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뽈삐래 Jul 26. 2022

취뽀의 신

이뽈)


 엘리스 스프링스 백패커에 짐을 풀었다. 자신 있게 울룰루로 갔지만 구직 실패의 쓴 맛을 보고 온터라 자신감이 많이 위축되었다. ‘이곳에서마저 취업이 안된다면? 플랜 C는 없는데. 어디로 가야 하죠?’ 고민이 고민을 불러왔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딥슬립에 빠졌다. 답 없는 고민을 오래 하는 타입은 아니지.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에게 엘리스 스프링스의 구직 상황을 물어보니 일을 구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는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그 쉬운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는지 어디 한번 보자.


 엘리스 스프링스 도착한 다음날 호텔과 리조트를 리스트업 해서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리조트에 이력서를 내고 10분 뒤 전화가 왔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일을 할 수 있니?’


 타이밍 좋게도 공석이 있었고 내 이력서를 받은 사람이 보스였다. 이렇게 운이 따르다니, 될놈될인가. 게다가 큰 체인점의 숙박업소가 아니라서 고용 절차가 심플하기까지 했다.


 하우스키핑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가져와야 할 서류와 업무에 대한 브리핑을 들으러 리조트를 방문했다. 하우스키핑이나 웨이트리스, 주방 일 어느 하나 가리지 않는다고 했더니 여긴 레스토랑이 없다고 했다. 아차 싶었다. 사전조사 안 해간 티를 이렇게 내다니. 첫인상은 꽝이겠구나 했는데 이게 웬걸? 친분이 있는 레스토랑을 소개해주는 게 아니겠는가. 고맙게도 미리 전화해둘 테니 가서 이력서를 내라고 선뜻 세컨 잡을 제안 해주었다.


 레스토랑이 영업하기 전에 방문하여 이력서를 내니 마침 웨이트리스를 구하고 있다며 당장 다음 주부터 일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울루루를 떠나며 다짐했던 투잡을 엘리스 스프링스 도착 단 이틀 만에 해내었다.


 투잡러, 성공적.


 하우스키핑 일의 시급은 평일 AUD $23, 토요일 $26, 일요일 $30으로 한주에 25시간 정도 배당받으며 업무 강도는 세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슈퍼바이저와 세탁 담당자가 휴일일 때는 그들의 업무를 맡아했다. 하우스키핑 일보다는 체력적으로 편한 일이었고 더 많은 근무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물론 책임져야 할 몫이 생기긴 했지만. 슈퍼바이저 외에는 모두 워홀러여서 공감대가 저절로 형성이 되어 서로 협력하고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물론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 이곳에서도 통하긴 했지만 말이다.  

호주 엘리스 스프링스_근무했던 리조트

 하우스키핑 일이 좋았던 점은 리조트 수영장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베네핏 때문이었다. 사막에서의 수영장은 오아시스와 다름없었다.


 웨이트리스 시급은 평일 AUD $24, 토요일은 $29였다. 일요일은 식당을 문을 닫았고 주당 20시간 정도 일을 했다. 고기 부위별 명칭과 와인 종류를 몰라서 취업이 확정되고 나서부터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다. 메뉴판을 숙지하고 익숙하지 않은 요리 재료들을 외웠다. 계산대 사용방법에 익숙해지려고 수험생처럼 열심히 공부하니 슈퍼바이저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 처음 봤다고 감동적이라며 동네방네 자랑을 했다. 업무 관련 지시사항을 기억하고 내 일을 했을 뿐인데 자랑스럽다며 우쭈쭈 해주는 내 슈퍼바이저는 내가 첫 주문을 받았을 때 아기가 첫걸음마 떼는 것을 보는 듯 굉장히 기뻐하고 흐뭇해했다. 그녀는 내가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격려해주었고 그 정도의 실수는 누구나 한다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매니저는 나 때문에 손실을 보았을 때도 본인이 말 안 해줘서 그런 거라며 되려 미안하다고 했다. 너의 잘못이 아니니 자책하지 말라며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심지어 내가 주문을 잘못 받아 손액이 발생됐을 때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며 다음부터 주의하면 된다고 위로해주었다. 셰프도 매일같이 잘했다고 진심을 다해 칭찬해주는데 쑥스럽지만 기분은 너무 좋았다. 그렇게 나는 칭찬과 격려로 레스토랑의 에이스로 무럭무럭 자라 새내기의 교육까지 담당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손발이 척척, 다들 내 일, 네 일 할 것 없이 도와주었다.

호주 엘리스 스프링스_조개관자 요리와 스테이크의 크림소스가 맛있다

 앨리스 스프링스에 간다고 하면 주변에서 의아해한다. 거길 왜 가냐고, 지인이 있냐고 묻는다. 고로 사막을 선택하는 워홀러가 거의 없고 타 지역에 비해 정보 공유가 많이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니, 어느 커뮤니티든 속해 있는 것이 이곳에서 적응하기 좋다는 말인데. 그것도 다 사람 나름이다. 왜? 난 혈혈단신으로 사막으로 건너와 지인 없이 발품 팔아 일자리와 숙소를 스스로 빠른 시간 안에 찾았다. (물론 약간의 운도 따랐지만). 커뮤니티는 무슨. 나도 했는데 누구라도 못하겠는가. 그러니 쫄지 말고 구하라, 그리하면 구할 것이다.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다.

이전 07화 세상의 중심에서 구직을 외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