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같은 건 절대 좋아해선 안 돼

바다 보러 갈래?

by 보리차


남편을 좋아하기 때문에 힘들다는 사람도 있다.

익명으로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은 이런 글

‘저처럼 아직도 남편이 좋은 분 있으세요?’

결혼 10년 차에도 남편을 좋아하는 게

마치 범죄인 듯 조심스럽다.

그 밑에 우수수 악플이 달리는 거 보면

어쩌면 남편 같은 건 계속 좋아하기란 애초에 무리인 걸까?


드라마에선 남편이란 인간들은 항상 바람을 피운다.

보증을 잘못 서고 술먹다가 넘어져 얼굴이 깨진다.

그런 걸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데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

양희은 선생님 톤의 이 말을 연습 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늘 조심을 한다.

남편이 좋아지기 시작할까 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좋아지는 분명한 순간이 있다.

“바다 보러 갈래?”

갑자기 불쑥 그 말을 꺼낼 때의 남편은 너무 사랑스럽다.


남편보다 나를 더 사랑하게 위해

일부로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편이다.

남편이 치과를 간 사이 내가 남편을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벤트를 만들어 그가 나를 기다리게 만든다.

그날 내가 먹고 싶은 게 있는데

남편이 치과 진료를 가야 하면

혼자서라도 먹는 나는 즐거운 외톨이다.


혼자 딘타이펑에서 식사를 마쳤다.

치과진료가 끝난 남편이 나를 데리러 왔다.

갑자기 “바다 보러 갈래?” 하고 툭 던진다.

저녁 6시였다. 바다는 언제든 환영이다.

저녁 6시에도 뜻밖의 하루가 시작된다.


씨사이드 비치는 한 시간 반 거리인데 가는 길엔 내가 운전한다.

우리는 사실 바다보다도 그 바다 보러 가는 길을 좋아한다.

만약 앞차가 사고라도 나면 막다른 골목이 되어 버리는

그 치명적인 1차선을 사랑한다.

앞차가 천천히 가면 그 리듬에 맞게 천천히,

뒤에서 바짝 좇으면 눈치를 봐야 하는

그 1차선의 어쩔 수 없음이 좋다.


‘여기가 바로 오레곤이고

우리 오레곤은 전국에서 가장 나무가 많죠. “ 라듯이

나무들의 밀도가 우리를 압도한다.

창문을 살짝 열고 달리면 나무들의 상쾌한 품에 안기는 느낌이다.

작은 다리를 건너고 작은 터널을 지나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숲의 볼륨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불이라도 나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이다.


비가 오지 않은지 한 달이 넘었고 여기저기서 산불 소식이 들려온다.

오늘은 아주 불나기 좋은 날이다.

가는 길에 작은 소방서가 있는데

그날은 커다란 소방헬기가 스탠바이하고 있었다.

정말 저게 출동하는 날이면 그냥 죽는 거구나 싶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초록나무를 보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우리가 초록이었던 시절이 떠오르게 된다.

사회인이 되기 이전의 모습,

방송작가를 하면서 잃어버렸던

나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내가 살아온 발자취를 요상하게 더듬게 되는데

그 시절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내 심정을

지금에서야 서로가 들어준다.


어쩌면 이 바다로 가는 길에서만이 가능한 대화였기에

우리는 자꾸 바다에 가고 싶은 걸까?


멋대가리 없는 결혼이란 제도에

작지만 확실한 장점이 있다.

어쩌면 결혼은 이러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직 내 안에 처리되지 않은 오래된 감정들을

나도 모르게 해소시키려고.

그걸 언제든 들어줄 사람이 준비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려고

바다에 도착하니 해가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이 바다를 우리는 빈티지 바다라 부르는데

이곳에 오면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막상 도착하면 바다는 찬밥이다.

도착하자마자 집에서 편하게 피자가 먹고 싶다며

다시 출발할 준비를 하는 집돌이가 바로 내 남편이다.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구간에서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너처럼 사는 게 꿈이야 니가 내 워너비야 “


내가 운전을 하고 있었다면 차를 세울 뻔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저런 화려한 말을 듣는다는 거 생애 처음이었다.

나처럼 사는 게 뭔데?

늦잠 자고 정리정돈 안 하고

어지간하면 모든 걸 엉망진창으로 내버려 두는 나인데, 개뿔 나처럼 살고 싶을 리가 없는데?

난 그 구체적인 대답이 아주 궁금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왠지 그걸 물어보면 내가 지는 것 같았다.


평소에 남편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을 때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한다고 했다.

그걸 말하는 거냐고 다시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는 남편이 바로 내 옆에 있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할 때가 종종 있다.

그 궁금해지는 순간의 즐거움을 잃고 싶지 않다.

사랑이 아니라 호기심이 끝나는 순간

우리가 끝나는 것이다.


그가 처음 만났을 때 내게 물었다.

“사랑해봤어요?”

난 이미 사랑을 해봤고 그걸 해보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눈빛으로

그게 아니면 ‘우리는 적어도 사랑을 해봤기 때문에

그 이후의 인생은 시시할 것만 같은 기분’에 동의하냐는 느낌이었다.

사랑을 해봤다는 건 같은 지구인으로서는 축하할 일이다.

나는 아니었다. 해봤다고 해도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 눈빛에 이미 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죽기 전에 저 눈빛을 이길만한 사랑꾼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요상한 승부욕에 혼자 갇혀 있었고

오늘 그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어떤 사랑고백 따위와도 비교도 안 되는

거창한 말을 들었으니 가던 길에 산불 같은 게 나더라도

여한이 없겠다는 감정이 불현듯 솟아났다.

동시에 '나처럼 살고 싶다'는 그 달달한 말에

절대로 마음을 빼앗겨선 안 된다고 다짐했다.


사람 마음이 참 요상한 게

막상 “너처럼 살고 싶어”에서

“너처럼 살게 됐어”라는 말을 들으면 서운할 거 같다.

끝까지 “너처럼 살고 싶어” 였으면 좋겠다.

때로는 곁에 있는 사람이 뱉은

아무것도 아닌 말 한마디가

굉장한 파동을 일으킨다.

내 기분을 바꾸고 내 마음을 바꾸고

내 행동을 바꾸고 내 운명을 바꾼다.

저 말을 들었을 때의 그 완벽한 기분이 영원하도록

나는 앞으로 피곤하게 살 준비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 남편 같은 건 절대 좋아해선 안 된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먼 거리의 궁금증을 유지하고 싶다.

전부는 위험하고 일부만 조금씩 탐구하고 싶다.

세상에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형태의 우정을

남편과 나누길 꿈꾼다.


남편이 내 책상을 치워주거나 가방정리를 해줄때 물끄러미 구경한다.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그리고 엄마표정이 되는 남편이 신기해서.

자라면서 엄마 손길이 대대적으로 부족했고 난 아직도 굶주려 있다.

내 결핍을 자연스레 채워줄 편리한 사람이 남편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혼은 서로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수합병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이 비지니스에 우정만큼 잘 어울리는 감정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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