안고 있다.


그런 마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때로는

그냥 곁에 있는 사람의 따뜻한 숨결만으로도

조용히 피어오르곤 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설명도 없이,

그냥 괜찮지 않아도 되는 마음을

품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나에게 있었다는 사실이

언젠가 마음 한편에서

오래도록 따뜻한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왜 늘 부족할까?”라는 오래된 질문 앞에서


나도 모르게 그 질문을 되뇌었다.

“왜 나는 늘 부족할까?”

누가 그렇게 말한 것도 아닌데,

언제부터인지 그 말이 내 안에 박혀

습관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사람들 앞에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늘 그 질문에 시달렸다.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조금만 더 괜찮았더라면…’

그런 생각들이 마음을 조용히 갉아먹었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방에서

그 질문이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도망치듯 무언가를 하던 손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때

내 안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부족하지 않아.

그때 그 상황이, 그 삶이

너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했을 뿐이야.”


그 목소리는

내가 나에게 처음으로 건넨

따뜻한 말이었다.


“그때 너는 최선을 다했어.”

“네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네가 너무 오래 혼자 견뎌온 거야.”


그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는 순간

가슴 깊이 묵직하게 걸려 있던

부족함의 그림자가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우리는 종종

부족함을 ‘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를 이해하고

다정하게 바라봐주면

그 부족함 속에도

얼마나 많은 노력과 사랑이 있었는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그제야 안다.

그 질문은 나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돌봄 받지 못한 내 마음이

조용히 꺼내놓은 외침이었다는 걸.


그날 이후로

나는 나에게 다른 질문을 건네본다.

“그때 그 상황에서 나는

얼마나 용감했을까?”

“나는 얼마나 오래 버텨주었을까?”


그 질문 앞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가 나를 안아주게 된다.

그때 처음으로

내 안에서 미묘한 안도가 피어난다.


그 질문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순간,

내 마음은 더 이상 나를 가혹하게 다그치지 않는다.

그 자리엔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던 따뜻한 감정이 앉아 있었다.


그 감정은 말한다.

“괜찮아, 이제 그만 너를 괴롭혀도 돼.”

“이제 너는 다시 사랑받아도 돼.”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혹시 그런 질문 앞에 서 있었다면,

기억해 주면 좋겠다

내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그때의 삶이 너무 벅찼을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이라도

그 마음을 조용히 안아줄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나를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었다


나는 참 많은 말들을

내가 나에게 건네며 살아왔다.


“그건 다 네 잘못이야.”

“왜 또 그렇게밖에 못 했어.”

“너는 항상 뭔가 부족해.”


그 말들이

어떤 상황에선 나를 조이고,

어떤 밤엔 조용히 울게 했고,

결국엔 마음 어딘가를

무겁게 눌러놓은 채로 살아가게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누구보다 나를 가장 많이 오해했던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힘들어도 말 못 했던 그 순간도,

억지로 웃으며 지나온 날들도,

모두 다 ‘괜찮은 척’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걸

나는 왜 그렇게 오래 몰랐을까.


나는 그저

조용히 버텨온 사람일 뿐이었다.


누구에게 의지하기보다

내 안의 침묵으로 스스로를 감쌌고,

말보다는 눈빛으로 마음을 표현했으며,

서툴지만 진심이었던 나날들을

괜히 가볍게 넘겨버리곤 했다.


그렇게

내가 나를 제일 몰랐다는 사실이

문득 마음을 쓰게 했다.


어느 날은

거울 속 내 얼굴이 낯설었고,

어느 밤은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차올랐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이건 다 네가 잘못한 거야.”

“조금만 더 참았어야지.”


하지만 지금은

그 말들을

조금 다르게 바꿔주고 싶다.


“사실, 그때 너 참 용기 있었다.”

“그건 너무 힘들었으니까… 말 못 한 것도 당연해.”

“네가 스스로를 그렇게 지켜냈다는 게 대단해.”


그 말을

누군가 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나에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씩 풀린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나를 오해하며

스스로를 너무 오래 미뤄뒀다.

그 미뤄둔 마음이

이제야

살며시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 손을 붙잡는 건

다정한 연습이고,

늦지 않은 이해이며,

삶의 작은 회복이다.


내가 나를 오해하지 않게 되는 날들,

그날부터

다른 사람에게도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는 마음이 자란다.

그건 설명하지 않아도 닿는 마음이고,

조용하지만 단단한 연결이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그때의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그때는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게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그게 ‘애쓴 것’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힘들지 않은 척,

늘 괜찮은 사람처럼

조용히 버텨온 나날들.


그때의 나는

‘애쓴다’는 말조차 사치처럼 느꼈던 사람이었다.


눈앞의 일들을 해내야 했고,

마음은 잠시 옆으로 미뤄둬야 했고,

도움을 구하는 대신

스스로를 다그치며 버티는 게

나를 보호하는 방식이었다.


누구도 몰랐다.

심지어 나조차도,

내가 그렇게 애쓰고 있었다는 걸.


그러다

어느 조용한 밤,

창밖으로 비가 내리던 순간이었다.

문득 떠오른 한 장면,

말없이 지나쳤던 누군가의 말투,

아무렇지 않은 듯 넘겼던 일들이

다시 마음을 톡 건드렸다.


그제야 알았다.

그 순간들을 지나왔던 그때의 내가 얼마나 단단하게 살아내고 있었는지.


나는 그렇게

조용히 나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힘들었는데도 말 안 했던 이유,

외로웠는데도 웃었던 이유,

지치면서도 하루를 끝까지 걸어간 이유.


그 모든 것이

“정말 수고했어.”라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해도

그냥 살아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야

조금씩 그때의 나를 꺼내본다.

미안하다,

그때 그렇게 무심히 몰아붙여서.

고맙다,

그 시간들을 정말 잘 지나와줘서.


누군가는 말한다.

“이미 지난 일이잖아.”

하지만

마음은 시간이 지나야 만 들여다볼 수 있는 감정도 있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마음의 결이 얼마나 거칠었는지,

그 안간힘이 얼마나 조용한 울음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때의 나를,

지금에서야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마음에

조용히 말해준다.


“그 시절,

정말 많이 애썼구나.”

“그래서 지금의 네가 있는 거야.”

“그걸… 이제라도 알게 돼서 참 다행이다.”







사실은 누군가 내 마음을 그냥 안아주길 바랐을 뿐이야


나는 오랫동안

내가 강해야 한다고 믿었다.

내 마음이 흔들릴 때조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고,

괜찮다고, 이 정도쯤은 견딜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버텼다.


사람들 앞에서는 밝은 얼굴로,

혼자 있을 때조차 내 감정을 달래며

하루하루를 쌓아 올렸다.


그런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사실 아주 작은 바람이 있었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다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이 필요한지 몰라도,

그냥 조용히 내 곁에 앉아

내 마음을 안아주면 좋겠다는 바람.


그 바람은 화려하지도, 큰 것도 아니었다.

그저 “괜찮아, 너 힘들었지”

그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았다.


나는 그 바람조차

말하지 못하고 묻어두었다.

말하면 더 약해질까 봐,

누군가에게 기대면 더 무너질까 봐

그냥 삼켰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작게나마 인정하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안아줄 누군가를 원한다는 걸.

그게 약함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마음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는 걸.


이제야 나는

그 바람을 나 자신에게도 건넨다.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그때 많이 힘들었겠구나”

“그 마음이 외로웠겠다”

하고 말해주는 연습.


그 작은 연습이

나를 다시 살리고 있다.


그리고 깨닫는다.

마음을 안아주는 건

큰 말이나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그저 따뜻한 눈길,

묵묵히 옆에 있어주는 시간이라는 걸.


그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한 사람의 다정한 시선이 나를 나로 있게 했다


어느 날, 누군가의 눈빛이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 시선엔 말이 없었고, 설명도 없었고,

단지, 나라는 사람을 알아보는 조용한 따뜻함이 있었다.


그 다정한 시선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미워하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조금은 어수선한 내 마음도,

때로는 흐릿해진 나의 기억도

그 시선 앞에선 그냥 ‘괜찮다’는 말로 덮였다.


누군가의 시선이

“그렇게 아파도, 그래도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말없이 그렇게 말해주는 시선은,

어쩌면 말보다 더 많은 것들을 건네는 법이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었던 건,

누군가 나를 부서지지 않게 바라봐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선 하나가,

나의 가장 여린 조각들을 지켜냈다.


그 다정함은 지금도 어딘가에 남아 있다.

사라지지 않고,

기억처럼, 온기처럼,

내 하루의 어딘가에서 나를 감싸고 있다.


그 다정한 시선은,

지금도 멀리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문득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될 때마다

자꾸만 떠오르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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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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