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뢰스티
당근 뢰스티를 만들다가 생각난 것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단숨에 재밌게 읽었다.
이 언니들이 펼치는 세계관이 좋았고 어느새 추종자가 되었다.
최근 <여둘톡>이라는 팟캐를 시작했는데
마지막에 황선우 언니가 당근 뢰스티를 추천했다.
그냥 맛있어서 추천했다면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덜했을 텐데
친구가 낸 책에 있는 레시피라는 스토리가 있었다.
(*채소 마스터 클래스)
친구라서 밀어주는 게 아니라 그 안엔 깨끗한 진정성이 있다고
약간의 노파심으로 하나언니가 말했다.
거기에 선우 언니가 말했다.
아니다 우리는 이제 이런 자기 검열 대신에
친구이기에, 가까이 있기에 더 잘 캐낼 수 있는 장점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 케미 어쩔 거야 이 언니들 이래서 좋아한다니까'
이 이야기를 들으니 오늘 당근 뢰스티를 먹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았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트레이더 조로 달려갔다.
다양한 당근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그런데 어머나 세상에 이미 채 썰어진 당근이 있다니 신기했다.
이미 채 썰어진 당근은 신세계였다.
5분 컷으로 근사한 요리가 완성됐다.
여기서 중요한 건 카레가루와 감자전분이었다.
감자전분 때문에 서로 엉겨 붙어 생겨나는
그 아삭하면서도 쫀득한 식감이 새로운 자극이었다.
당근이라는 재료를 다시 보게 됐다.
이 얼마나 대단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던가!
단 한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었던 당근이
감자전분의 서포트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보고야 말았다.
채썬당근 vs 유기농 당근
여기서 또 궁금해졌다.
채 썰어진 당근이랑 유기농 당근이랑 어떤게 더 맛있을까?
주말이 되자 파머스마켓으로 달려갔다.
당근을 고르는 과정부터 내 기분이 달랐다.
흙이 잔뜩 묻어있어 나도 모르게 털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당근이랑 더 친해졌다고나 할까?
당근 모양도 재밌는 걸로 골랐다.
제멋대로 삐죽 튀어나온 거나 상처 입은 걸로.
상처 입은 건 그걸 회복하기 위한 재생력 때문에 오히려 달다고 어디서 주워 들었다.
집으로 온 당근은 너무 싱싱해서 당장 다시 밭으로 뛰쳐나갈 것 같았다.
그러기엔 충분한 거리니까
그런데 유기농 당근이 나와 보낸 시간이 더 많았기에 더 애정이 갔다.
당근을 썰면서 나도 모르게 당근이 받고 자란 햇빛 바람 공기를 생각하니
나 자신이 싱싱해졌다.
도마에 물든 주황빛은 썰어진 당근으로만 요리했다면 보지 못했을 예쁨이었다.
채썬당근 vs 유기농당근
기다려준다는 것
채썬당근과 유기농 당근, 이걸로 만든 각각의 당근 뢰스티는 둘 다 맛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내 칼솜씨가 서툴러 채썬게 더 낫다.
그런데 두 번째가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야기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처음은 나 혼자 만들어 먹었고 두 번째는 남편과 같이 먹었다.
남편은 처음 보는 음식에 대해서 대발이 아버지보다 보수적이다.
자기 냉면에 식초를 넣었다고 전여친과 헤어진 전력이 있을 정도로 까탈스럽다.
유부 초밥 같은 건 어릴 적 먹어본 경험이 없어 입에 대지도 않는다.
그런 편식쟁이가 내가 한입 떼어 준 처음보는 요리를순순히 먹어보는 거였다.
당근 뢰스티에 마음을 열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야채를 안 먹는 편식쟁이를 새로운 세계로 들여보내 기뻤다.
요상한 충만함이 느껴졌다.
처음엔 편식을 할 때마다 아니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그런데 오은영 박사가 어린 시절 자기가 먹지 못하는 음식을
엄마가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줬다고 한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까지? 스스로가 먹을 때까지!
그 점이 엄마에게 너무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나도 태도가 바뀌었다.
나도 기다려주기로 했다.
언젠가는 내가 갓 좋아하게 된 당근 뢰스티를 같이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이 가능성을 무한 확장시키고 싶어졌다.
아메리카노의 구수함을 알게 되고 유부초밥의 새콤 담백을 알게 되는 세계로, 가보자구!
그 순간에 깨달았다. 내게 맛있는 음식은
재료의 출처, 간편함, 요리에 쏟은 정성의 크기, 배고픔의 정도, 그날의 기분...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먹느냐다.
음식을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좋았던 거다.
혼밥 인간이 달라졌어요
어쩔 수 없이 혼자 먹는 날이 많았다.
혼밥이 흔치 않았던 시절, 선배 언니는 혼자 먹을 바엔 굶는다고 했다.
그런데 난 혼자 먹는다고 누가 쳐다보는 시선보다
내가 먹고 싶은 그 욕구가 더 중요했다.
혼자 먹는다고 해서 내가 먹고 싶은 걸 참지 않았다.
간장게장이나 불고기를 곁들인 평양냉면일지라도 꿋꿋하게 혼자 가서 먹었다.
혼밥의 고급 레벨 삼겹살집도 격파했다.
먹고 싶은 게 생각나면 아무리 비싸더라도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그 즉시 그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나 자신에게 대접했다.
밤을 새워가며 연말 시상식을 준비하던 시절 갑자기 복국이 생각나서
한밤중에 혼자 사무실을 뛰쳐나가
강남에 있는 24시간 금수복국에서 배를 따뜻하게 채우고 나왔었다.
그 시절로부터 아주 먼 길을 걸어왔다.
혼자 복국 먹고 들어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서
컵라면을 먹더라도 후배들이랑 먹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맛집 리스트 말고 사람 리스트
우리가 좋아하는 <알쓸신잡>을 틀어놓고 남편이 종종 이야기한다.
“저 밥상에 나도 끼고 싶다”
나는 안다. 남편은 그 밥보다 그 이야기에 끼고 싶은 거다.
내게도 그 자리에 껴서 먹고 싶은 밥상이 있다.
서울이 그리운 날엔 종종 가면 뭐부터 먹을지 순위 리스트를 적어 두곤 했다.
진미 간장게장, 훈고 링고 바게트 샌드위치, 망원즉석우동, 또 보겠지 떡볶이...
그런데 내가 그리운 건 그 '메뉴'가 아니라
무언가를 앞에 두고 서로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불쑥 찾아가서 밥 사달라고 조를 사람 리스트를 적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불쑥이다.
내가 불쑥 찾아갔을 때 그 사람의 표정이 미치도록 궁금하다.
왜 이걸 상상하는데 설레지?
그 옆에 은근슬쩍 물어보고 싶은 것도 적어 놨다.
오직 그 사람만이 대답해 줄 수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