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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Aug 01. 2021

우리집엔 거미가 산다

feat. 길 그리섬 반장

묘비가 있는 동네의 아이들은 성취감이 높다는 통계가 있다.

그만큼 죽음이라는 걸 자주 생각해서 일까?

<아침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

좋아하는 책 제목이다.

여기에 오면서부터 달라진 점은

아침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는 거다.     


동네로 들어오는 어귀에 전쟁에서 전사한 사람들의 묘비가 있다.

미국은 군인에 대한 예우가 극진하다.

미국 국기가 워낙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 내 눈길을 확 끌었다.

이렇게 일반 가정집과 어우러져 묘비가 있다는 게 조금 낯설고 신기했다.


남편은 그 묘비 앞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중년의 뒷모습이

보일 때마다 이야기한다.

“저 아빠 저기서 또 저러고 있네.”

한밤중에 저러고 있으면 조금 걱정이 된다.

자식을 앞세운 사람의 심정을

자식이 없는 우리가 감히 헤아릴 순 없지만

저곳을 스칠 때마다 죽음이라는 걸 감각하게 된다.      


집에서 종종 거미와 맞딱 뜨린다.

거미를 죽인다는 것에 죄책감보다는

일단 내가 살고 보려 했다.

예전에는 무서워서 바로 잡아 죽였지만

지금은 온 힘을 다해 살려서 내보내는 게 내 미션이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청동 거미상 <마망>이

엄마를 상징한다는 걸 알고부터는

거미는 우리 집에 놀러 온 귀한 손님이다.     

출처 : GQ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엄마는 21살에 원인 모를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엄마는 낡은 벽걸이 천을 복원하는 일을 했는데

실을 뽑아 망가진 곳을 고치는 모습이 거미줄을 치는 거미로 느껴졌다고 한다.

질병을 퍼트리는 모기를 잡아먹는 거미의 행동이

자신을 보호하고 도움을 주는 엄마와 같았다고 한다.

아빠의 외도에도 절망감에 시달리지 않고

자식들을 보살폈던 엄마를 기리기 위해

만든 작품이 <마망>이라고 한다.

(실제로 거미는 갓 부화한 새끼를 죽을힘을 다해

보호하는 모성애가 매우 강한 동물이라고 한다.  )

  

일본 살던 시절 롯폰기에서 이 작품을 여러 번 봤지만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몰랐다.

그걸 알기 전에는 그냥 고철덩어리였지만

지금은 거미라는 존재가 전부 엄마처럼 느껴진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만든 게 아니라

거미를 만들었다.     


미국 집은 층고가 워낙 높아서

며칠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거미줄이 생길 때가 많다.

타국 생활보다 갑자기 나타나는 거미의 존재가 날 더 힘들게 했다.

거미줄을 보면 오싹해지고 더럽게 느껴졌다.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며 거미줄 당장 없애라고 했었다.

조그만 것에 쩔쩔매고 도망가던 나였다.

그런 거미가 모기를 다 잡아먹어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새로운 친구와 막 우정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지금은 내게 거미줄 하나하나가 예술작품이다.

이걸 몰라보고 살았다니

동생이 보내준 지큐 인터뷰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거미를 죽이고 소리 지르고 나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었을 거다.     

거미는 우리 집에 놀러 온 귀한 손님이고 극진히 대접하고 싶다.

집에서 만난 내친구 거미

혼신의 힘들 다해 거미줄을 만들어 나가는

거미를 볼 때 요상하게 위안이 된다.

헐거워진 곳을 단단히 옭아매는 바느질,

텅 빈 허공에 자기만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모습이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도 한다.   

거미줄을 보면 포근함이 느껴지고 거미를 만나면 반갑다.

곤충만 봐도 기겁하는 내가 거미를 좋아하게 되다니 그건 기적이다.

나의 이 뻔뻔한 변화가 놀랍겠지만

나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거미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그 진부한 말이

제대로 내 인생을 관통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거미를 살려 내보내는 것에 실패할 때가 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죽고 싶니?”

거미가 던지는 이 질문에 마지막을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매일 영어공부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지만 잊고 살아간다.


CSI 길 그리섬 반장은 암으로 죽고 싶다고 했다.

가장 많은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 암으로 죽고 싶다는 건

아주 큰 울림을 준다.

우리는 흔히 암에 걸렸다는 건 저주로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 축복으로 느껴진다.

미리 알 수 있고 준비할 수 있으니까      


이곳에선 일상 속에서 죽음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산책하다 죽은 다람쥐를 보면 돌아서 반대로 갔다.

운전 중, 도로 위에 죽은 다람쥐를 볼 때면 온몸이 얼어붙는다.

얼마 전에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새를 봤다.

그런데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말처럼

아름다운 여정이 끝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마지막을 깊히 받아들인 느낌이랄까?

이제 하나의 세계의 문을 쾅 닫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 느낌이다.

찡그리고 피하기 보다는

친구의 마음으로

애틋하게 배웅해 주고 싶다.


종종 내 앞에 나타나는 죽음이

영원히 살 것처럼 하는 인간들에게 던지는 신의 메시지 같다.   

  

분명한 끝이 있고 

그 끝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다고

길에서 만난 거미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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