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5/ 허먼 멜빌

경뇌유와 행복통

by 오아시스

영원히 경뇌유를 쥐어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되풀이된 경험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경우든 자기가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결국에는 낮추거나 어떤 식으로든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행복은 결코 지성이나 상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나 연인, 침대, 식탁, 안장, 난롯가, 그리고 전원 등에 있다. 나는 이제 이 모든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기름통을 영원히 쥐어짤 준비가 되어 있다.


행복은 삶에 밀착되어 있을수록 더 많이 느낄 수 있어요.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과 이상, 상상, 신념과 지성이 가득하면 꿈만 꾸느라 행복해질 틈이 없어지지요. 두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머리와 눈은 허공을 헤매고 있다랄까요. 나도 그랬던 것 같아요. …이 되면, …이 이루어지면. 그 다음 차례에야 행복이라고 말이예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수순이 틀렸어요. 이슈마엘처럼 행복은 지성이나 상상 속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내 아이들의 웃음, 맛있는 음식, 기분 좋은 산책, 멋진 카페, 여행, 가족들과의 식탁, 목욕탕, 꽃과 나무, 파란 하늘, 날씨, 원하는 걸 마음껏 사는 소비, 예쁜 옷, 새벽의 고요한 시간, 라디오, 등등에 있어요. 내 행복은.

오늘은 모처럼 내장산으로 좋아하는 언니와 산책을 나갔지요. 언니는 변산 바람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꽃을 찾아 걸었어요. 봄이긴 봄이 왔구나. 행복하다! 산수유나무 노란 꽃눈이 막 터지려 했어요. 우리는 이리저리 헤매다 바람꽃을 찾았지요. 사진을 이리 찍어보고 저리 찍어보면서 한참 웃었어요. 2년전에 봤을 때보다 꽃이 더 큼지막해서인지 훨씬 더 아름다워 보였죠. 뭐랄까. 고운 한복을 입은 단아한 미인 같다고나 할까요. 붉은 계열이 아니라 하얗고 깨끗한 느낌의 고급진 한복의 느낌,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행복하다!

다리가 아파서 절 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마셨죠. 흐르는 물줄기도 감상하고 가게 안에 들여놓은 꽃 화분들을 보며 감상도 했어요. 행복하다! 쉬고 나서 다른 길로 걷기로 했어요. 걷다보니 만보가 넘었고 건강해졌을 거라 생각했어요. 행복하다!

언니와 헤어지고 딸아이를 데리러 갔지요. 아들이 학원에서 늦는 바람에 딸과 여유가 생겼어요. 딸은 나를 데리고 그동안 먹고 싶었던 붕어빵집에 데리고 가지 뭐예요. 복잡한 도로라 차를 세우기가 마땅치 않아 지나치던 곳이었지만 오늘은 차를 다른 곳에 세워둔 까닭에 여유가 있었어요. 우리는 어묵을 순식간에 5개나 먹어치우고 붕어빵을 먹기 시작했어요. 팥과 슈크림이 골고루 섞여 있었어요. 팥붕어빵이 정말 맛있었어요. 붕어빵 맛집이라더니 맛집이 맞긴 맞네요. 딸과 나는 어묵과 붕어빵에 행복해졌어요!

집에서 잠시 쉬다 아들을 데리러 갔지요. 아들이 좋아하는 딸기를 사러 마트에 들렸더니 기분이 너무 좋다고 함박웃음을 지어요. 아들이 기분이 좋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어요. 행복하다!

행복은 실체가 있는 정직한 것이로구나. 이슈마엘처럼 기름통을 쥐어짜야 해요. 하루를 쥐어짜야 해요.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면 안 되요. 시간, 분, 초 단위로 쥐어짜야 해요. 성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도 쥐어짜야 해요. 그럼 하루에서 행복이 1톤 정도는 흘러나올 수 있어요. 그걸 내 마음통에 다 담을 수 있어요. 내 마음에는 기름통처럼 행복통이 몇 개나 넘실넘실 가득 차 있을까요.

지금은 저녁 시간. 살짝 배가 부른 상태에서 나른하게 라디오를 듣는 행복을 쥐어짜고 있어요. 똑똑똑, 행복이 지금 내 마음통으로 떨어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