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끝내 도착하지 못한 말이었다

by 이랑

그날은,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평소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웃고, 밥을 먹고, 이야기했지만- 처음으로 그와 함께 그곳을 찾아, 언니의 기일을 챙기고 그의 가족을 마주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부터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냥 푹 가라앉는 느낌. 아마도 그날 밤, 세 번째 고백이 보기 좋게 거절당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여전히 나를 '남봉우'로만 대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봤지만, 그는 나를, 아주 오랜 친구로만 곁에 두었다. 그게 우리 사이의 간극이었다.





그날 이후 며칠이 지나고 나는 아빠를 보러 갔다. 아빠는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요양 병원에 계셨다. 병원은 언덕 중턱에 있었고, 담장 너머로 키 낮은 산책로와 오래된 나무들이 보였다.


아빠가 아프신 뒤, 엄마는 그를 재하네 할머니 집 근처 병원으로 옮겼다. 낯선 병실에 아빠를 눕히고 돌아오는 길, 엄마는 말이 없었다. 그 뒤로 엄마는 할머니 댁으로 거처를 옮겼다. 살림살이를 줄이고, 익숙하지 않은 마루 끝방에 침대를 놓았다. 달라진 건 많았지만, 누구도 크게 말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정리하는 일은, 언제나 그렇게 조용히 시작됐다.


오랜만에 찾은 병원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복도에는 텅 빈 휠체어가 옆으로 기울어 있었고, 벽에는 계절이 바뀐 줄도 모른 채 색이 바랜 벚꽃 사진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나는 면회 신청서를 내고, 명찰을 받은 뒤 복도를 따라 걸었다. 천장은 낮았고, 형광등은 오래된 탓인지 깜빡였다. 창밖으론 바람에 휘날리는 흰 이불이 널려 있었고, 그 아래 나무 의자엔 간병인이 고개를 떨군 채 잠시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바퀴 의자 하나가 삐걱 소리를 냈고, 나는 그 소리에 몸이 조금 움찔했다.


걸음을 옮길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발은 앞으로 나아갔지만, 마음은 뒤로만 쏠렸다. 아빠를 마주할 생각에, 가슴이 조용히 조여왔다.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들. 그리고, 나를 밀쳐내는 그 차가운 동작들. 그 조각들이 내 안 어딘가를 조금씩 찢고 지나갔다.


대기 의자에 잠시 앉아 숨을 가다듬었다. 눈앞이 잠깐 멍해지는 사이,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몸을 일으켜, 기척을 남기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병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 창가 쪽 침대에 아빠가 누워 있었다. 눈을 감은 얼굴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볼이 조금 더 꺼져 있었고, 손등엔 주사 바늘 자국이 선명했다. 나는 말없이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그가 눈을 떴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나를 보았다.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 하지만 그 안에 뭔가, 아주 희미한 반응이 일렁였다.


“아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몇 초쯤 멈춘 시간 끝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뒤, 낮게. “……봉선아.” 그는 나를 보지 않았다. 언니의 이름만 되뇌었다.


늘 똑같았다. 가슴 안쪽이 서서히 조여왔다. 이 순간이, 가장 힘들다. 알고 있으면서도, 매번 버거웠다. 나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입꼬리를 들어 올리는 데, 그 단순한 움직임조차 자꾸만 어긋났다. 표정은 웃고 있는데, 마음은 점점 더 굳어지고 있었다. 익숙한 사람이 낯선 얼굴을 할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목소리였다. 나는 말을 잃었다.


말을 꺼내는 대신, 손등 위로 시선을 내렸다. 창밖으로 산책 중인 노부부가 천천히 걸어갔다. 어디선가 아까 본 풍선이 날아올라, 병실 창에 와닿았다가 아래로 다시 가라앉았다. 나는 그 풍경을 한참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잠깐 앉아 있었다.


“아빠, 오늘 뭐 하셨어요?”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아빠의 어깨 위로 손끝이 닿자, 그는 아주 천천히 몸을 틀었다. 세게 밀어내진 않았다. 다만, 스르르 피하는 쪽에 가까운 움직임. 그리고 이불을 움켜쥐고, 몸을 안으로 더 깊이 파묻었다.


“봉선이……봉선이 데려와……봉선아……”



작고 흐린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속삭임은 방 안에 길게 맴돌았다. 이름 하나가, 공기처럼 떠돌았다.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언니의 이름이 반복될수록, 이 방엔 나 아닌 누군가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손끝에서 체온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고개를 천천히 떨궜다. 어쩌면 나 역시, 그 안에서 너무 오래 서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형광등은 여전히 깜빡였고, 환기구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이 낮게 울렸다. 숨소리처럼, 혹은 어딘가가 새는 소리처럼. 이불 아래 움푹 꺼진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들썩였다. 매번 그랬다. 익숙한 말들, 같은 반응, 그리고 반복되는 침묵. 나는 그 안에서 오분을 넘기지 못했다. 이곳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건 언제나 여기까지였다. 그 이상은 없었다. 더 이상은, 들어갈 수 없었다.


문을 당겨 천천히 닫았다. 작은 닫힘 소리가 복도 쪽으로 길게 흘렀다.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아주 조용히 부서지는 것 같았다. 말보다 느린 소리로. 그 장면은 기억이라기보다, 어디 깊은 곳에 붙은 멍처럼 오래 남았다.


아빠의 병세는 변함없었고, 그 안에 자리한 상처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나는 그 기억에서 지워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시간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바깥을 맴도는 유령처럼. 절망과 무력감은 빠르게 번지진 않았지만, 기척 없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걸음을 옮길수록 가슴이 조이듯 아팠고, 호흡은 얕아졌고, 의식보다 먼저 반응한 발이 병원 현관을 벗어났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탔다. 달리는 차 안, 창밖 불빛이 흐르듯 밀려났다.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는데, 마음은 그보다 훨씬 더 느리게 따라갔다.


재하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말보단 온기였다. 침묵 속에서도 손끝으로 마음을 전하던 사람. 아무 말 없이, 머리 위로 손을 얹어주던 날들이 떠올랐다. 등 뒤로 스며들던 체온. 붙잡는다기보다 흘러내리지 않게 조심스레 얹힌 손길. 그건 다정함보다 더 오래 남는 감각이었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방식,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순간들. 오늘은, 그게 필요했다. 아무 말도 없이, 아주 단단하게 옆에 있어주는 그 사람의 방식이.


차가 골목에 멈췄을 때, 하늘은 이미 어둠으로 기울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벽면을 얕게 타고 흘렀고, 문 앞에 선 나는 그제야 한 번,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현관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눌렀다. 한번, 짧게.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다시 한 번, 이번엔 손끝에 힘을 주어 오래도록 벨을 눌렀다.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런데도 여전히- 세상은 조용했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의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흐르고, 그가 전화를 받았다.

“어, 우리야.”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공기 속 어딘가가 미세하게 바뀌었다. 묵직하게 붙잡고 있던 긴장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풀려나갔다. 나는 아주 작은 숨을 토해내며, 내가 얼마나 오래 굳어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뭐 해?”

“잠시 나왔는데, 무슨 일 있어?”

“나 지금 집 앞이야.”

“그래? 먼저 들어가 있을래? “


그의 말이 끝나자, 나는 비밀번호를 눌렀다. 버튼 하나하나에 익숙한 감각이 손끝에 닿았다. ‘삑’ 소리와 함께 문이 풀리고, 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 실내의 공기가 낮게 흐르며 몸을 감쌌다. 익숙한 냄새. 불 꺼진 거실, 멈춘 시간. 신발장에 잠시 멈춰 섰다가, 문을 닫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나… 아빠 보고 왔어.”


아직 끊기지 않은 전화에 대고, 말을 꺼낸 순간,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선 너머의 기척마저 멈춘 듯, 그 짧은 정적 안에 무언가 단단한 벽이 하나 세워진 느낌이었다.


조용히 입술을 다물고, 그가 있는 공간을 상상했다. 전화기 너머, 미간을 찌푸렸을 그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방 갈게.”




그가 없는 집은 조용했다. 기척 하나 없이 가라앉은 공간. 거실은 그의 성격처럼 반듯하게 정돈돼 있었다. 먼지 하나 보이지 않는 바닥, 제자리에 놓인 가구, 모서리마다 단단히 접힌 질서. 그런데 그 질서가 마음을 더 어지럽혔다.


리모컨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몸은 눕듯 기대고 있었지만, 마음은 어딘가에 서 있지도 못한 채 흔들렸다. 가만히 있을수록 더 불편했다. 불안은 가만히 퍼졌고, 아빠의 등이 떠올랐다. 그 뒤로 언니의 빈자리가 따라붙었다. 머릿속이 점점 조용해졌다.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천천히 번졌다.


어딘가를 피하듯 몸을 일으켰다. 냉장고를 열고, 물병을 꺼냈다. 그리고 식탁에 앉으려다, 시선이 걸렸다. 탁자 위에 놓인 그의 지갑. 겉면은 손에 잘 길든 가죽처럼 부드럽게 빛났고, 작게 접힌 모서리가 눈에 들어왔다. 별생각 없이 손이 갔다. 의도는 없었다. 그냥,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지갑을 열었을 땐, 안쪽 비닐창이 먼저 보였다. 오래전의 공기가 압축된 것처럼, 그 안에는 거꾸로 꽂힌 종이 한 장이 있었다. 끝이 살짝 들려 있었다. 나는 종이를 빼내 손바닥에 올려봤다.


작은 사진이었다. 낡았고, 색이 조금 바랬다. 가족사진은 아니었다. 나도 아니었다.


사진 속의 그 작은 아이는 봉선 언니였다. 그의 지갑 안쪽에 고이 들어 있는 것은, 멈춰버린 시간처럼 그녀가 찍힌 그 작은 사진 하나뿐이었다.


잠깐, 숨이 막혔다. 정확히는, 숨을 쉬는 걸 잊었다. 감정은 조금 늦게 따라왔다. 목이 조이고, 손끝이 얼어붙었다. 지갑 안에 아무도 없다는 걸, 그 순간 알았다. 그가 지금껏 품고 있는 건 과거 하나뿐이라는 것도. 그 안에 나는 없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 순간, 벼랑 끝에 선 기분이 들었다. 떤 손잡이도 없고, 어떤 경고판도 없었다. 그냥, 갑자기 끝나는 길이었다. 복부에서부터 뜨거운 게 올라왔다. 아주 느리고, 그러나 거세게. 목을 타고 올라온 그것은, 눈물이었다.


그가 너무도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니, 어쩌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사실이 이상하리만치 또렷해졌다.


내가 지금껏 그에게 쏟아온 마음은, 정말로 단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 없었다. 그 작은 사진 하나가 그걸 알려줬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를, 무던히도 이해하려 애써온 그 우스운 마음까지도. 그 모든 게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졌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정말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나쁜 놈. 정말, 나쁜 놈.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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