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자주 울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였을까.
울음을 삼키는 게 익숙해졌다.
“울면 더 혼나.”
“참는 게 어른이야.”
그 말들을 들은 뒤부터,
나는 울고 싶을 때마다
목구멍에서 울음을 거둬들였다.
그건 분명히 슬펐던 순간이었는데,
그건 분명히 속상했던 기억이었는데,
나는 그때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했을까.
감정을 느끼는 것과
그 감정을 말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속상한데도
“괜찮아요.”
억울한데도
“아니에요.”
울고 싶은데도
“그냥 좀 피곤해서요.”
이렇게 내 마음을 스스로 무시하고
외면하고 억누르며
수많은 감정들을
‘말하지 않고 지나쳐왔다.’
그러다 어느 날,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그 정도 일로 왜 울어?”라고 했지만,
나조차 알 수 없던 그 눈물 속엔
몇 년, 몇십 년 동안 쌓이고도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이제야 조금 알겠다.
그때 나는 울고 싶었다.
울어야 했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나는
울고 싶다고 말할 줄 몰랐다.
그 말을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
지금도 아직은 서툴지만,
나는 조금씩 연습해본다.
“그땐 속상했어.”
“마음이 아팠어.”
“울고 싶었어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때,
나는 내 마음과 다시 연결된다.
그리고 그 연결이
나를 회복시킨다.
감정은 말해져야만 이해받을 수 있고,
이해받을 때 비로소
우리 안에서 정리된다.
그러니 지금의 당신도
울고 싶다고 말해도 된다.
늦지 않았다.
그건 분명,
자기 자신을 지키는 가장 용기 있는 말이니까.
※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며 관찰해온 사례를 바탕으로 구성한
《회복과 성장의 심리학》 시리즈 – 월요일 편입니다.
정서적 억압과 회복을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 다음 화요일은 《착하다는 말이 목을 조일 때가 있다》로 이어집니다.
착한 아이로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들,
그들의 마음에 스며든 조용한 고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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