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고 싶은 순간에 외치는 주문
맥시멀 리스트 남편이 또 뭔가를 샀다.
사촌 집에서 본 크롬캐스트를 사서 HBO로 요즘 핫하다는 <듄>을 봤다.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라 주인공이 걸어 다니면 조명이 따라다닌다.
티모시가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중간에 박차고 나왔다.
아이맥스로 봐야 재밌다는 걸 집에서 봐서 그런 걸까?
이런 대단한 세계관을 가진 멋진 영화보다
나는 솔직히 올리버 쌤의 소소한 브이로그가 더 재밌다.
요즘은 참고 기다려 큰 보상이 오는 거보다
지금! 바로! 여기! 내 것이 되는 작은 즐거움이 좋아졌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주문하는 에피소드가 올라왔는데
이건 내가 실제로 얼마 전에 겪은 일이라 뼈 때리는 공감이 됐다.
올리버 쌤 한국인 와이프가 톨 사이즈를 주문했는데 상대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다시 한번 톨이라 외쳤고 엄마가 당황한 걸 아는지 아기가 응앙응앙 하고 울었다.
그 아기처럼 얼마 전 나도 응앙응앙 울고 싶었다.
그깟 톨이 뭐냐 싶겠지만 이유를 모르고 거부당하는 굴욕이란
직접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톨 그란데 벤티 이것뿐인데 어떻게 톨을 못 알아들어?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거 아냐? “
톨 주문 대참사를 겪은 그날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다.
나는 내 발음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 사람을 의심했다.
그런데 충격적인 건 톨이 아니라 ㅌ얼이 맞단다.
얼에 더 힘주고 턱을 밑으로 잡아당기는 게 포인트란다.
남편이 아기한테 말을 가르쳐 주듯 내가 그걸 따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속에서 천불이 났다.
그동안 겪었던 내 흑역사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이름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썸머라고 했고 단 한 번도 알아들은 적이 없었다.
여름을 뜻하는 썸머를 말한 건데 컵에는 늘 싸머라고 적혀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썸머가 아니라 써멀이라고 발음해야 했던 거였다.)
급기야 썸머를 포기하고 노선을 바꿔 CHA라고 말했는데 컵에는 늘 CAT이 쓰여 있었다.
처음 배우는 것보다 잘못 배워놓은 게 더 힘들다.
이 모든 걸 조금씩 다 뜯어고쳐나가야만 하다니 도망치고 싶어 진다.
‘난 분명히 톨이라고 배웠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두 눈뜨고 사기당한 사람처럼 거대한 억울함이 차올랐다.
영어를 처음부터 제대로 배운 남편(이런 고민 필요 없이 사는 사람)과
돈 시간 에너지 들여 잘못 배운 내 인생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순간이었다.
“나 그동안 헛짓거리 한 건가?”
남편은 처음 미국 이민 왔을 때 겪은 온갖 굴욕 에피소드를 총동원해서 날 위로했지만
전혀 위로도 공감도 되지 않았다.
그런 나를 타일러 준건 그 브이로그에 달린 댓글 한 줄이었다.
어떤 사람이 매표원으로 일할 때 외국인이 평택을 변태라고 발음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걸 보고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아, 외국인의 발음이란 어디로 빠질지 모르는 삼천포 같은 거구나.’
남편의 그 어떤 설명보다 이 댓글 하나로 내 모든 분노와 노여움이 진정되었다.
아마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작은 영어 발음의 디테일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이.
누군가에게 내 발음이 변태가 될 수도 있다 생각하니
평택이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 보고 싶어졌다.
저절로 아주 미세하고 작은 것 하나까지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영어 발음으로 시작된 이 디테일의 감각이 내 인생의 태도까지 바꾸어 놓았다.
이방인은 변화를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
이 딴 거에 상처 받을 거면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자 마음먹었다.
매일매일 매 순간 영어 발음이 새롭게 고쳐질 수 있는 기회가 천지 빼까리로 널렸다.
애플이 셀프 리페어 시스템을 도입해
아이폰도 이제 스스로 고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복잡한 아이폰도 셀프로 고치는 시대에
발음하나 못고칠까 나자신아!
실컷 창피를 당하자!
실수가 내 재산이다.
지금은 이걸 차곡차곡 쌓아두는 시간이다.
내 몸에서 내뱉는 발음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니 듣는 것도 달라졌다.
예전에 들리지 않았던 작은 것들이 이제는 들리게 되는 신기함을 체험하고 있다.
사실 나는 디테일에 정말 취약한 인간이다.
한마디로 까다로운 것과 거리가 먼 스타일이다.
얼렁뚱땅 싸잡아서 일을 처리하며 살았다.
언어에 디테일한 감각을 작동시키니
맛에도 디테일이 생겨났다.
동시에 이방인의 작지만 확실한 기쁨을 포착해 냈다.
바로, 과일의 맛이다.
예전에는 내가 이미 다 아는 맛이라 생각했지만
디테일의 감각을 작동시키니
한국에서 먹는 포도나 사과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이곳의 햇살, 바람, 흙이 길러낸 고유한 맛이다.
요즘 최애는 코튼캔디 포도다.
샤인 머스캣과는 또 다른 달콤함인데 이름처럼 솜사탕 맛이 난다.
도저히 자연에서 만들어 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 판타지 한 맛이다.
허니 크리스피 사과는 아침마다 날 설레게 한다.
미국엔 정말 다양한 품종의 사과가 있는데
여러 종류를 전전하다 인생 사과를 만났다.
이건 내 인생 일생일대의 중요한 만남이다.
그 쫀득하고 아삭한 미친 식감이 모든 걸 잊게 한다.
그 어떤 시련과 고통도 아직 이 맛을 이기진 못했다.
영어가 아무리 날 짜증 나게 해도 이 맛 때문에 어지간 해선 도망 못 가지 싶다.
이 모든 변화는 내가 스타벅스에서 톨 사이즈를 주문하다 까여서 시작된 것이다.
스타벅스는 여전히 아메리카노가 맛이 없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스타벅스를 간다.
tall 발음은 이제 온전한 내것이 되었고
그건 앞으로 내 인생을 변화시킬
내 의지와 용기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