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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뽈삐래 Jul 27. 2022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

이뽈)


1) 또라이 넘버 원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웨이트리스로 일을 했다. 손님을 자리로 안내하면 자연스럽게 그 테이블을 담당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네덜란드 손님에게 간단한 메뉴 설명과 함께 메뉴판을 건네고 물을 서빙하려고 할 때였다. 벨기에 동료가 본인이 그 테이블을 맡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내가 네덜란드 손님과의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을까 봐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이라 생각해 저들은 영어를 매우 잘하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네덜란드 사람은 다 영어를 잘한다며 본인이 네덜란드어를 하므로 손님을 관리하겠다고 했다. 


 ‘잉? 뭐지? 그래, 뭐 본인이 일 더 하겠다는데.’


 그렇게 그녀는 그 테이블을 담당했고 모든 일이 끝난 후 다음 날을 위해 테이블을 세팅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홀 매니저에게 본인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영어, 네덜란드어, 불어, 독어 무려 4개 국어를 한다며 자랑을 했다. 그리더니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국인은 한국어 하나만 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응. 우리는 모국어가 한 개거든. 근데 너네는 벨기에어가 없니?’


 ‘어? 어…. (무안)’


 벨기에 공용어는 독일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이고 나는 알고 있었다. 벨기에어가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평소에도 유럽인 부심, 벨기에 부심으로 똘똘 뭉친 그녀는 살짝살짝 쨉을 날렸고 나는 그날 제대로 어퍼컷을 날렸다. 나는 참지 않는다.




 2) 또라이 넘버 투


 영어 실력이 급성장하려면 외국인 남자 친구를 사귀라고 하던데 나의 경우는 외국인과 말다툼을 하는 것이었다. 영어로 말을 이렇게 빨리 하다가는 에미넴이 될 수도 있겠는걸? 리조트에서 함께 일한 동료 이야기이다. 


 태생부터 심장병이 있다는 그녀는 툭하면 아프다고 출근시간이 지나서 전화로 결근하겠다고 했고 심지어 전화도 없이 무단결근하는 날도 있었다. (그날 그녀의 페이스북에는 여행 간 사진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녀는 아픈 것도 컨트롤이 가능한지 시급이 평일보다 높은 주말에는 결코 결근하는 일이 없었다. 주중에는 그녀 몫까지 해야 되니 퇴근이 늦어졌다. 처음에는 그녀 덕분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40도가 넘는 땡볕에 10시간 이상을 일한 날은 그녀 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줬으면 충분히 대체자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런 시도도 안 한 그녀는 (혹은 그년은) 본인 일에 대한 책임도 없을뿐더러 동료들에 대한 배려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프다던 그녀는 그날 저녁에 우리 집 호스트와 술파티를 벌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동료가 일을 그만뒀고 그것이 나 때문이라고 그녀가 소문을 퍼뜨렸다. 나는 억울했고 또 다른 말이 생기는 걸 막고자 삼자대면을 했다. 이력서를 냈던 카페에서 좋은 조건으로 연락이 와서 이직을 결심했고 나와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 이런 소문이 당황스럽다는 말에 그년이 더 당황했다. 


 그리고 엘로카드를 날렸다. 한 번만 더 건드리면 가만 안 둔다고. 본인을 왜 그렇게 미워하냐는 울먹거림에 어이가 없어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조목조목 이야기를 해주었다. ‘네년이 그렇게 듣고 싶어 한다면 내 차례차례 읊어주지.’ 그녀는 끝내 울었다. 그것도 내 앞에서가 아니라 보스 앞에서. ‘뭐 이런 년이 다 있지? 그래, 나만 나쁜년이 되는 거지.’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슈퍼바이저 때문에 불이 붙었는데 그녀는 내가 만난 최악의 인간형이었다. 여유로움은 통장에서 오는 것이라 믿었다. 취업경쟁과 노후대비로 팍팍한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되는 그녀는 왜 이렇게 못난 거지? 쉽게 말해 강약약강인 사람. 거기에 덧붙여 이간질과 눈치 없음은 덤. 본인이 둘을 이간질시켜놓고 둘이 싸우면 어리둥절해한다. 게다가 최악 오브 최악인 건 아시아인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짙다는 것. 우선 나를 중국인이라고 칭했다. 한국인이라고 몇 번을 정정해줘도 똑같은 실수를 매주 한번 이상은 반복했다.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똑같다면서. ‘그래, 너나 미국인이나 똑같이 생긴 것처럼’이라고 맞받아치면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미국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애들레이드에 사는 사촌이 크리스피 도넛을 사들고 온다고 온갖 자랑을 해댔다. ‘보라, 너 크리스피 도넛 알아? 모르지? 그게 되게 맛있는 건데… (주절주절)’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서 말을 잘랐다. ‘알지. 우리 동네에 있어. 근데 나 그거 안 좋아해. 어렸을 때는 많이 먹었는데 너무 달더라고.’ 그녀의 벙 찐 얼굴. 하지만 여전히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한국에 크리스피 도넛이 있다고? 말도 안 돼.’ 아 한 대 꿀밤을 먹이고 싶다.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게다가 본인의 업무이자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인 쓰레기 버리는 일을 다른 사람한테 넘기려고 했다. 다른 동료들은 부탁을 들어주곤 했지만 나는 다르다. 단칼에 거절했다. ‘싫어. 그거 네 일이잖아. 본인 일은 본인이 해야지. 그리고 네가 지금 제일 한가 한대.’ 나는 참지 않는다.





3) 또라이 넘버 쓰리


 꿀 같은 낮잠을 자고 있는데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용은 방을 비우라는 것이었고 발신자는 이 집 마스터. 


 ‘나가라고? 내가 잘못 읽었나?’

 우리가 그 집으로 입주한 지 고작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이 집의 룰은 매주 한 번 거주자들이 모두 모여 대청소를 하는 것이었고 쓰레기통의 경우 채워지면 알아서 비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주방을 이용한 뒤에 가득 찬 쓰레기통을 치우지 않았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우릴 내쫓겠다는 것이다. 


 사건 발생 4일 전에는 마스터가 주최한 바비큐 홈파티에서 즐겁게 술잔을 부딪혔으며 한국인을 짝사랑하는 그의 연애상담을 들어주고 컴퓨터로 한글을 사용할 수 있게 자판 세팅도 해주었다. 이틀 전 대청소 날에는 각자의 업무 일정 때문에 삐래랑 옆방 사는 루벤이 모두를 대신해 집 청소를 했었다. 

 ‘그런데 우리 보고 나가라고? 이유가 쓰레기통 때문이라고?’ 


 그 열흘 동안 우리가 쓰레기통을 몇 번 치웠는지, 이 정도는 가득 찬 것이 아니라서 안 치웠다는지 뭐 하나하나 다 따져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결국 저 새끼는 마스터. 우린 집 없는 외노자.


 세상은 넓고 병신은 많다더니 설마 이 집 마스터가 병신일 줄이야. 내가 아는 욕을 다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욕을 배워둘 걸 그랬다. 할 수 있는 욕이 없어서 화가 났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누굴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알았을 때의 씁쓸함이란. 14년을 알고 지낸 삐래가 누굴 이렇게까지 싫어할 수 있는지, 살기를 가득 담은 눈빛을 표출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근데 진짜 싫어진 건 그 문자 이후였다. 휴지 무료 제공이 집세에 포함된 사항인데 본인 휴지니 이제 쓰지 말란다. 치사함이 하늘을 찌른다. 에라이 쫌팽아. 마주쳐도 인사를 안 했고 꼭 필요한 말을 할 때면 우리 눈을 피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 있을 때는 친한 척, 쿨한 척, 사람 좋은 척. 사람이 이렇게 이중적일 수가 있을까. 지킬 앤 하이드도 이보다는 안 무섭겠다. 본인이 세운 규칙을 원칙대로 지키는 사람이라면 말도 안 한다. 자기는 주방 사용 후 식기 세척을 바로 하지도 않으면서 방문과 창문을 열고 에어컨을 가동하면서 우리한테만 난리법석이다. 집 없는 자의 서러움. 


 우리 옆방 커플도 이 집을 나갈 거라고 했다. 설거지를 제대로 안 해서 주방에 개미가 생겼다고 그 커플들 책임이라고 마스터가 그랬단다. 주방은 우리 모두 다 썼는데 대체 무슨 말씀인지? 본인이 남은 음식 식탁에 올려놓는 거 우리가 본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너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 평등한 Asshole (재수 없는 놈)이구나.


 우린 바로 집 구하기 대작전을 펼쳤다. 할 수 있는 사이트에 글을 올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문의를 했다. 리조트 사장은 내 글에 본인이 우리들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보증한다며 댓글을 달아주었고 당분간 할인가로 리조트에서 지내도 된다고도 했다. 스테이크 하우스 매니저는 본인과 같이 한방 쓰자고 제안도 해주었고 같이 일하는 동료는 집 렌트한다는 글에 우리를 태그 해줬다. 모두에게 너무 고마웠다. 그래도 우리 주변에 진짜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걸 다시 느꼈다.


 매일매일 급변하는 나의 심정.

1일 차. ‘삐래가 앨리스 스프링스로 오기 전에는 혼자서 직장 구하고 집 구하고 다 해봤는데 뭐 지금은 둘인데 다 잘 될 거야.’ 

3일 차. ‘어? 좀 불안하다. 괜히 초조하다.’

4일 차. ‘그래, 정 안되면 백패커 들어가면 되지. 우리 하나 잘 곳 없겠어?’

5일 차. ‘그래도 그래도... 백패커 생활 두 번 다시 싫어.’


 그러던 6일 차. ‘드디어 찾았다! 우리 집! 내가 찾던 그 집!’ 우리가 일하는 리조트에서 가깝고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가장 안전한 동네이며 캘리포니아 느낌 나는 곳에 위치했으며 우리가 사용할 방은 더블 침대 두 개가 들어가도 여유 공간이 있을 만큼 넓었고 전용 욕실과 전용 테라스가 갖추어져 있었다. 퍼펙트했다.

호주 엘리스 스프링스_새로 구한 집은 골프장 옆에 있는 고급 주택 단지였다

 일주일 사이에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크리스마스에 이사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사람이 우리일 줄이야. 우리의 서른 번째 크리스마스 날에 마신 와인은 절대 잊지 못할 거야. 그래도 잘 해결되어서 참 다행이야. 

 ‘이봐, 前주인 꺼져줄게 잘 살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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