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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뽁이 Apr 19. 2024

2. 살고 싶다는 본능 (1)

착한 딸 파업 3편

무기력증과 죽음에 관한 고민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자 아르바이트도 PT도 글 쓰는 일도 부질없게 느껴졌다. 마침 단기 아르바이트가 끝나갈 시점이었고 나는 점점 시들해졌다. 그리고 의욕이 없어져서 그런지 힘도 잘 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고 얼굴에는 생기가 사라졌다. 그 많던 힘이 어디로 빠져나간 건지. 당시의 나는 내 발바닥 어딘가에 고인 에너지를 억지로 끌어올려 쓰는 것만 같았다.


 언제쯤 죽으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조금 덜 고통스럽게 죽을 수 있을까. 여행을 떠난다고 거짓말을 하고 목적지를 알리지 않고 죽으면 실종 처리가 되려나. 그러나 내가 갑자기 죽으면 영문도 모르고 슬퍼할 가족들, 친구들, 놀랄 지인들 생각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정말 힘든 것이 맞나? 이전에도 종종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적은 없는데? 하는 의문들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유튜브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낮아진 자신감, 무기력, 반복되는 죽고 싶다는 생각. 나의 증상을 하나하나 찾아본 결과,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해당 주제를 다룬 유튜브 영상들을 끊임없이 보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자, 죽고 싶다는 생각도 어쩌면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희망을 품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죽은 후의 일들이 두려웠기 때문에 내 무의식이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유튜브 영상에 심리상담센터 안내가 포함된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심리상담센터에 충동적으로 상담 예약을 했다.



눈물을 쏟은 초기 상담

 상담 예약 이후, 아르바이트를 하는 도중에 심리상담센터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 초기 상담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렇게 초기 상담을 받으러 간 날,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직원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이를 보고 많이 놀랐던 것인지 바로 그 센터의 다른 직원분이 오셔서 원래는 상담 선생님 배정까지 3개월 정도가 걸리지만, 내 상태가 위급해 보여서 대기 시간 없이 그 직원분이 바로 다음 주부터 심리상담을 해주신다고 했다.


 이때 내가 위급해 보인다고 판단한 이유는 자살사고(*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라고 했다. 상담 신청서를 작성할 때와 전화 상담 때는 자세한 내막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초기 대면 상담시 죽음에 관해 어떤 방법이 좋을지 생각했다고 말하자 아주 위험한 상태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나도 내가 그렇게 심각한 상태인 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본 상담이 잡혀서 얼떨떨했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다음 주, 본격적인 상담 첫날. 그날은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한 건지. 그리고 엄마는 왜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지. 평생 엄마에게 인정받으려 아등바등했다는 사실과 가족들을 돌봐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고 털어놓았다.

  


나의 감정을 돌아본 시간

 내가 초등학생일 때 우리 엄마는 여러 번 수술을 받으셔서 아프셨고 그만큼 입원도 잦으셨다. 허리 수술을 하셨을 때는 내가 집에서 씻겨 드리고 산책도 같이 나가며 재활을 도왔다.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는 장면은 반지하 집의 화장실로 엄마를 부축해 들어가는 나의 뒷모습이다. 내가 나를 보았다고 착각할 만큼 그때는 내 상황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비극처럼 느껴졌다.


 사실 나는 엄마를 돌보는 대신 친구들과 놀거나 내가 좋아하는 책과 만화를 보고 싶었지만, 엄마가 아프니까 하고 싶은 것을 참고 미루며 살았다. 당시 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예술 계통의 고등학교로 가서 만화를 배워보고 싶었다. 그러나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았기에 이 진짜 꿈을 입 밖으로 내본 적도 없었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집의 기대에 맞춰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임용고시는 딱 2년 반 정도만 준비하고 포기했다. 집안의 지원 없이 내가 모아둔 돈만으로는 수험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된 후로 한 번은 엄마가 친척들이 모두 모인 명절에 내가 집에 보태는 생활비는 턱없이 적다고, 겨우 그거 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비아냥댔다. 그날 크게 상처받았고 부끄러웠다. 친척들 앞에서 나를 깎아내리는 엄마가 한없이 미웠다. 그날 이후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생활비로 드리는 일을 그만뒀다. 이 일화 외에도 나는 엄마의 폭력적인 말에 자주 상처받았지만,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참기만 했다. 그러면서 울분을 키웠다.


 이외에도 가부장적인 친가 분위기, 과거 시댁에서 겪은 서러움을 수시로 토로하는 엄마, 내 옷을 사거나 운동에 돈을 쓰려고 하면 눈치를 주는 아빠, 이 모든 상황에 적응하고 착한 장남 포지션을 꿋꿋이 지키면서도 화를 내고 싶을 때는 참지 않는 오빠까지. 모든 것이 내 목을 점점 옥죄였다. 나는 착한 장녀이면서 화가 나도 참기까지 했으니까.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나는 돈을 쓰는 것, 가족을 돌보지 않는 것, 나를 우선시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다.


 나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화가 났다. 나도 참고 있는 것이 많은데 왜 자기들만 참는 것처럼 구는지. 왜 나는 바보같이 섭섭한 이야기를 들어도 화조차 내지 못하는지. 나의 가족을 향한 분노가 크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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