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껴 쓰는 나와 시원하게 쓰는 누나
어릴 적 아빠가 용돈 2,000원을 주셨다.
나는 그 돈을 아끼고 또 아껴서 썼다. 지갑에 넣어두고 꼭 필요할 때만 꺼냈고, 거스름돈이 생기면 동전 칸에 차곡차곡 보관했다.
무엇을 하나 사려 해도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아 오래 고민하곤 했다. 어린 마음에도 ‘돈은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았다.
반면 누나는 달랐다. 아빠에게 3,000원을 받았는데도 늘 모자라다고 했다. 금세 다 쓰고 나면 내게 와서 빌려 갔다.
“나중에 갚을게”라는 말로 나에게 빌렸갔다. 그 돈을 또 나는 기어이 받아냈다. 지금 돌아보면 사소한 금액이었지만 어린 나에게는 누나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이 큰 사건이었고, 그것을 독촉하는 것도 중요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흘렀다.
어른이 된 남매는 여전하다. 나는 여전히 돈을 계산하고 아끼며 살고 있다. 모으는 습관은 생겼지만, 정작 쓰는 순간마다 마음이 무겁고 늘 팍팍하게 산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대로 누나는 여전히 시원하게 쓰며 살지만, 적당히 잘 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먼저 계산하고, 여행에서도 크게 쓰지만 삶은 여전히 유지된다.
그 차이를 곁에서 보며, 아껴 쓰는 습관만이 꼭 풍요로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종종 깨닫게 된다. 나는 돈을 모아도 불안하고, 누나는 돈을 써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결과다. 모으는 내가 늘 여유롭다고 느끼지 못하는 반면, 쓰는 누나는 여전히 즐겁게 살아간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살아가는 데 팔자라는 것이 있나 보다. 아껴 쓴다고 반드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잘 쓴다고 반드시 가난해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각자의 방식 속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다. 나에게는 모으는 방식이 맞았고, 누나에게는 쓰는 방식이 맞았을 뿐이다.
옛 어른들은 이런 경우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다 팔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