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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04. 제주도 여행

심리학 대학원을 다니면서 또 하나 받은 선물은 지지 그룹(supporting group)이다. 대학원 진학의 목적은 각자 다르지만, 그중에도 사람에 대한 이해는 공통이다 보니 경청, 공감, 이해를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단체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각자의 공부 소재가 되기도 한다. 서로 의견이 다르거나 공감할 수 없을 경우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솔직한 피드백은 문제 상황을 더 명료하게 보는 데 도움이 된다. 또는, 생각지도 못한 제삼자의 시선을 직면시킴으로써 세상에는 이런 시각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외부에서 그 시각을 접했을 때의 상황을 미리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므로 그 어떤 것도 당사자에게 도움이 된다. 나는 사회에서 영업직무를 하면서 회사 소개, 제품 소개를 위한 발표에 수도 없이 단련된 사람이다. 그러나 내 개인에 관한 이야기를 다수의 사람들에게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입이 떨어지지 않거나 하더라도 꼭 다른 사람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5년 만에 겨우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기념하며 가까운 이들과 2박 3일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낮에는 즐겁게 놀고 저녁이 되면 둘러앉아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날 조용한 밤에 독백하듯이 내 이야기를 풀어가던 중 갑자기 내 마음에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왔다. 8명의 사람들이 가만히 애정을 갖고 눈을 떼지 않고 내 이야기에 온 집중을 해 주는 모습이 감동적이고 묘하기도 했다. 언어를 넘어서 느껴지는 마음의 공명은 놀라운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 그날 내가 사람들의 깊은 공감만으로 경험한 감각은 표현하기 어렵지만 내 단단한 마음의 문이 열린 아주 중요한 기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나에 대하여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 내 감정이 굳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대학원 모임을 통해 연습을 시작했다. 어떻게 받아들일지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무작정 나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회적인 나가 아닌 어린 시절, 상처, 극복과 같은 인생 그래프, 어두운 마음, 밝은 마음 등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었다. 그렇게 생각나는 데로 내키는 대로 내 마음을 내어 놓는 연습을 하면서 나도 나의 말을 들으며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이야기를 침묵 속에 끝까지 경청해 주는 일을 본 적 있는가? 회사 회식은 말할 것도 없고, 나는 지금껏 살면서 그런 일은 본 적이 없다. 가족이나 친구 모임은 목소리 큰 어른이나 친구들이 얘기를 주도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개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는 일은 흔치 않다. 빡빡한 현실에서 빠져나와 피로도 풀고 기분 전환하고 싶은 마음이 모인 것이 대부분의 단체 모임인데, 한 사람의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고 생뚱맞지 않은가.    


편안하게 나를 내놓을 수 있는 안전한 그룹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행운이겠지만 대부분 그런 그룹을 갖기가 쉽지 않다. 가까울수록 나를 위한 조언과 애정이라는 말로 치장한 배려 없는 충고를 내어놓기도 하고, 공감하더라도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 세상이 다 그런 거 아니겠나, 다들 힘든 부분 하나쯤 안고 가는 거 아닌가, 술이나 한잔하자’ 정도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크다.  나도 그 당시는 나의 마음공부에 매진할 때였고, 함께 있는 사람들도 함께 집중하던 때였기 때문에 가능하였지만, 이제는 다시 그런 시간을 갖기 쉽지 않다.  안전한 사람, 안전한 그룹에게 솔직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것은 나를 알아가기에 좋은 방법이다. 자신에 대하여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겠는가 싶지만, 의외로 나를 제일 모르는 사람이 나일 수 있다. 왜냐하면, 감정, 감각, 인지 세 가지 기관 중에 우리는 인지를 사용하여 기억이나 감정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안전한 타인에게 나를 내놓는 것은 세 가지 효과가 있다. 첫째, 오래도록 억눌려 있던 마음들을 꺼냄으로써 느껴지는 정화 효과이다. 또한, 하나의 마음을 꺼내면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따라 나오게 된다. 따라서, 나는 말하는 화자(話子)이면서 동시에 듣는 청자(聽子)가 된다. 자세히 보지 않고 억누르려고만 했던 이야기들이 내 목소리를 통해서 세상에 내놓였을 때 정화와 깨달음을 얻게 된다. 둘째, 말은 흐름과 논리로 구성이 되기 때문에 말을 하다 보면 왜곡,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사건에 대하여 내가 과장하거나 상황을 잘못 이해하여 굳어진 신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알기도 한다. 삶을 지탱해 온 신념이 때론 자신을 구속하는 감옥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잘못된 신념을 수정하면 세상에 대한 인지도 바뀔 수 있고 무엇보다도 내가 자유로워진다. 오해와 모순이 걷히고 나면 나는 본연의 자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셋째, 억눌린 마음이 투사되어 관계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 완화된다. 무엇보다도 가볍고 자유로워진 마음 것이 가장 큰 선물이다.      


타인에게 솔직하고 깊은 이야기를 꺼내 보는 연습이 잘 되고 방향이 잘 맞춰지면 비로소 자신과의 진솔하고 질이 높은 대화가 시작된다. 타자와의 대화를 통한 객관적인 자기 조망이 없이,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면 내 안의 모순과 왜곡에 잠겨버려 엉뚱한 사념을 헤매거나 잘못된 결론으로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 외부의 객관적 조망이 적절히 섞여야 방향을 미세하게 맞추어 가며 본연의 나에 닿을 수 있다.      


솔직하게 나를 꺼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솔직해지는 단계까지 가는 데도 켜켜이 쌓은 페르소나를 넘어야 하기에 여러 난관이 있을지 모른다. 그 시간을 기다리며 동반하는 과정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바라는 것은 과도한 바람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듣는 것도 큰 노동이다. 개인의 이야기를 듣고 길잡이가 되는 것을 평생의 연구와 업으로 삼는 정신과 의사, 심리상담사가 있으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이라는 말이 있다.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 신체검사뿐 아니라 정신 검사도 필요하다. 신체검사를 전문 의료 기관에서 정기적으로 받고 정기적인 운동을 통해 관리하듯이, 정신 검사도 꼭 전문인, 전문기관을 통해 받아야 하고 정기적인 수행이 필요하다.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 본질적 자아로 다가갈 수 있는 많은 열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나를 제일 잘 알아. 내가 세상을 잘 알지- 오래도록 묵히고 굳어진 마음이라면, 그 여정이 더욱 드라마틱할 수 있다. 누가 아는가? <연금술사>, <어린 왕자>의 놀랍고 흥미진진한 여정이 내 안에서 펼쳐지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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