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뽈)
연어 공장 일은 새벽 6시에 시작해 오후 2시 반에 끝이 났다. 정해진 근무 스케줄이 생기니 세컨잡을 구할 여유가 생겼다. 이력서를 수정하고 열 장을 인쇄했다. 휴온빌은 작은 동네이기 때문에 온라인 구직 신청보다 직접 방문하여 이력서를 제출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가장 처음으로 이력서를 낸 곳은 집에서 도보 3분 거리의 로컬들이 찾는다는 수제버거 집. 카운터에 있던 사장님이 이력서를 받고는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현재 사람은 구하고 있지 않지만 필요하면 연락을 하겠다는 상투적인 끝인사. 별 기대 없이 문을 열고 나오는 내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라, 혹시 다음 주에 하루 일해 볼 수 있니?’
이때는 이스터 바로 전 주였고 스텝이 이주 간 휴가를 가서 잠시 일손이 필요했던 것이다. (부활절은 호주의 큰 명절 중 하나)
‘나 이렇게 운 좋은 사람이었나?’
테이블이 11개뿐인 작은 가게. 그중 2개는 야외 테이블인데 당시는 밖에서 음식을 먹기에 추워서 사실상 테이블은 9개. 나는 이곳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평균 6-7시간을 키친핸드 겸 웨이트리스로 일하게 되었다.
첫날 유리잔을 깼다. 반사적으로 쏘리라고 사과했더니 매니저 페이샤가 ‘미안할 필요 없는데. 유리니깐 당연히 깨지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별 거 아닌 일에 그리 놀랄 것 없다는 그녀의 에티튜드에 감동받았다. 잠시 뒤, 여전히 당황한 나에게 슈퍼바이저 에린이 ‘어? 오늘 나도 똑같은 유리잔 깼는데’ 라며 미소 지으며 다가온다. 둘이 키득키득 웃자 매니저 페이샤가 그렇게까지 웃을 일은 아니지 않냐며 타박한다. 물론 장난스러운 어조로. 페이샤와 에린은 깨진 유리 조각을 같이 주워주며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나는 일이니 너만 안 다쳤으면 된다고 놀란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둘은 최고의 직장 상사였다. 작은 거 하나에도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고 손님이 많아 바쁠 때는 괜찮은지 물어 봐주는 사람이 먼저인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여긴 직장 동료들만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손님 또한 아주 나이스! 버거집을 찾는 사람들은 대게 단골손님들이었고 그들에게 에린이 나를 소개해줬다. 그들은 내가 첫 주문을 성공적으로 받았을 때 뿌듯해했고 사회 초년생의 성장기에 흐뭇해했다. 일을 하면서 손님들과 일상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했다. 휴온빌이라는 동네에 잠시 머물다가는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나도 그들과 함께 휴온빌 지역 주민 중 한 명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워홀러는 비자 하나당 한 직장에서 최대 6개월까지만 일을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연어 공장과 버거집 모두 비슷한 시기에 일을 그만둬야 했고 휴온빌에는 일자리가 많이 없기 때문에 지역 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안녕, 짧았던 6개월 동안 정이 너무 많이 들었어. 일을 그만둔다고 말을 하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눈물이 날 수도 있는 건지 처음 알았어. 구름 타고 날아가는 기분일 줄 알았는데.
마지막 날, 셰프인 팀이 만들어 준 마지막 식사는 정말 맛있었어. 츤츤데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들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해 주어서 고마워. 설거지를 하던 나를 갑자기 뒤에서 안고 가지 말라던 페이샤. 내가 쓴 엽서를 읽고 그리 좋아해 주면, 그리 울어주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요. 오늘은 나를 쳐다보기만 해도 울컥할 것 같다며 말을 걸지 않을 거라던 에린. 나와의 이별을 얼마나 아쉬워하는지 알 수 있었어. 나를 꽉 껴안고 함께 일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해 주는 데 나 그때 되게 감동받았어. 모두들 만나서 반가웠고 다시 또 만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