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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Oct 15. 2020

이대로 가다가는 내 꿈에 지각할 것 같았다

그렇게 다가온 절제되지 않은 술자리와 절제된 삶의 끝

회사에 입사하기 전 까지만 해도 난 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경계심이 누그러들고 이성 뒤에 숨어있던 감성이 마음의 문을 비집고 나올 때의 그 느낌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윤활유 같은 그 부드러움이, 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회사에 와 보니 절대 술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아니, 술을 좋아한다고 말해선 안됐다. 술을 얼마나 마시는 지의 기준은 됫병 시절에 멈춰 있는지, 그 단위가 마일과 킬로미터만큼 큰 차이였고(참고로 1되는 1.8L, 1마일은 1.6km다), 모두가 자신의 주량은 1병이라는 겸손(?)한 자세로 지금의 360ml 소주 대여섯 병을 거뜬히 소화했다. 


그렇게 신입사원 시절 주 5일 근무에 주 4일의 회식을 소화해야 했다. 더 무서운 것은 대부분의 술자리가 날이 바뀐 12시를 한참 지나 두시와 세시 그 사이 어딘가에 도달했을 시점 에야 마무리됐던 것이었다.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엄청난 근속연수를 자랑하며 5근 4주의 삶을 견뎌내 오고 있었고, 그 결과 과음으로 그 이름도 생소한 십이지장염에 걸렸던 나에게 “여기 염증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라며 술병 기울이기를 멈추지 않던 한 부장님의 말씀처럼 모두들 체내 깊숙한 곳에 염증 하나씩은 달고 있었다. 


그곳에선 그렇게 모두가 그 마지막 한잔을 향해 달렸다. 미국 풋볼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에서 감독 역할을 맡은 알 파치노가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손에 쥔 작전판을 수없이 매만지며 결승전을 앞에 둔 선수들에게 말했다. 인생은 항상 마지막 1인치의 게임이라고. 인생이든 풋볼이든 오차범위가 매우 적어서 반걸음만 늦거나 빨라도 성공할 수 없고, 반 초만 늦거나 빨라도 잡을 수 없다고. 그리고 난 그걸, 매일같이 반복되던 술자리에서 깨달았다. 그래. 인생은 항상 이 마지막 한잔이 문제다.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


술 때문에 그만둔 동기도 있었으니, 술이 문제긴 문제였다. 다행히 사람 좋아하고, 술도 어느 정도 마실 수 있었던 나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다만 그 “마지막 한잔” 때문에 달리던 택시에서 내려 길바닥에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전을 몇 번 부치고 난 다음에는, 내가 나이가 들고도 이 삶을 여전히 즐길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의문에 남았다.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온전한 생각을 하려 애쓰는 와중에 목이 타는 느낌이 들었다. 생수를 병 채 들이켜고 침대에 누워 양말만 겨우 벗어던진 나는,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신물을 짓누르며 다짐했다. ‘내일도 늦지 말고 출근해야지’ 하고.


그렇게 다음날 늦지 않고 출근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내 꿈에 지각할 것 같았다. 조종사 면허를 다 취득하고 항공사에 취직하기 위한 자격요건을 갖추는데 최소한 2년은 필요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유학에 필요한 자금이 적은 것도 아니었기에, 될 수 있는 한 돈도 열심히 모아야 했다. 통장에 모여가는 돈을 보며 차도 한 대 뽑고, 비싼 옷도 사고 싶었지만 꿈이라는 그 단어 하나를 바라보며 내 안의 소비욕망을 인생의 뒷 켠으로 몰아냈다. 


때문에 나의 회사생활은 절제되지 않은 술자리와 절제된 삶의 연속이었다. 욜로(YOLO)가 한창 유행이었지만,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였다. 아니, 욜로의 원래 의미대로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열심히 준비해서 내가 원하는 것에 도전해봐야 했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을 후회하지 않도록.


그때부터였다. 더 이상 몸이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에 귀찮고 힘들어도 회사 헬스장에 열심히 도장을 찍었다. 회식이 있는 날이면 점심시간에 운동을 했고, 퇴근 후엔 비행 이론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비행학교를 선택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유학원을 통했다면 쉽게 해결했겠지만, 영어도 할 줄 아는 마당에 남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져 각 학교의 입학담당자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수십여 개 학교의 시스템과 학비에 대해 직접 조사하고 비교해 결정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어서였을까. 입학을 위해 끊임없이 요구되는 각종 서류와 성적표의 요구에도 지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그렇게 지구 반대편, 같은 미국 땅에서도 멀고 먼 오렌지의 고장, 겨울에도 따가운 햇살이 자취를 감추지 않는 선샤인 스테이트(Sunshine State), 플로리다의 한 비행학교로 부터 입학허가를 받게 됐다. 그렇게 절제되지 않은 술자리와 절제된 삶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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