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발로 만든 커피, 마셔봤어요?

1일 1공원 라이프

by 보리차

미국은 카드 쓰는 걸 참 좋아한다.

놀라고 칭찬하고 감탄하는 걸 온몸으로 즐기며 사는 사람들 같다.

마트를 가도 우체국을 가도 어마어마한 카드들이 내 눈을 압도한다.

심지어 홈쇼핑에서 핸드메이드 카드 키트를 판다.

손으로 하나 하나 자르고 그리는 모습을 보니

어릴적 크리스마스 카드 만들기 했던 추억이 생각났다.

어떤 마음을 '전한다'는 건 중요하다.

표현하지 않으면 그런 마음이 여기 있다는 거 모른다.

알면서도 그게 잘 안 되는 나 같은 인간도 있다.


나라는 인간은 손글씨 카드를 받는 걸 좋아하지만

쑥스러워서 대놓고 주는 걸 힘들어한다.

첫 책을 내고 지인들에게 책을 보낼 때조차

아무런 말없이 그냥 텅 빈 공백으로 보낸 인간이 나다.

카드 같은 걸 막상 쓰려고 하면

무슨 말을 써야 좋을지 말문이 막힌다.


나는 포틀랜드에 와서 공원 생활자가 되었다.

요즘은 날씨가 좋아서 1일 1 공원하고 있다.

어느새 내 일상의 중요한 루틴이 되었고

나는 그걸 공원 샤워라고 부른다.

공원 샤워를 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나만의 의식이 생겼다.

친구들에게 카드 쓰는 게 쑥스러운 나 같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아날로그 카드가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언어로 마음을 표현하면 된다.

<캐시워크>라는 어플을 켜고 산책을 하면 걸음수가 측정된다.

커피 한잔의 걸음이 완성되면

월급이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빠르기로

재빨리 스타벅스 커피 쿠폰으로 바꾼다.

그 순간 내가 이렇게 까지 생생하게 살아있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기가 차오른다.

하루에 만보를 걸으면 한 달에 두 잔을 만들 수 있다.

내 발로 만든 커피 쿠폰을 친구에게 보낸다.


선물을 주려다 오히려 선물을 받는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고 싶다.

하지만 오늘 채울 걸음을 생각하며 기어 나온다.

친구들아 너희는 모르고 있겠지만

게을러터진 니친구,

너네들이 나의 <1일 1 공원>을 지속 가능하게 해주고 있단다.

내 발로 직접 걸으면서 쌓아 올린 한걸음 한걸음이 커피 한잔이 된다.

친구가 사준 커피는 마셔봤지만

친구가 발로 만든 커피는 나도 안 마셔봤다.


다른 것도 있는데 왜 커피냐고?

자기만의 시간 확보다.

사람은 하루에 최소 2시간 이상

혼자의 시간을 보낼 때 행복지수가 높다고 했다.

치열하게 하루를 보내는 동지들에게

커피 한잔을 두고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라는 마음이다.


나는 그렇게 산책을 하면서 친구들에게 카드를 쓴다.

이 커피 한잔에는'오늘 안 힘들었어?'가 담겨있다.

남편이 내게 자주 하는 말인데

오는데 안 힘들었어? 글 쓰는 거 안 힘들었어? 더워서 안 힘들었어?

이 '안 힘들었어?'라는 말은 참 요상하게도 위로가 된다.


이걸 보내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 아무 날도 아닌 날에 보낸다.

스누피 만화에 나오는 카드처럼

일상에 그냥 툭! 하고 투척.

특별하진 않지만 마음을 빼앗기고야 마는 그런 순간을 좋아한다.

긴 메시지를 적어 보내는 식의 질척거림은 안된다.

스누피에 나오는 카드

혼자 있는데도 연결되는 느낌이다.

매일 걷는 같은 공원이지만 어제와는 다른 공기와 풍경이다.

같이 보고 싶은 풍경은 핸드폰을 꺼내 담아 둔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기에 만날 수 있는 것들을 기록한다.

매일 조금씩 채우는 내 걸음이 친구의 커피가 되고 휴식이 된다.

산책을 하면서 쿠폰을 보내는 이 멀티플레이가 내 인생의 소소한 낭만이 됐다.

그건 이 계절을, 이 순간을, 이 찰나를 같이 음미하자고 보내는 나만의 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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