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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Oct 12. 2020

다시, 피아노


 한 친구가 파티 룸을 차렸다. 나는 여기서 청소 알바를 했다. 그곳엔 피아노가 있었다. 손님들이 진탕 놀고 남은 흔적들을 치운 뒤,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보통 이런 경우,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슬픈 뒷모습을 하면서 구슬픈 가락을 연주하겠지만, 나는 오른쪽 검지손가락을 곧게 펴고 ‘라’만 연신 눌렀다. 산만하고 신경질적인 날이었는데 건반 하나의 소리, ‘라’ 만 눌러도 거기에 집중되었다. 편안했다. 역시 음악?의 힘이란!


 초딩 때 피아노를 배웠다는 애들은 둘 중 하나다. 엄마 손에 끌려갔거나 친구 따라 갔거나. 6학년 때까지 체르니 40번을 끝내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피아노와 작별한다. 그 이후, 음표는 머리 속에서 사라진다. 전형적인 스토리다. 나 또한 여기에 속한다. 피아노를 6년이나 쳤는데 단 한 곡도 칠 수 없다니, 한심했다. 나는 다시 ‘라’를 누르며 생각했다.


 내가 초딩 때 좋아했던 노래가 뭐였더라. 유키 구라모토의 86년 데뷔곡 <Lake Louise>가 떠올랐다. 악보를 다운 받았다. 파티 룸에 있는 빔 프로젝터에 악보를 띄웠다. 오! 음표가 보였다. 다행히, 아직 읽을 줄 알았다. 피아노를 배운 6년간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던 걸까.


4학년? 때, 동네 피아노 연주회에서


 나는 한 음 한 음 멜로디를 눌러보았다. 그 음들을 연결시키기 위해, 그러니까, 노래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20년 간 각종 과제와 보고서를 뽑아 내려고 타자기 위를 날아다녔던 내 손가락들은 하등 쓸모가 없었다. 피아노 건반 앞에서는 독수리 타법에 불과했다. 내 손가락은 건반 위의 여기저기를 쪼아댔다.


 시계를 쳐다봤다. 의자에 앉은 지 벌써 3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 이후, 청소 알바가 끝나면 피아노 의자로 향했다. 피아노가 치고 싶어서 아침 일찍 파티룸에 가기도 했다. 점점 새로운 작품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토벤의 <월광>? 드뷔시의 <달빛>? 새로운 악보를 보며 4 마디를 치다가, 어렵다 싶으면 다른 작품을 다운 받았다. 어느새 악보가 30개 이상 쌓여갔다. 뭔가 끈덕지게 하지 못하는 성격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그  시기에 아주 잘한 결정이 있다면, 레슨을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뭐하나 진득하게 해내지 못하는 나는 옆에서 누가 관리를 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때부터 주변에서 이런 질문과 시선을 받았다.


 “왜 피아노 레슨을 받아?”

 “너는 나이가 몇인데, 백수가 돼서 일은 안 찾고, 하겠다는 게 피아노냐? (부모님이 퍽이나 좋아하시겠다)”


 부모님이 안 좋아하실 거 안다. 그런데, 내 대답은 이렇다.

 “음… 더 잘 하고 싶어서…” (다른 이유는 없다)


 백수로 2년을 지내다 보니, 좋은 점은 ‘정신승리’가 습관이 됐다는 것이다. 뻔뻔함도 곱절로 늘었다. 회사의 의자에는 그토록 앉기 싫었는데, 피아노 의자엔 내 엉덩이가 먼저 가 앉았다. 이리 살아도 불안하고 저리 살아도 불안한 거. 그냥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안될까?

 

당분간은 저녁엔 학생들을 가르치고 낮엔 연습실에 다닐 생각이다. 혹시 또 알아? 피아노가 밥 먹여줄지! 대신 꾸준하고 성실할 것을 다짐하면서 내 관성을 여기에 맡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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