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원가정과 조직생활을 돌아보며, 과거에 무엇이 문제였고 무엇을 놓쳤었나 하는 질문이 들곤 한다. 오래도록 빙빙 돌며 모호한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중에, '정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 과정은 '감정 -> 느낌 -> 기분 -> 정동'으로 세분화할 수 있으며, 이 과정은 복합적이고 깊게 전체와 개인에게 정서로 자리 잡게 된다.
정서 (Emotion/Affect, 情緖): 인간의 모든 감정·기분·느낌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 정서 상태, 정서 발달 등. 가장 광범위.
감정 (Emotion): 특정 자극에 대한 순간적이고 강렬한 반응. (예: 분노, 기쁨)
느낌 (Feeling): 감정을 인지적으로 해석한 주관적 경험. (예: “나는 지금 불안하다고 느낀다”)
기분 (Mood): 비교적 오래 지속되는 배경적 상태. (예: 우울한 기분, 들뜬 기분)
정동 (Affect): 학술적 용어, 전반적 정서 경향성(예: 긍정적 정동, 정동 불안정성)
가족 안에서 구성원은 특정 감정을 반복 경험하면서 개별 정서를 형성하고, 조직에서는 소수의 감정과 느낌이 전파되고 확산하며 전체 정서를 만든다.
정서는 지속성이 길고, 구성원의 기분과 동기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조직 문화는 상위자들이 정하는 규정, 메시지, 운영방식 등에 의해 형성되지만, 정서는 구성원 사이에 언어적, 비 언어적으로 전달되어 형성되는 미묘한 분위기이다. 또한, 언제 누구에 의해 발생되고 확산되었는지가 모호하므로, 명확한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다.
부정적 정서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가정과 조직에 부정적 정서가 뿌리 깊게 자리 잡히고 나면, 긍정으로 바꾸기는커녕 원점으로 돌리는 것도 패배가 보이는 전쟁처럼 무겁고 어렵다. 개인은 가정을 떠나거나 조직의 구성원을 전면 개편하는 것이, 뼈아프지만 그나마 빠른 길 일 수 있다.
목표와 문화만큼이나 조직 정서를 유심히 관리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를 위한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1. 정서적 의도와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가족 내에서 형성해야 하는 정서는 명확하다. 여러 연구와 학자들이 규명해 온 바와 같이, 가족 정서는 단연코 '사랑'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돈, 성적, 성공의 중요성을 주장하더라도 이를 넘어설 수는 없다. 높고 낮은 인생의 파도를 겪으며 각자의 삶 속에서 성장하는 구성원에게, 정신적 자양분이 되는 긍정적이고 안정된 정서는 가족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신 1등급은 단기적 목표이다. '1등급을 못 받으면 수치스럽다'와 같은 두려움, 또는 '최선을 다한 내가 좋다, 언제든 다시 시도할 수 있다'와 같은 안정적 믿음은 정서이다. 정서는 개인이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심리적 배경이 된다.
회사의 정서는 각기 다르다. 법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옳고 그름을 규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동료로서 서로를 지지한다는 정서가 있을 수 있고, '직장 동료는 언제든 실력으로 이겨내야 하며, 결과에 따라 떠나거나 큰 보상을 받을 것이다.'라는 경쟁적인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도 있다. 리더는 이에 대한 부작용도 떠안을 계산이 되어 있어야 하며 그 책임은 고스란히 조직 전체로 돌아온다.
2. 감정, 느낌, 기분의 각 단계에 위험이 포착될 경우 즉각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
정서가 장기적이고 넓게 굳어지기 전에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 분위기나 상황을 구체화하고 다른 시선으로 환기하는 해석적 메시지, 입장과 의도, 필요하다면 변화에 대한 계획, 이로 인해 조직과 구성원이 취하는 이익과 손해가 명확한 언어로 전달되어야 한다. 그 방식은 전체 공표가 가장 좋지만, 상황에 따라 소수의 양방향 대화를 통해 조직 내에 점진적으로 전파되는 것이 효과적 일 수도 있다. 이는 가족과 회사 모두 동일하게 해당이 된다.
3. 내적 발산과 외적 개입이 적절히 순환되어야 한다.
정서도 환기가 필요하다. 나는 아침마다 창문을 다 열고 집을 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침실이나 화장실은 더욱 그렇다. 정서도 움직이는 공기와 같아서, 종종 환기가 필요하다. 긍정적인 것은 자연스럽게 발산되고 순환되지만, 부정적인 에너지는 음(-)으로 쌓여 곯아 터지기 마련이다. 구성원들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기회와, 긍정적으로 환기하고 해소할 수 있는 적절한 외적 메시지가 개입되어 에너지를 계속 순환시켜 주는 것이 필요하다.
위 세 가지를 하기 위한 기본 전제는, 명확한 메시지와 의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1위와 같은 비전이나 실적 목표와도 다르고, 행동양식과 가치를 규정하는 조직문화와도 다른 것이다. 돈은 얼마를 벌고, 어떤 대학을 가야 한다는 단기적 목표와도 다르다. 우리는 어떤 전제와 가치로 이렇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공감된 정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원가족과의 관계 경험이 굴레가 되어 나를 흔들고 있는 것을 마흔이 되어 깨달았다. 그리고, 그 매듭을 풀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있었다. 회사에서 리더가 되었을 때 그 자리를 노리던 이들의 질투가 매섭게 불타올라 조직 전반에 어떻게 침투하고 취약한 하부조직을 어떻게 공략하는지를 경험하며 좌절하고 무너졌던 경험이 있다. 그 당시, 나의 상사도 나 만큼이나 무지하여 허허 웃기만 좋아하거나, 바쁘다거나, 조직운영은 너무 힘들고 귀찮다고 하소연을 하면서 상황을 피하는 사람이었다. 그와 대화할 때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하고 황당해할 것이 아니라, 나의 의도와 메시지를 소통하고, 그에 맞는 도움을 명확하게 요청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 글은,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가에 대해 감정적인 해석과 한탄을 넘어서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질문에 대한 나름의 성찰이다. 명확한 메시지와 의도라니. 정서라니. 너무 뻔하고 쉬운 말 아닌가? 허나, 보이지 않는 것은 얼마나 쉽게 무시되고 잊히는가. 눈앞의 것이 늘 다급하여, 너무나 쉽게 놓치던 것. 자아와 욕망에 가려 쉽게 잊었던 것. 달콤한 것에 휘둘려, 버리는 줄도 모르고 버렸던 것이지 않았던가.
삶의 명확한 의도와 메시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