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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 Jan 02. 2020

눈물의 글쓰기

언젠가 이 주제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았다. 오빠가 세상을 떠난 이야기,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이야기. 쉽게 말할 수 없는 이 무거운 이야기를 내가 잘 쓸 수 있을까. 그런데 이번 글쓰기 모임에 제출할 글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키보드가 타닥타닥 움직일 때마다 자꾸 눈물이 났다. 아침 이슬처럼 흐르는 '또르륵 눈물'이 아니라, 목구멍 뒤에서부터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꺼이꺼이 눈물'이었다. 눈물과 콧물을 닦은 휴지가 모니터 앞에 수북이 쌓였고, 다음날 눈은 퉁퉁 불어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반복했다. 글을 쓰고, 눈물을 흘리고, 콧물을 닦고. 다시 글을 쓰고.


드디어 글쓰기 모임. 우리 글쓰기 모임은 각자 써온 글을 낭독하고, 그에 대한 합평을 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몇몇 친구들은 낭독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들을 보면서 예감했다. 오늘은 내가 울 순서구나. 카페 구석에 있는 냅킨을 한 뭉텅이 가져왔다. 드디어 내 차례.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지만 이상하게 눈물은 안 났다.


모임이 끝나고 한 친구가 말했다. "나는 낭독할 때마다 우는데, 언니는 안 우네. 신기하다." 그러게. 나도 내가 울 줄 알았는데, 왜 나는 눈물이 안 났지? 일단 나의 경우는 이랬다. 글을 쓸 때는 울면서 썼다. 그리고 글이 마무리되면 잘 완성하고 싶은 '아마추어 작가 정신'이 발동한다. 이 문단을 앞으로 뺄까. 이 부분은 좀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이 단어는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 이런 고민을 하며 퇴고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글을 반복적으로 읽게 되고 감정이 무덤덤해지는 단계에 진입한다. 분명 내 이야기지만, 더 이상 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글쓰기 모임을 위해 글을 출력할 때는 딱 이 마음이다. 이번 글, 잘 가라! 고생했다!


상처 받기 싫어 덮어놨던 감정들을 다시 들춰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때의 감정을 천천히 복기하는 일은 글을 쓰기 위해 꼭 필요하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의 오래된 문제에 나만의 정답을 찾는 것 같다.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막막한 문제에 최선을 다해 글을 쓰면 꽤 괜찮은 기분이 든다.  비록 그 답이 오답일지도 모르겠지만.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 채 계속 혼자 아파했을 것 같다. 상처, 외로움, 억울함이 엉키고 엉켜 묵은똥이 되었고, 난 오래된 설움에 빠져있었다. 글을 쓰면서 내 안에 뭉쳐있던 복잡한 응어리가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새로운 문제로 다시 나를 시험하고, 나는 또 부지런히 괴로워하는 일의 무수한 반복이 아닐까. 오래 묵혔던 이야기를 글로 해결했지만,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들이 내 안에 쌓여간다. 나는 아무래도 계속 글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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