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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Jan 04. 2022

나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엄마가 되고 싶은 요상한 순간


“영국에선 아들을 못 낳아서 처형당한 왕비도 있었데!”

그런 야만의 시대에 안 태어난 건 정말 다행이지만

그 처형만큼이나 잔인한 폭력의 시대인 건 분명하다.

어느새부터 안부란 게 똑같아졌다.

“좋은 소식 없어?”

상대가 궁금해하는 건 오직 임신소식.

“노산이니까 어영부영 시간낭비 말고 그냥 시험관부터 해.”

다짜고짜 이런 말을 그냥 내뱉는다.

‘잠깐만요, 애를 낳을 생각이 지금 없는데요?’

결혼은 안 해도 죽기 전에 애는 꼭 낳아봐야 한다는 선배 언니의 주장이다.

여행 간다고 하면 “거기서 하나 만들어 오면 되겠네.”

해가 바뀌면 “올해는 하나 만들어야지.” 모두 이런 식이다.

나를 위한 그런 고마운 말들엔 왜 요상하게 애 낳기 싫어질까?


그런데 희매몽 브이로그에서 귀여운 몽준이를 보고 있으면

이 지구 상에서 젤 부러운 사람이 몽준이 엄마다.

돈 많고 화려한 성공 따위 하나도 안 부럽다.

오늘은 몽준이가 유치원 가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 계단에서 구를지가 궁금하고

하원하고 먹는 간식의 메뉴가 궁금하다.

"야 너도 니 자식 낳아봐."

사람들이 입이 닳도록 말하는 ‘내 자식을 내 손으로 키우는 기쁨’이

여기서만은 오롯이 느껴진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몽준이가 조금씩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게

그 어떤 영화보다 재밌고 우울한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그걸 보고 바보같이 웃고 있는 나를 보면 그 순간은 정말 아기를 낳고 싶다.

누구나 아기가 낳고 싶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텐데

내게 ‘엄마가 되고 싶다’고 영감을 주는 건 희매몽이다.

이 브이로그가 내게는 노벨평화상이고 아카데미다.


엄마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시스타는 그런 영감을 임상아 브이로그에서 얻는다고 했다.

딸과 같이 외식하면서 베프처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딱 그런 딸을 낳고 싶다고 했다.

그런 시스타가 임신을 계획하고 병원을 찾았는데

산부인과 의사가 자기를 벌써 “엄마”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엄마라는 말을 듣는데 너무 설레었고 그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이라 신기했다고 했다.

나는 오히려 달라진 시스타의 모습을 보는 기분이 태어나서 처음이라 신기하다.

사람은 엄마가 되는 순간보다

엄마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사람은 180도로 변하는 것 같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본 영혼이 뒤바뀌는 드라마처럼

정말 시스타의 몸에 다른 영혼이 들어온 줄 알았다.

말할 때의 부드러움이나 숨소리의 거칠기 마저 미세하게 바뀌었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다.

임신 중엔 회를 못 먹으니 미리 먹어 둬야 한다며 초밥을 챙겨 먹고

사랑니도 미리 뽑아야 한다며 치과로 달려갔다.

모든 걸 임신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작은 것 하나까지도 즐거워하며 바꾸어 나갔다.

그런 모습을 보는 나는 조금 어리둥절하다.


낳아? 말아? 그건 모르겠고 하루키처럼 살고 싶어

“그러니까 하루는 낳고 싶고 하루는 낳기 싫어”

이게 요즘 정확한 내 마음이다.

물론 이런 말 할 주제는 아니다.

설령 낳고 싶다 하더라도 출산 가능 나이의 끄트머리,

그러니까 막차 하나 남은 상황이 딱 내 처지다.

난 그 막차를 타고 싶은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는데

그 막차가 내 코앞에서 문을 닫으려 하고 있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 손을 잡고 그 차에 태우려고 안간힘이다.


“인생에서 어지간한 경험은 다 해 본거 같아. 출산 빼고 “

몇 해 전, 출산 데드라인에 임박한 언니가 자궁이 무용지물 되는 게 싫다며,

자궁의 마지막 외침이 느껴진다고 간절하게 출산을 원했다.

그 당시에 사유리(남자 없이 출산한 멋진 인물) 같은 뮤즈가 있었다면

다른 방법을 시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언니는 스스로가 말한 어지간한 경험의 임계점을 뚫고

더 큰 세계로 나아가 커리어를 쌓았고

오히려 출산을 했다면 맛보지 못할 다른 길의 달콤함을 맛보며 산다.


명리학적 물상에서 인생을 바라볼 때

나무를 심고 기르면 그것을 보람이라 여긴다.

이 말만 들으면 꼭 나무를 기르고 싶어 진다.

자식을 길러 보는 게 인생의 가장 큰 보람 같다.

그런데 사주팔자에 나무 자체가 없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의 계절이 겨울이면 나무가 있는 게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결실을 거두고 모든 성장이 멈추는 시공간에

생명이 주어진다면 그건 환경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런 경우에는 나무보다 금이 주어지는 게 조화 롭다.

그런 것처럼 꼭 아기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게 강아지든 앵무새든 사과나무든

무언가를 길러내고 같이 교감하고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가

있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 같다.


일론 머스크는 저출산이 인류 최대의 위협이라 문명이 붕괴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건 당연한 진화생물학적 결과라고 한다.

먹을 게 없고 숨을 곳이 없으면 번식을 조절하는 동물만이 살아남는데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자연스럽게 애를 낳지 않는 거다.

일론은 자식을 6명이나 낳았는데 돈과 명예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

6명이나 낳은 걸 보면 '애 낳는 게 좋은 건가? '싶기도 하면서도

무라카미 하루키나 마스다 미리처럼 자식 없이

자신의 세계에서 창작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이렇게 사는 것도 좋다.'라는 생각이 든다.

설마 무라카미 하루키도 예의 없는 질문을 받아본 적 있을까?

“애는 왜 안 낳아요?”

들었다면 어떻게 응수했을까? 도 궁금해진다.


시엄마 때문에 낳기 싫고,  낳고 싶어


“애를 낳아야 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도 담배를 못 끊는 한심한 남편에게

시엄마는 혀를 끌끌 차면서 늘 마무리는 저 말이다.

기승전 애

애 낳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생각한다.

‘애 안 낳고 사는 이 한심한 인간들아~’

마치 이렇게 들리고야 마는 이 말은 폭력이다.

자식을 향한 세계관이 시댁과 친정은 극과 극인데

시댁은 자식한테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 쉬는 날도 없이 일한다.

인생의 방점이 자식에게 있다.

반대로 우리 아빠는 다르다.

“아빠! 나가서 열심히 돈 쓰고 놀아,

혹시라도 자식 남겨줄 어리석은 생각 말고.”

나는 아빠에게 이런 농담을 하곤 한다.


아빠와 그런 장난을 치면서 가끔 나는 헛된 꿈을 꾸곤 한다.

시엄마가 제발 자식만 바라보는 인생 말고 자신의 인생을 살았으면 하고

어떤 날은 커피 한잔 마시면서 진지하게 이야기해볼까 싶기도 했다.

자식 사랑의 방식을 바뀌 보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제의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커피 한잔은 개뿔, 시엄마의 도돌이표 행보에 그냥 입이 꾹 다물어진다.

여유가 나면 시엄마는 자기를 낳아준 엄마를 찾아가기보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찾아온다.

아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행동(가게 물건 멋대로 대량으로 사 오는)을

오늘도 기어이 하고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제발~ 그럴 시간 그럴 돈으로 하고 싶은 거 하고 재밌게 놀아!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이 너무 괴롭다 잖아!"

내 친구라면 분명 이렇게 소리 지르며 말했을 거다.

안타까운 건 시 엄마는 내 친구가 아니다.

시엄마 친구들은 왜 이런 말을 해주지 않는 걸까?

그런 시엄마를 보고 있으면 같은 인간으로서 궁금증이 생긴다.

“부모보다 자식이 우선 인 게 인간의 본능인 건가?”

나는 자식이 없어서 정말 모르겠어서 남편에게 물었다.

진짜 그런 거라면 조금 슬플 거 같다.

‘나라면 죽음이 코앞인 부모 얼굴 한 번 더 볼 거 같은데...할머니도 그 심정으로 시엄마를 기다릴텐데…’

정말 내가 내 자식을 낳아봐야 이 미스터리는 풀리는 걸까?


결혼은 했다가 이혼할 수도 있고

학교도 다니다가 그만둘 수도 있다.

그런데 낳은 아기는 다시 배안으로 들여보낼 수 없다.

절대 취소가 되지 않는 일이기에 신중해야 한다.


최근 “출산이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라는 답에

최재천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도움이 안 돼! 그건 그냥 희생이야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지. 출산 장려? 그건 입을 다물어야 해. “

이 말이 가장 내게 와닿았다.

나는 희생은 싫다. 나만 생각하면서 이기적으로 살고 싶다.

그런데 희생은 싫지만 궁금한 건 못 참겠다.

“부모보다 자식이 우선 인 게 인간의 본능인 건가?”

진짜 내 자식을 낳아봄으로써 이 거대한 미스터리가 해결된다면

기꺼이 출산에 도전해 보고 싶다.

내일모레 죽을 부모를 놔두고 자식한테 오는 그 마음이 뭔지...

요상하게도 자꾸 시엄마를 이해해 보고 싶어지려 한다.잠깐 이거 어디서 많이 본듯한 느낌인데…

사랑인가?


어제까지 전혀 없었던 내 인생의 숙제가

오늘의 나에게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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