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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Aug 15. 2016

그립다는 것

일상의 발자국 - 첫번째

살아가면서 그립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사전은 그리움을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그 뜻이 가르키는 그리움은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물을 그리워할수도 있고, 어떤 사건, 어떤 인물, 어떤 공간, 그리움의 대상은 한계가 없고, 무엇이든지 될 수가 있으니까요. 




제게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몇 가지를 꼽아볼 수 있겠네요. 지금같이 더운 여름에는 한국에서 지냈던 마지막 겨울이 그립습니다. 그 당시 서울에는 제가 기억하기로 대단했던 폭설이 온 날이 있었어요. 아빠와 제가 무언가를 사러 밖에 나와있었던 거로 기억을 합니다. 마트가 보이는 횡단보도 반대편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정말 눈이 펑펑 쏟아졌어요. 마치 하늘에서 누군가가 쏟아붇고 있는 듯한 양이었죠. 한국의 겨울은 춥고 눈도 많이 오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눈이 많이 오는 걸 보지 못했기에 너무나 신기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어요. 그 때, 아빠가 제게 말씀하셨죠. 지금 이 순간을, 이 풍경을 기억하라고.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니, 꼭 가슴 깊이 새겨두라고. 전 그 때 아빠의 그 말이 단순히 눈이 많이 오던 그 풍경을 기억하라는 말씀인 줄로만 알았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당신의 말은 그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가족과 친구들, 이뤄왔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타국으로 떠나려 결심했던 당신에게 그 때 눈은 당신을 대신해서 울어주던 마음이고 위로였다는 걸 저는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때 그 풍경이 떠오릅니다. 저 만치 신호등이 뿌옇게 눈발에 가려서 보이고, 내 옆에는 착잡한 마음의 아빠가 서 있고, 내 눈 앞에는 온 세상이 가리울만큼 펑펑 내리는 눈송이들이 아빠의 눈물을 가려주고 있습니다.




문득 생각나는 그리움도 있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엄마는 6남매의 막내셔서 제가 태어났을때 외가쪽 조부모님는 이미 다른 친구들의 조부모님보다 연세가 많으셨죠. 외갓집에 갈때면 외할아버지께 꼭 절을 하곤 했는데 그 순간이 무서워서 긴장했던 기억도 나고, 또 혼자서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서 항상 엄마를 깨우곤 했었죠. 1년에 한 두번 보는게 다였기 때문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는 조금은 서먹서먹한 사이였죠. 살가운 성격의 손녀도 못되었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죄송하네요. 그렇지만 미국에 이민 와서 3년을 살다가 처음 한국에 나갔을 때,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심한 감기몸살을 앓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외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셔서 제게 뭘 해주실 수는 없으셨지만, 어딘가에 모아두셨던 돈을 꺼내셔서 저를 데리고 동네 식당에 가서 육개장을 사주셨어요. 뜨겁게 한 그릇 다 먹고 어서 빨리 나으라고 하셨던 외할머니가 지금도 육개장을 볼 때면 생각이 납니다. 다른 손자손녀들이 많으니, 저에 대한 사랑은 아마도 우리의 사이만큼 깊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감히 가늠했던 제가 아팠을 때, 뭔가를 직접 해줄 수 없어 안타까웠던 그 마음이, 당신은 드시지도 않고 제가 먹는 것만 지켜보셧던 그 마음이, 막내딸의 첫 딸이 너무 예뻐 밖에 데리고 다니기도 무서우셨다는 그 마음이 지금 많이 그립습니다.




그리움이라고 하면 아마 시링하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네요. 제게도 그런 그리움이 있습니다. 다만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라기 보다는 함께 했던 추억, 기억, 함께 갔던 공간, 그런 추상적인 그리움이 더 크다는 것이 다른 점이겠네요. 함께 봤던 영화, 함께 듣던 노래, 함께 먹었던 음식들, 함께 걸었던 거리, 지금은 그 사람은 기억나지않고 그 때의 풍경, 그 때의 계절, 그 때의 향기같은 것들만 떠오릅니다. 울었던 때도 있지만, 다행인 것은 웃었던 기억이 더 많다는 것이지요. 그리운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때 그 사람때문에 울고 웃고 행복했던 제 모습입니다.




매일 매일 살아가고 있는 이 소소한 일상이 그리워질 때가 또 오겠지요. 매 순간순간이 축복이고 행복임을 깨닫고 살아가야하는데 저는 아직은 부족한지 그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 때 참 좋았지 하는 그리움이 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습니다. 당신도 과거에 대한 그리움에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당신이 되길, 그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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