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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뽈삐래 Jul 27. 2022

06. 호주 워홀을 정리하며

이뽈)

 워홀이 끝났다. 호주에서의 2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다이내믹했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낯선 순간들이 빼곡히 모여 다채로운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주었다.


 모든 것의 끝은 사람이라는 말처럼 사람 때문에 분노했고 사람 때문에 웃었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가장 선명한 기억은 모두 사람과 관련되었다. 친한 친구와 감정적으로 이렇게까지 엮혀 본 적도 정신적으로 이렇게까지 의지해본 적도 처음이었던 시간 속에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임이 각인되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마주했고 알고 싶지 않았던 나의 못난 점이 드러났다. 인정했고 반성했다. 그렇게 조금씩 이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삐래)

 2년간의 호주 생활 기나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영사기 필름 돌아가듯 장면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뽈이 나에게 던진 워킹 홀리데이 간다는 말 한마디에 '괜찮다는'말로 견고하게 쌓아 놓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진 순간, 호주에 가겠다고 뜨거운 용기를 냈던 날, 외로움에 사무쳐 얼굴에 눈물자국이 마를 날 없던 퍼스의 생활, 하루하루 즐거움에 파묻혀 걱정이란 단어를 모르고 지냈던 타즈매니아의 생활,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서러웠던 지난날, 우당탕탕 친구와의 룸메이트 생활 등등 온갖 새로운 상황에 온몸으로 부딪치고 다치고 쓰러졌지만 결국 다시 일어났다.


 이렇게 지내면서 한국에서의 나와는 180도 달라져있었다. 거절을 못 해 꾸역꾸역 부탁을 다 들어주며 어쩌다 거절하고 나서는 안절부절못하고 괜히 미안해하던 나, 힘들다 화난다고 말할 수 없어 뒤에서 혼자 부들부들 거리며 우는 나는 사라졌다. ‘NO! 미안 나 못해’라고 거절해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다.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말은 망설이지 않았고 지금 느끼는 나의 감정을 솔직히 전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장하다, 이삐래'

 

 이런 변화를 만들 수 있었고, 깨달을 수 있었던 건 7할이 이뽈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


 가끔씩 ‘미안, 지금 못해 바빠’라고 거절할 때면, 이뽈이 쓰윽 나에게 다가와 무심히 툭 말을 건넨다. ‘오~ 삐래~ 이제 거절 잘한다~ 굿굿’ 이렇게 나의 사소한 변화까지도 지켜보고 혹시나 내가 무의식적으로 나를 낮춰 말하는 습관이나 행동을 할 때면 단호히 말해주는 이뽈.


 아마, 이뽈은 기억 못 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이날의 대화와 그 대화 속에 겪었던 감정을 잊지 못한다. 습관처럼 이뽈이 있었기 때문에 잘 해낼 수 있었다고, 내가 한 것은 전혀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너는 그렇게 말하는 거 고쳐. 여기서 누가 누굴 끌어줘. 기회는 내가 만들어줬어도 네가 영어면접 망치면 못하는 거야. 근데 잘해서 일도 할 수 있게 된 거고 네 스스로가 적응도 잘한 거지. 누구의 덕분도 아니야. 내가 뭐라고 널 끌어줘. 나도 한낱 외노자라고.(여기서 시큰둥함이 포인트다)". 


 늘 잘 된 건 남 덕분, 잘 못 된 건 다 내 탓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살고 있던 나를 한방에 부셔주는 말 한마디였다. 사실 엘리스 스프링스에서 면접 기회를 만들어준 건 이뽈이기에 생색낼 법한데, 그런 내색은 전혀 없었다. 무심하게 툭 던지는 이뽈의 말에 눈물이 왈칵 날 만큼 감동했다. 어쩌면 남 칭찬은 잘하면서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에 인색한 나를 보며 마음이 쓰였던 아닐까?


 15년 지기, 무뚝뚝함 속에 다정함이 있고 내가 안 좋은 일을 당하면 나보다 더 화를 내주고, 가족만큼 가족 같고, 나에게 울림을 주는 소중한 친구 이뽈.


 늘 나의 마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기회가 없었어. 너와 함께 호주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고, 행복했다. 아마 우리의 호주 생활은 40살이 되어도 50살이 되어도 '그때 그랬지, 그래, 그때 행복했어'라고 곱씹을 수 있는 추억의 앨범이 될 거야. 그 앨범에 너와 같이 만들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 진짜로. 너도 나와 같이 호주 생활을 같이 해서 행복했었으면 좋겠다. 고맙다.

우리가 많이 사랑한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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