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2년 지기 친구가 정반대의 성격을 가졌을 때 생기는 일
삐래)
12년 지기 친구와 같이 살면서 알게 되는 '나'라는 사람.
오랫동안 친구였는데도 속속들이 알지 못했던 내 친구 이뽈.
큰 규모의 육류 회사에 지원을 했었다. ‘설마 되겠어?’라는 생각으로 이력서를 보냈고, 이런 안일한 생각으로 인터뷰 준비 따윈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것은 인터뷰 전화였다. 당황한 나머지 이뽈 얼굴을 쳐다보고 어버버 받았다가 결국 보기 좋게 영어 인터뷰를 망쳤다. 영어 전화 면접은 처음이라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좋은 직장이기에 아쉽기도 했다. 그렇게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이뽈이 던진 한마디.
“기본적인 영어는 준비했어야지!! 뭐해야 하는지 준비도 안 하고! 이렇게 면접을 보면 어떻게???”
가슴 한 구석이 쿵 하고 무너졌다. 나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 어린 말들에 마음이 상했다. 가장 속상하고 아쉬웠던 건 그 누구보다 나인데. 그래, 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고 나를 위한 걱정이라는 걸. 하지만 그때만큼은 ‘그냥 나에게 작은 위로를 해줄 수 없는 건가?’라는 섭섭함과 ‘스스로 충분히 자책하고 후회하는 나에게 꼭 확인 사살을 해서 구석 끝까지 몰아서 무안하게 하는 거지?’라는 민망함에 점점 얼굴이 빨개지고 화가 났다. 그래서 난 아무 말없이 자리에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이뽈이 황당했을지도 모른다.
우린 12년 지기 친구였지만 그동안에는 이런 감정적인 트러블이 없어서 각자가 대인관계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 지를 잘 알지 못했다. 나는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과 상황을 객관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반면, 이뽈은 더 큰 오해를 막기 위해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본인의 감정과 생각을 즉각 표현한다. 정반대의 성격으로 인해 자기 사람에 대한 애정과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
이 날도 어김없이 나를 추스르고 난 뒤 솔직한 나의 감정을 이뽈에게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이뽈의 첫마디는 ‘내가 심했어, 미안해’. 이 한마디를 시작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너와 나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이뽈 입장에선 내 성격이 답답했을 텐데 그런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고 이해해 주는 이뽈에게 참 고마웠다. 그때의 긴 대화를 통해 이뽈을 좋아하는 이유가 더 생겼다.
이뽈)
17살 때부터 알았던 가장 친한 내 친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뭘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는 말처럼 친구와 같이 살면서 맞닥뜨린 현실에 우린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 했고 불편해했다.
나보다 취업이 급했던 너는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알아보았고 꽤 좋은 회사로부터 전화 인터뷰가 왔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너는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려버렸고 나는 너를 다그쳤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기에 예상 질문을 뽑아서 인터뷰를 연습했어야 했다는 걸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테지만 나는 너를 위한다는 마음에 너한테 말로 상처를 내고 말았다. WHAT TO SAY보다 HOW TO SAY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감정이 앞설 때는 그게 참 실천이 안 된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는. 편하다는 이유로 더 배려하지 않았다. 친구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그제야 내가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가장 속상한 건 친구인데 내가 제일 속상한 사람 마냥 위선을 떨었다. 한국이었으면 이럴 때 내가 할 일은 닥치고 치킨이나 떡볶이를 주문하는 것인데 그때는 그런 현명함이 없었다. 나는 문제 해결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는 감정적 위로와 마음의 안정에 우선을 두는 다른 사람임을 깨닫는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란 걸 알지만 그때 나는 가끔은 우리의 다름을 내가 맞고 너는 틀렸다고 나도 모르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우린 계속해서 대화를 해나갔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했다. 그로 인해 나는 부끄러운 나의 과거를 마주하고 다신 그런 못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