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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뽁이 Apr 12. 2024

1. 죽고 싶다는 충동 (2)

착한 딸 파업 2편

집에서 팡팡 놀면서 유세라는 말

 나는 퇴사하는 날까지도 부모님께 퇴사에 관한 이야기는 정확히 말씀드리지 않았다. 쓸데없이 걱정 끼치는 것 같아서 그랬다. 물론 부모님께서는 매일 밤 빠르면 8시 반, 늦으면 11시에 퇴근하고 밤 12시까지 광고 모니터링을 하고 주말에도 똑같이 쉬지 못하는 딸을 보며 언젠가 빠르게 퇴사할 줄 알았다고 하셨다. 


 퇴사 후에는 후련했지만, 바로 취업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서 미리 알아본 정부 사업 관련 일자리를 알아보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다. 남은 시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유료 연재 사이트에 글을 쓰며 용돈벌이라도 하려고 했다. 그리고 퇴사한 회사에서 살이 4kg이나 쪄서 PT 20회를 충동적으로 끊었다.


 2024년 2월의 하루 루틴은 거의 똑같았다. 오전에 일어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서 3시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 한숨 돌리고 바로 5시에 PT 받기, 밤에는 도서관에서 10시까지 글쓰기. PT가 없는 날에는 저녁을 먹고 설거지나 빨래 개기 등 집안일을 했다. 절대 쉬지 않았다. 아니, 쉴 수 없었다. 호기롭게 중고 신입으로 들어간 직장에서 빠르게 퇴사했으니 조금이라도 쉬는 것이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일이 터졌다. 그날은 엄마와 아침 일찍 대중목욕탕에 다녀온 일요일이었다. 개운하게 씻었지만, 퇴사한 내가 못마땅했을 테니 어머니는 나와 오빠를 비교라도 하고 싶은 듯 어제는 오빠가 집안일을 많이 했다며 오빠를 칭찬하며 이야기했다. 예민했던 나는 나도 나름대로 집안일을 돕고 있다고 대꾸했다. 오빠는 평일에 출근해서 주말에만 집안일을 하니까 그 정도는 이야기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날 집에 도착한 후 나는 방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런데 방문 너머로 오빠에게 하는 엄마의 말이 들렸다. 


“쟤는 집에서 팡팡 놀면서 집안일 좀 했다고 유세야. 안 그러니?”


 듣자마자 방문을 벌컥 열고 화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그간 엄마의 패턴을 알기에 여기서 시비를 붙어봐야 싸움이 커질 것을 알았고 약간의 진실이 섞여 있었으니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었다. 화내는 대신 엄마의 말을 억지로 못 들은 척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서러웠다.


 그날부터 나는 무가치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를 반복하는 나에 대한 자괴감과 엄마에 대한 죄책감, 그와 상반되는 분노. 여러 감정이 휘몰아쳐 내 목을 조였다. 그날은 교회에 가서 예배가 진행되는 내내 손등을 뜯었다. 손톱자국이 나고 핏방울이 맺힐 때까지.     



죽음을 떠올렸던 밤들

 엄마의 말을 일주일은 계속 곱씹었던 것 같다. 그 말 한마디가 가슴 깊이 뿌리를 내렸다. 원뿌리에서 걷잡을 수 없이 부정적인 잔뿌리가 돋아나더니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그래, 나 같은 게 뭘 제대로 하겠어.”

“이렇게 살아서 의미가 있나?”

“또 실패하면 그때는 정말 못 견딜 것 같아.”

“왜 나는 이 모양이지.”

.

.

.

“다 포기하면 편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계속하고 고통을 견디느니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부정적인 생각들에 짓눌린 심장이 갑갑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밤도 있었다. 그런 밤은 새벽에 깨어 멀뚱히 앉아 있곤 했다. 어둠 속에 갇힌 내 모습을 누군가가 지켜보는 듯 묘한 기분이었다. 그러다 책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책상 위에 있는 커터 칼을 들어 손목을 긋는 상상을 했다. 여러 번 그으면 출혈이 심해져 죽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뭔가를 하면서 살아야 할까.


 이런 생각도 했다. 우리 집이 한강이랑 가까운데, 낮에 햇빛 받으며 산책하다가 한강 중간에 있는 대교에 가서 뛰어내리면 좋겠다는 생각. 유일하게 산책을 좋아하니 그나마 괜찮은 인생의 마지막일 것이라고 여겼다. 마침 날이 추워서 패딩을 입을 텐데, 패딩이 물을 머금으면 무거워서 떠오르지도 않을 것 같은데.


 이렇게 엄마의 말 한마디가 기폭제가 되어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렇게 되는 데 딱 일주일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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