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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존재함을 인정하기

한 방송에서 정형돈이 왜 남들처럼 잘 지나가지 못하고 불안이 올라온 건지 나약함을 자책을 하며 물었다. '불안은 과연 있는 것인가?' 그 말에 오은영 선생님이 이렇게 답하였다.


'있죠. 어떤 상황이 불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거예요. 그 느낌에 따른 반응들이 반드시 따라와요. 따라오는 생각들, 생리적인 반응이 생기는 것입니다. 즉, 불안은 있습니다.'


'불안은 있다'는 말을 들으면, 뻔한 소리 하네, 하며 시큰둥할 법하다.

심장이 뛰고 쓰러질 것 같고, 내 의도나 상황에 맞지 않는 반응과 행동을 일상 중에 갑자기 맞닥뜨린다면, 그야말로 패닉일 것이다. 이렇게 강도 높은 반응이 나타나 불안을 알 수도 있지만, 어떤 불안은 스스로도 잘 모르고 넘어갈 정도로 미약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 자체가 가벼운 반응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아가 압도적으로 강하게 억압하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런 상태가 반복적으로 누적되면, 서서히 내 삶을 잠식해 버린다. 아주 천천히 물의 온도를 높이면, 물이 따듯함을 넘어 뜨겁다는 것을 즉시 알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그럼, 불안은 나쁜 것이니 아예 자리를 잡지 못하게 뿌리를 뽑아낼 것인가?


알아차리기, 인정하기, 흘려보내기는 자유를 향한 과정이다. 알아내서 보낸다니, 꼭 나쁜 것을 찾아내어 소탕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기에, 그 존재를 외면하지 않도록 '인정하기'가 그 중간에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자유 의지만큼이나 다양한 감정을 갖고 태어났다. 호르몬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성장과정의 경험에서 왜곡되고 강화되며 각 개인마다 강도는 모두 다르지만, "있다"는 것은 동일하다.


성욕, 질투, 욕심, 분노, 수치심, 죄의식 등의 보편적 욕구와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 에너지의 방향을 변화무쌍하게 다루며 창조적인 힘의 근원으로 전환하거나 조절할 수 있다. 그러한 감정을 운영하며 살지 못하고, 그것이 내 삶을 불편하게 하는가?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직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강한 성욕과 예민함에 잠식되면 범죄자가 될 수도 있고 히스테릭한 성격으로 주변을 고통에 빠뜨릴 수가 있다. 반면,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고 노력하여 긍정적으로 방향을 바꾸면 예술가가 될 수도 있고,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봉사자나, 포기하지 않는 지구력 강하고 예리한 탐정이 될 수도 있다.


정형돈은 그것이 나타났을 때 '책임 있는 아빠니까 대중의 인기로 먹고사는 유명인이니까 그냥 참아' '다, 그래. 너도 어른이니까 그냥 참아' '뭐라도 더 해!'라고 했을 테고, 대부분의 우리도 그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불안'에 대한 주도권을 나에게로 가져오고 그것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있음'을 (억압이나 회피 없이) 관찰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불안함을 느끼던 나의 존재'를 포옹하고 위로하는 것이다.


위빠사나는 명상 훈련을 통해 발현과 소멸을 체득한다. 그것은 "없다"가 아니라 "있다"에 대한 것이다. 언제든 나타나고 소멸함을, 또 언제든 나타날 수 있음을, 그것에 대한 나의 반응이 있음을 "판단 없이 그저 알아차리"는 훈련이다.


우리의 감정, 감정에 따라오는 생각과 생리적 반응을 알아차릴 때에 그것이 나타나는 것과 사그라드는 것을 가만히 기다려 바라봐 줄 때에 비로소 자유함으로 한걸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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