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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Oct 22. 2020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첫 솔로비행

그렇게 모든 것을 뒤로하고 건너가게 된 플로리다는 멀고도 멀었다. 직항은 없었고 뉴욕이나 애틀랜타를 거쳐 미국 국내선을 타고 들어가야 했다. 비행시간만 20시간에 달하는 긴 여정이었다. 나는 뉴욕을 들렀다 가기로 결정했다. 그곳엔 대학시절 해외인턴생활을 하며 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매일 같이 나와 피맥을 즐기던 K는 결혼 후 어여쁜 아이를 낳고 뉴요커로 살아가고 있었다. 함께 저녁 먹자는 얘기도 매번 내 책상 옆으로 살며시 다가와, “피자 먹을까요?” 하고 조심스럽게 꺼내던, 누구보다 선 했던 그는 본인의 적성에 딱 맞게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번듯한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미국인보다 더 미국스러운 리액션으로 나를 반겨주며 매주 집에 초대해주던 L누나 부부도 찾아갔다. 못 만난 사이 형과 누나사이에는 사랑스러운 아이도 하나 더, 뉴요커들의 아침을 책임지던 브런치 카페도 하나 더 늘어 있었다. 집도 헐리웃 영화에 나오는 별장같이 멋들어진 곳으로 이사해, 어느새 부쩍 자라난 두 명의 예쁜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친구도 만났다. 친구 D는 도전정신이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도 더 투철한 녀석인데, 홀로 쿠바 여행을 하고 뉴욕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녀석은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생소한 지역을 아무렇지 않게, 무사히 여행을 끝마치고 온 D를 보며 나의 새로운 도전에 힘을 얻었다. D는 내게 행여나 늦어지더라도 결국 해낼 수 있으니 조급해하지 말라며 꽤나 큰 사이즈의 거북이 인형을 선물해줬다. 남자끼리 인형을 주고받다니 지금 생각하니 매우 이상할 법한 일이었는데,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긴장감에 차 있던 당시의 내게는 감명 깊은 선물이었다.


그렇게 유학생활 내내 머리맡에 두고 함께할 거북이 인형을 품에 안고 플로리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팜 비치(Palm Beach)에 내리니 이곳은 마치 하와이 같았다(아직은 못 가본 하와이지만 뭔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모두가 반바지에 단추를 두 개 정도는 기본적으로 풀어헤친 편안한 핏의 셔츠를 입고 있었다. 10월의 제법 쌀쌀한 뉴욕에서 내려온 동양인인 나만 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나도 재빨리 가벼운 여름옷으로 갈아입고, 예약해둔 렌터카 업체로 향했다. 일하면서 나름 외국 좀 다녀봤다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픽업 서비스 따위는 과감하게 거절하고 차를 빌렸다(사실은 픽업 서비스가 터무니없이 비쌌다).


플로리다의 10월에는 기분 좋은 따스함이 있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햇살을 피하지 않으며 여유롭게 학교 기숙사를 향해 달렸다. 그렇게 학교에 도착했으나 학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동안 줄곧 연락해온 입학 담당자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지나가던 한 학생을 붙들고 물어보니 일요일이라 학교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나에게 비행기 시간표를 요구하고 픽업 서비스 신청에 대해 물어왔던 입학담당자는 분명 도착하면 바로 방배정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급하게 주변의 숙박시설을 찾았다. 그렇게 한국의 모텔에 해당하는 인(Inn)에서 겨우 방하나를 잡고 플로리다에서의 정신없는 첫날밤을 보냈다.


이렇듯 첫 솔로비행을 위한 나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이론교육인 그라운드 스쿨을 수료하고 교관이 배정된 후 각종 비행 장비를 마련하며 설레는 첫 비행을 기다렸다. 처음 잡아본 조종간은 낯설었다.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에서 톰 크루즈가 마약밀매에 사용하던 작은 쌍발기 보다도 더 작은 단발 비행기였으나, 앞뒤로만 움직이는 도로가 아닌 아래위로도 이동해야 하는 3차원 하늘 위에서의 조종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는 다른 메커니즘이었고, 몸에 익히는 데 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영어를 알아도 공부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생소한 용어로 가득한 관제사와의 교신 또한 조종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했다. 날씨라는 변수도 있었다. 플로리다에는 매년 9월에서 10월 경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내가 도착하기 직전에도 ‘괴물급’이라는 허리케인이 다녀갔다. 그렇지 않은 날엔 날씨가 화창하다가도 꼭 하루 한두 시간 비가 내렸는데, 그때 비행시간이 걸리면 비행은 곧잘 취소됐다.


같이 시작한 친구들이 먼저 솔로비행을 나가는 모습 또한 불안감을 불어넣었다. 나만 뒤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그때의 상황이, 그때의 나에겐 꽤나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나가게 된 솔로비행은 감격스러웠다. 혼자 조종간을 잡은 채로, 혼자 교신을 하고, 혼자서 이륙을 해냈다.



풍경을 즐길 만큼의 여유는 주지 않는 첫 솔로비행이었으나, 눈앞에 펼쳐진 수평선을 빨갛게 물들인 저녁 무렵의 태양은 내게 알 수 없는 안도감을 주었다. 그렇게 교관의 ‘엄지 척’ 제스처와 함께 마무리된 랜딩은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러웠고, 안정적이었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와 시작하게 된 격동의 한 해도 그렇게 지나갔다. 앞으로의 결코 짧지 않을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여정도 이렇게 부드럽기만을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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