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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Jan 27. 2022

김밥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허기

김밥은 사랑이 없으면 바로 티가 나


한밤중에 김밥 먹고 싶을 땐 어떡하지?

그런 대비 같은 거 안 하고 이민 왔다.

그게 내 인생에 큰 문제가 될지 전혀 몰랐다.

김밥천국은 늘 도처에 널려 있었고

내가 이토록 김밥 없이 못 사는 인간이라는 걸 그땐 몰랐다.


한인마트의 김밥을 사 먹다가 화가 났다.

너무 맛이 없어서 문득 이딴 걸 돈 주고 사 먹다니,

아니 뭔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 마트 안에서 김밥을 만드는 사람은

한국 사람이 아닌 멕시코 사람이었다.

김밥은 김밥을 사랑하는 사람이 싸야 맛있다.

다른 음식처럼 레시피로 되는 게 아니다.

사랑이 없으면 바로 티가 나는 게 김밥이다.


나를 보필하는 지속 가능한 소울푸드


도저히 김밥이 먹고 싶어 미칠 거 같아서

내 손으로 재료를 사 와서 김밥을 만들었다.

이방인에겐 고국방문 시 꼭 먹고 싶은 메뉴 리스트가 있다.

시시 때때로 나 역시 미리 적어두곤 하는데

연희 김밥의 멸추 김밥이 내 마음 0순위다.

고작?이라고 놀릴 테지만

진미 간장게장과 박빙으로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한

나에겐 아주 화려한 메뉴다.

그 멸추 김밥을 생각하며 김밥을 만들었다.

막상 흉내 내서 만들어봤는데 그 아는 맛이 안 나서 맛이 없었다.

오히려 로컬푸드인 오레곤 송이를 넣었더니 새롭고 더 맛있었다.

김밥의 최고 매력은 무한대로 변주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가 어디에 살든 지속 가능한 소울푸드고

난 김밥만 쌀 수 있다면  어디서든 행복할 인간이다.


워낙 손이 많이 가서 시작이 꺼려졌지만

김밥을 싸면서 나를 위해 이렇게 정성을 다해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한국에선 싸고 쉽게 사 먹을 수 있으니까 김밥을 직접 만들 일이 없었다.

미국에 와서 김밥을 싸면서 새로운 감각을 알게 됐다.

아침마다 우편함을 확인해도 이민국에서 와야 할 내 인터뷰 레터는 없고

백신으로 인한 부작용은 산불처럼 번져 간다.

도대체 지금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불안과 공포가 나를 흔든다.

그럴 때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쌀 수 없는 김밥을 싸면서

나를 보필하는 감각이 생겼다.


누구나 김밥 하면 떠오르는 사람 한 명쯤 있지


그런 내게도 김밥과 함께한 흑역사가 있다.

누구나 김밥만 봐도 토할 거 같던 시절이 있다.

토플을 준비하던 시기 원하는 점수를 한정된 시간 안에 따야 했기에

그 당시의 식사는 모두 김밥으로 대동단결이었다.

학원 수업이 끝나면 바로 미리 시킨 김밥을 테이블에 놓고

조별 스터디에 들어갔다.

급했고 바빴고 빨리 끼니를 처리해야 해서 전투적으로 먹었다.

정말 전쟁을 치르듯 코로 김밥을 넣었고 입엔 소화제를 쏟아 넣어야 했다.

결국 유학은 어이없는 이유로 못 가게 되었지만

김밥을 먹으면서 내 인생 터닝포인트를 통과했던 기억은 생생하다.

뭔가 질리게 김밥을 먹는 구간을 지나면 고비를 넘기는 느낌이었다.


막내작가 시절엔 늘 차에서 스탠바이 하는 연예인을

끌고 나와 촬영장까지 데려와야 했다.

그런데 차에서 끝까지 뭉그적거리는 그 연예인 때문에 나는 자주 곤란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차에서 김밥을 먹느라 그랬던 거였다.

물론 그 연예인은 잘못이 없다.

밥은 커녕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미친 스케쥴을 짜놓은 방송국놈들이 문제였다.

아무튼 그때 차에서 나는 김밥 냄새는 모든 걸 이긴다 라는 쓰라린 통찰을 얻었다.

티브이에 나오는 그 연예인을 볼 때마다 김밥이 떠오른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돌봤기에 이 바닥에서 살아남았나 보다 싶다.

역시 나를 돌보는 것엔 김밥만 한 게 없는 건가?

김밥을 먹으면 어디에 있든 얼마큼 힘들든

나라는 인간은 잃지 않을 것 같다.


엄마의 김밥은 설명하기 힘들어

김밥엔 그 사람만의 시그니처가 있다.

손가락 지문처럼 그 사람만의 고유한 매력과 특징이 묻어난다.

영화 <헬로 고스트> 보면 시금치 대신 미나리가 들어간 김밥을 먹고

그 김밥을 자기 엄마가 만든 건지 단번에 알아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만든 김밥은 단번에 알아차리기 힘들다.

제대로 설명할 도리도 없다.

분명 간이 슴슴한데 요상하게도 자꾸만 계속 먹게 된다.

그래서 돈 주고는 사 먹을 수도 없고 구현하기도 힘들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엄마의 평범한 김밥은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반짝였다.

 입에 항상 벅찬 사이즈였기에 최선을 다해 씹었던 기억은 선명하다

그래서일까? 조금 힘겨운 도전을 해야할때마다 불쑥불쑥 그 김밥이 떠오른다.


되돌아보니 내가 김밥을 쥐고 다녔던 시기는

인생에서 긴 터널을 빠져나갈 때였다.

진짜 도망치고 싶은 순간,

그런데 뒤돌아 봐도 똑같은 터널의 어둠이 있어 다시 돌아가도 애매한 순간,

버티는 거 말고는 답이 없는 순간,

나는 김밥을 손에 쥐고 앞으로 조금씩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 김밥은 나를 서포트해줬다.


오로지 김밥만이 할 수 있는 것

인생에서 김밥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허기가 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마치

‘모든 일을 멈추고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에 시간과 정성을 다 쏟으시오 ‘

라고 누가 말하는 것 같다.

김밥에겐 요상한 능력이 있다.

맛있는 김밥을 먹으면 믿도 끝도 없이 사랑받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내 손으로 고슬고슬한 밥을 짓고 바삭한 김을 펼쳐서

좋아하는 것들을 차근차근 올리고 단단하게 만다.

아무리 그러한 듯 역시 남이 만들어 주는 김밥이 젤 맛있다.

얼른 한국에 가서 메뉴판에 있는 모든 김밥을 다 시켜놓고 그 황홀함에 둘러싸여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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