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연락하지 않았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나를 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줄 알았던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를 그리워하게 된 건 오히려 나였다. 마치, 그의 부재가 내 안의 무언가를 일깨운 것처럼.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찾지 않았다. 싸운 것도 아니었고,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첫 번째 이별을 한 셈이었다. 일주일이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감기처럼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은 오히려 그의 빈자리를 시멘트 위에 새겨진 균열처럼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에게서 연락이 오길 기다리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결국 내가 먼저 그의 집을 찾아갔다. 주차장에는 그의 차가 없었다. 텅 빈 공간을 보며 불안한 기분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벨을 눌렀다. 두 번, 세 번.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처럼.
망설이다가 비밀번호를 눌렀다. 다행히 그대로였다. 문이 열리고, 집 안의 침묵이 나를 맞이했다. 바람 한 점 없는 방에는 그가 떠난 공기만이 정지된 시간처럼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저 그 집을 찾아간 게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그가 나를 필요로 해주길 바라는 마음의 찌꺼기를 확인하러 갔던 것이다. 그 조용한 방 안에서 그의 체온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남은 건 내가 너무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한낱 오래된 신문지 같은 허상뿐이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그의 집을 찾아갔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넘도록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커피를 내리며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때 석호 선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봉우야, 재하 학교 휴학한 거 알아?"
그 말이 들리는 순간,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일제히 초점을 잃었다. 군대를 다녀온 그는 나보다 졸업이 두 해 늦었고, 지금은 마지막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던 사람. 어떤 불안도 버티며 앞으로만 걸어가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게서 완벽히 사라져 버렸다.
"몰랐구나. 하긴, 네가 알았으면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
그의 말 끝에 걱정이 있었는지, 아니면 비어 있었는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그저 그가 완전히 나에게서 도망쳤다는 생각. 그 생각만이, 한여름의 태양처럼 지독하리만치 선명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찾아간 건, 얼굴을 보지 못한 지 두 달쯤 지나서였다. 주차장에 그의 차가 다시 보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며칠째 아무 일 없이 흘러가던 시간이 그 순간 조용히 멈췄다. 나는 집을 나섰다. 서두른 것도 아닌데, 어쩐지 숨이 가빴다. 무슨 계절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맥 빠진 공기였다.
나는 아파트 앞 도로에 멈춰 섰다. 익숙한 차가 주차장 한쪽에 조용히 세워져 있었다. 그의 차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예상대로라고 생각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차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마음 한쪽이 묘하게 진정됐다. 혹은 더 불안해졌는지도.
나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탔다. 발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고, 중간쯤에서 한 번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그의 집 앞 복도에 도착했을 땐 숨이 약간 가빴다. 계단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었을 거다.
문 앞에 섰다. 희미한 빛이 문틈 아래로 새어 나왔다. 조용했다. 하지만 분명히, 그는 집 안에 있었다. 나는 한 발 더 다가서 초인종 앞에 섰다.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그 짧은 망설임이 길게 늘어졌다. 결국, 한번 눌렀다. 벨 소리가 울렸고, 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다시 한번 눌렀다. 이번엔 좀 더 길게. 숨을 들이쉬고 기다렸다.
결국 나는 손을 움직여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손끝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마치 몸이 먼저 기억해 낸 것처럼. 그러나 삑- 틀린 번호입니다. 짧고 건조한 전자음이 복도에 울렸다. 잠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손끝에 힘이 빠졌다. 무릎이 서서히 굳어왔다. 버튼 위에 올려진 손가락은 그대로 멈춰 있었다. 번호까지, 바뀌어 버렸다. 나는 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문틈에서 바람 한 줄기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재하야."
그리고 잠시 후, 다시 한번.
"문 열어."
기척은 없었다. 복도는 고요했고, 문 너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두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소리는 생각보다 작았고, 손바닥에 닿는 표면만이 점점 아려왔다.
"내가 미안해. 열어줘, 제발. “
말이 길어질수록,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끝내 들리지 않았다. 문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다가 조용히 돌아섰다.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눈은 부어 있었고, 뺨엔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얇게 굳어 있었다. 입가엔 아무 표정도 없었다. 식은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계절이 몇 번 바뀌었다. 눈이 내리고, 녹고, 다시 먼지가 쌓였다. 익숙했던 거리에는 새로 생긴 간판이 하나둘 보였고, 자주 가던 가게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휴대폰에 저장된 그의 번호는 더 이상 손가락이 닿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 있었다. 사진은, 이제 더는 열어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잊으려고 애쓴 적은 없었지만, 기억은 스스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를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 나는 온갖 종류의 감정을 경험했다.
그를 원망했고, 언니를 탓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감정은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자책으로 얼룩진 날들이었다. 때로는 그를 붙잡고 싶어 그의 집 앞에서 몇 시간이고 서성이다 돌아섰고, 때로는 방 안에 틀어박혀 일주일을 내내 울며 지냈다. 하지만 어떤 방법도 그를 되돌려놓지는 못했다. 시간은 흐르는데, 그는 그 시간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체념했다. 그를 완전히 잊었다기보다는, 그저 그가 없는 하루를 견디는 법을 익히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두려웠다. 잊히는 것이 아니라, 버텨지는 것. 그가 없다는 사실에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 내 안에서 그가 차지하던 자리를 매일같이 실감하는 일은 버거웠고, 잔인했다.
언니의 기일이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찾아갈 용기가 없었다. 겨우 남자 하나 때문에, 언니를 미워했다는 사실이 나를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고,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며칠을 고민했다.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가지 않겠다는 마음과, 그래도 가야 한다는 마음이 매일 밤 뒤섞여 천천히 가라앉았다.
늦은 오후, 나는 퇴근하던 길에서 아무 생각 없이 납골당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로등 불빛은 바닥에 낮게 퍼져 있었고, 그 위로 내 그림자가 조용히 따라붙었다. 바람은 얇았고, 어디선가 문 닫는 소리가 멀리서 울려왔다.
납골당 유리문 너머로, 이재하가 보였다. 형광등 아래, 익숙한 어깨선과 느린 움직임. 멀리서도 그는 분명했다. 그 역시 나를 보았다. 놀라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내가 올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나는 걸음을 멈췄다. 숨을 들이마신 것도, 내쉰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짧은 시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서 유리창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의 뒷모습이 유리문 너머 어둠에 스며들듯 멀어졌다.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잠시 내려두었던 감정들이, 유리에 흐릿하게 비친 내 얼굴처럼 떠올랐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그가 안쪽에서 문을 밀고 나왔다. 형광등 빛이 등 뒤로 흐르며, 그의 윤곽을 부드럽게 깎아냈다.
"왔어?"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그의 첫마디였다. 어딘가 먼 데서 불러오는 목소리처럼,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그를 보면 무너질 줄 알았다. 쌓아둔 원망을 쏟아내고, 비수 같은 말을 던지고, 아니면 그냥 아무 말 없이 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앞에 선 나는 입술도, 손끝도,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응." 하고 겨우 뱉은 한마디가 그 안에, 이 계절 끝에 남아 있던 마음을 천천히 흘려보냈다.
일 년이란 시간은 아무것도 덜어내지 못했나 보다. 나는 여전히 그의 작은 몸짓 하나에 반응했다. 고개를 돌리는 각도, 눈동자가 머무는 곳, 그 사소한 움직임에 감정이 따라갔다. 그리고 결국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늦었네. 인사하고 나와."
그는 시선을 거둔 채,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갔다. 차가운 공기가 안으로 스며들었고, 그의 뒷모습이 유리문 너머로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문을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불빛 속으로 스러져가는 그림자를, 마치 붙잡을 수 없다는 듯이. 그러고 나서야, 언니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언가를 깊이 삼킨 듯한 침묵을 안은 채.
"언니."
언니, 나 왔어. 그리고, 사과하러 왔는데...
입을 떼는 순간부터 눈시울이 따끔하게 아려왔다. 재하를 본 이후부터 가슴에 맺혀 있던 감정들이 빙빙 돌다가, 천천히 무게를 가졌다.
나는 여전히 너무 이기적이야. 언니 앞에 서 있는 지금조차도, 문득 떠오르는 건 언니가 아니라, 재하야.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왜 아무 말 없이 사라졌는지. 그 물음들로 머릿속이 가득한 채 여기까지 왔어. 언니에게 하려던 말들은 올라오다가 다시 가라앉았고, 미안하다는 말조차 마음 한쪽에 밀어놓은 채야. 나는 또다시 내 감정 안에서 길을 잃고 있어.
누구보다 언니를 생각한다고 말해왔지만, 돌아보면 항상 그래. 결국엔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고,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만 바라보다 끝내 말하지 못하는 동생이었지. 언니를 향한 죄책감마저도 결국엔 나를 위한 감정이었던 것 같아. 죄책감이라는 말에 기대어 스스로를 용서받으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게 더 미안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나를 이해해 줄까. 그럴 거라 믿고 싶어.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나는 아무 데에도 기댈 수 없을 것 같아.
제발,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 줘.
"미안해, 언니. 그리고... 정말로, 미안했어."
재하의 가족들에게도 인사를 건넨 뒤,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는 이미 떠났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낮게 내려앉은 저녁 공기 속, 주차장 쪽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던 그는 무심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희미한 연기가 어깨너머로 번졌다. 손끝의 불빛이 작게 흔들렸다. 재하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 담배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깊은 한 모금을 더 마신 뒤, 남은 담배를 근처 재떨이에 비벼 껐다. 불이 꺼진 자리에서 하얀 연기만이 느리게 흩어졌다. 나는 그를 향해 걸어갔고, 가까워질수록 희미하게 그의 냄새가 느껴졌다. 오랜만에 가까워진 그의 냄새가 다시 내 코끝을 스쳤다.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술 한 잔 할래?"
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너랑 술 마시기 무서운데."
낯설면서도 익숙한 농담.
그 속에 담긴 온기가, 오래전 우리를 닮아 있었다. 떠돌았지만- 그는 그렇게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그게 꼭 일 년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