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갔다가 오타루 살았죠
김민희 에세이,
삿포로 갔다가 오타루 살았죠
일상처럼 머무르는 게으른 여행자의
나 홀로 게스트하우스
머무르는 여행자의 고백, 삿포로와 오타루에서
먼 곳으로 떠나 머무는 삶을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것이다. 낯선 이국 땅에서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을 가진 사람들과 몸짓을 동원한 대화를 나누고, 메뉴판을 알아보기 어려운 동네 가게에서 밥을 먹고 기분 좋은 술 한 잔 함께 나누기도 하며 어울리는 삶.
낯선 땅에서 적응해 살아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일상에서 잠시 떠나온 여행은 언제나 아쉬움만을 남기고, 우리는 종종 머무는 삶을 떠올린다. 하지만 현실적인 조건들을 상상하면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미래로 유보하고 보류하다 결국 버킷리스트 속 하나의 꿈으로만 남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삿포로와 오타루라니. 눈오는 삿포로에서 따듯한 사케와 오뎅을 먹고 눈을 맞으며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싶다. 실제로 보면 소박하다지만 낭만이 있을 것 같은 오타루 운하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북해도산 우니가 잔뜩 올라간 덮밥으로 점심과 저녁을 해치우고 싶다.
<삿포로 갔다가 오타루 살았죠>는 그 용기를 낸 사람의 이야기다. 지인의 권유로 일본어를 더 잘 배우기 위해 일본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무르기 시작한 용기가 여러 해를 거쳐 일본과 일본인과의 다양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바다 너머 국경 밖에 “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건 용기를 내 본 사람만의 특권일 것이다.
불시에 찾아오는 인연이 소중하고 귀한 도시
살아가듯 머무르는 ‘게으른 여행자’의 생활 여행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되고, 꾸미지 않아도 되고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나른한 일상을 책을 읽으며 책상에서 경험한다. 이 책을 읽는 감각 자체가 조용한 동네 가게에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헬퍼와 라멘에 맥주 하나 시켜놓고 도란도란 수다를 떠는 그런 느낌이랄까. 편안하지만 매력있고 느슨하지만 기대되는 편안한 만남의 기분이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조금은 관대해지고, 조금은 더 도전적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다음에’라는 말로 미뤄두었던 되고싶었던 나의 모습이 되어보기도 한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어렵지만 항상 그 너머에는 새로운 가능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낯선 곳에서 만난 친구를 따라 눈길을 걸어보기도 하고, 걷기 대회에 나가고, 낯선 이성과 함께 여행하기도 하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나간다. 인식의 범위가 곧 그 존재의 크기라고 했었나. 그렇다면 저자의 세계는 분명 삿포로와 오타루를 합한만큼 더 커져있을 것이다.
나는 태생이 겁이 많고 처음 하는 것들을 주저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처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누군가 알려주거나 함께해준다면 그다음부터 잘 해나가는 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누군가와 함께하거나 용기내서 한번 해보면 되는 것인데 그 한 번이 어렵고, 그 처음이 어려웠다. 모리노키는 나의 그 한 번이었고, 처음이었다.
혼자 떠났지만 혼자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그 누군가와 10년 후를 약속하게 되었으니 함께였던 거다. 함께 동네를 거닐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술잔을 기울이고. 그리고 그때마다 다시 10년 후에 만나서 지금과 같은 것을 하자고 약속한다. 10년을 고대하면서 기다린다면 그 시간을 온몸으로 감각하며 살아가려 할 테다. 그 촘촘한 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진 않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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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갔다가 오타루 살았죠』는 저자가 ‘모리노키 게스트하우스’와 ‘게스트하우스 민타로 헛’를 오가며 약 10년 동안 만나온 인연들을 기록한 에세이다.
우연히 가게 된 홋카이도, 자연스레 배우게 된 일본어, ‘에라 모르겠다’ 하고 지원한 게스트하우스 헬퍼(스태프), 이후 10년간 게스트하우스를 오가며 알게 된 수많은 사람들. ‘생은 언제나 예측불허’라는 말처럼 저자는 이런 삶을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히 도착한 홋카이도는 ‘홀로 되기’가 삶에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알려줬고, 조마조마하며 시작한 일본의 게스트하우스 업무는 ‘뭐든지 그냥 한번 해보면 되는 것’이라는 확신을 줬다.
우연으로 다가와 인연으로 이어진 저자의 수많은 경험들은 혼자되기를 낯설어하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응원으로 다가갈 것이다.
혼자 있는 것을 어색해하던 저자는 첫 홋카이도에서 홀로 낭만을 배웠고, 첫 일본어 수업에서 문장이 틀릴까 입을 다물던 시절을 지나 게스트하우스 손님들과 농담을 나누며 인연을 만드는 여행자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며 ‘처음’을 가뿐히 뛰어넘어보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잘했고 잘할 것이고, 그래서 또한 잘될 인생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을 거란 예감. 하지만 그 모두의 방향은 좋은 쪽일 거라는 것. 잘했고, 잘할 것이고, 그래서 또한 잘될, 내 인생
그해 겨울, 눈이 미친 듯이 내리던 설국에서 만났음을 모두 기억하길 또 언젠가 다시 그곳에 우리 파묻힐 수 있기를.
"내가 오타루에 가거든 나를 보러 와주세요." 그 말에 화답해준 친구들.
그들이 찾아왔을 때의 반가움과 보내고 난 후 허물어질듯 찾아오는 허전함. 그렇게 며칠을 앓았고, 또다시 일상 같은 여행을 시작했다.
아트인사이트 전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search.php?q=김인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