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밖에 못 끓이는 인간이랑 사는 즐거움

꾸러기 맛

by 보리차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민 5개월 차 몸 져 누웠다.

조금 쉬어가자는 몸의 싸인엔 응하는 게 좋다.

자꾸 쉬자고 하는데 그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이렇게 큰 코를 다친다.

무엇이 도화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날 의료보험이랑 험난한 통화 후 급격히 방광염이 돋았다.

오랜만에 몸이 열기로 가득 찼고

미국에서 이런 건 처음이라 당황했다.

서울이었다면 배달의 민족으로 전복죽을 시켜서

3끼 내내 나눠먹고 푹 자면 나았을 텐데

여긴 전복죽집도 없고 배민도 없다.

내겐 라면밖에 못 끓이는 인간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한인마트에 파는 레토르트 전복죽이 죽기보다 먹기 싫었던 나는

내 손으로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다.

미역에 다진 마늘을 넣어 참기름으로 볶고

냉동실에 있던 연어를 털어 팔팔 끓였다.

툭하고 건드리면 쓰러질 듯 기운이 없는데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 손으로 내 생명을 돌보는 일은 근사하다.

뜨끈한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는데

이미 몸이 한결 나아졌다.

병마와 싸우는 와중 한국인의 셀프밥상

미역국을 먹어서라기 보다

나 스스로가 의지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 그 찰나에

나는 병마에게 이겼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프지만 스스로 밥을 차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밥 차리는 건 포기하고 그 에너지를 아껴서

누워 있어야 더 빨리 낫는 줄 알았다.

오히려 반대로 미역국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찌릿찌릿한 통증이 덜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내가 나를 돌보는 정성이 나를 낫게 했다.

아픈 와중에 내 임계점을 넘는 경험은 너무 소중하다.

무기력함을 뚫고 하이킥을 날려야 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병이 아니라면 셀프 집밥은 최고의 만병통치약이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에도 몸을 일으켜

차근차근 밥을 짓는 일이 나를 살린다.


내친김에 재료만 사다 놓고 미뤄둔 수정과도 만들었다.

몸이 가벼워지니 손을 더 움직이고 싶었다.

친구가 수정과 만들기 쉽다고 자기가 만든 수정과 사진을 보냈길래

나도 한번 만들어 볼 참이었다.

병중에 수정과 만들기라니!

그런데 의외로 머리가 멍멍해서 누워있기보다는

생강 껍질을 벗기는 게 도움이 되었다.

계피와 생강이 끓는 달큼 쌉쌀한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웠고

그 향기에 왠지 익숙한 곳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흑설탕을 넣어 한 번 더 푹 수정과를 끓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내가 아픈데 남편이 아무것도 할 줄 몰라서 속상했다.

즐겨보는 유튜브 <희매몽>에선 남편이 요리사 수준으로 맛있는 걸 차려낸다.

요리를 재밌는 놀이처럼 즐겁게 만끽하기에 보는 사람까지 빠져든다.

그러더니 남편만의 요리 채널 <켄키의 아침밥>을 따로 만들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인간은 겨우 라면이나 끓이다니!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남편이라 나가 내 스스로 해 먹고 병마를 이겨내는

아주 놀라는 경험을 하게 됐다.


얼마 전 유튜브로 본 가수 김윤아의 양육 방식이 충격적이면서도 매력적이었다.

아들과 함께 가사 일을 분담하고 그걸 클리어하면 용돈을 주는 방식이었다.

설거지를 하면 2000원을 받는 식으로

자신이 한 노동에 따라 다른 액수의 돈을 받는다.

가격도 직접 협상해서 정하는데 손 설거지와 세척기의 가격도 달랐다.

부루마블 게임을 하듯 일상이 놀이처럼 느껴져 재밌어 보였다.

그런 아들은 맛있는 카레도 만들 줄 알고

집안일을 자기 손으로 돌봤다.

와 저렇게 여린 손끝으로 저걸 다 할 줄 알다니

나중에 커서 뭐가 될까 정말 기대가 됐다.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돌보는 기쁨’을 알게 해 주는 것의 가치,

이건 돈으로 환산이 불가하다.

경제독립보다 식사 독립이 먼저다.

지 스스로 밥을 차려먹을 줄 아는 사람이

지 스스로 돈도 버는 거다.

‘아이들을 저렇게 키워야 하는데’ 하며 감탄했다.

물고기를 잡아서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찐 사랑 아닐까?

모두가 이렇게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


자주 남편이 아들 같을 때가 있다.

나는 아직도 남편을 바꿀 수 있다는 헛된 꿈을 꾼다.

(갑자기 이모님이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린다)

그 가능성을 포기하지 못하고

틈만 나면 앉혀놓고 계속 무언가를 설명하고 타이르고 있다.

남편이 도덕 선생님 같다고 놀리지만 어쩔 수 없다.

다시 남편을 앉혀놓고 말한다.

“요리를 배우자.”

말로는 알겠다고 하는데 눈은 전혀 아니다.

남편은 먹는데 관심이 없는 종족이다.

웬만하면 배가 고프지 않고 뭘 먹자고 조르지도 않는다.

미국에서 깡마른 사람이라면 정말 의심을 해봐야 한다.

미국처럼 먹는 게 지천에 널렸고 살찌기 쉬운 곳은 없다.

그런데도 남편은 소말리아 난민처럼 깡말랐었다.

그땐 전혀 몰랐다.

그런 사람이랑 살면 뭘 먹을 때 설득해야 하는 피곤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을.

그런 그가 결혼하고 10킬로가 쪘다.

바지가 작아져서 불편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뒤에서 슬며시 악마의 웃음을 짓는다.

현재까지는 왠지 이 부분에선 내가 이긴 것 같다.

다음 목표는 요리 재미에 맛들려 셀프 집밥을 해 먹는 그를 보는 거다.

그건 내가 아플 때를 대비한 게 아니다.

언제든 자기 자신을 위한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미션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힘든 고비고비마다

결국 자신을 일으키는 건 스스로가 정성스레 차린 집밥이다.

내가 나를 뛰어넘어 본다는 거 진짜 진귀한 경험이다.

마치 게임에서 이번 판 다 깨부수고 한 단계 레벨 업 되는 기분,

나는 그걸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고작 아프면서 미역국 끓여먹는 게 무슨 대수냐 싶겠지만

나는 요상하게 기운이 솟는 그 감각을 남편에게 심어 주고 싶다.

만약 누가 아프더라도 서로에게 기대지 말고

셀프 집밥으로 스스로 병마 이겨내는 것, 이거 멋지지 않나?


아직 100프로 쾌차한 느낌은 아니다.

3번 정도 셀프 집밥을 먹고 나면 개운하게 나을 것 같다.

코로나 락다운으로 한번 무산되었던 샌프란 여행을 앞두고

걱정돼서 남편에게 물었다.

“아파서 못 가게 되면 어떡하지?”

“누가 우리 현진이를 막어

현진이가 나가 신다 길을 비켜라~(흥얼흥얼)”

요리를 배워야 한다고 조금 전까지 핏대를 올리던 나는

이런 장난에 놀아나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까먹고야 만다.


라면밖에 못 끓여도 갑자기 툭 터져 나오는 명랑함이 나를 웃게 한다.

남편이 던지는 피식 개그가 늘 있는 일이라 소중한지 몰랐다.

오늘은, 지금은, 이 순간은

남편만의 꾸러기 맛을 음미하고 싶다.

이건 그 무엇과도 대체 불가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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