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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산의 일각?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

빙산의 일각만 보고도, 여러 빙산 중 그 빙산을 선택했다는 건.

by bbulddae


어제도 무알콜맥주를 사다놓고는 아이를 재우다 곯아 떨어졌다. 남편과 '오랜만에 회식이다!'하며 퇴근길 무거운 짐에도 불구하고 낑낑대며 사다 나른 무알콜인데. 이제는 아이 재운 후 TV켜놓고 홀짝이는 간이회식도 어려운 나이와 체력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무알콜이라니! 언제부터인가 나는 '유알콜' 주류를 아주 꺼리게 되었다.


'왜 저런 걸 돈주고 사먹는거지' 했던 무알콜맥주를 내가 즐겨 사먹고 있다.....예전의 나를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예전에 무알콜맥주를 보면 '임신부를 위한 것인가-' 했었는데, 나는 임신해서도 수유 중에도 무알콜 맥주를 마시지 않았다. 차라리 안 먹고 말지 임신까지 해서 굳이 무알콜을 찾아 마실 것 까지야. 하며 그 시기를 지나왔다. 딱히 술이 생각나지도 않아 '참았다'는 말도 무색하게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무알콜맥주를 먼저 사들고 온다. 이유인즉슨 두통과 체력저하, 숙취 때문이다. 다음날이 너무 피곤한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 한 주가 내내 너무 피곤하고 하루 종일 소화해야 할 미션 수행에 적지않은 방해가 되어서다. 남편도 같은 이유로 주량이 확 줄어들다 못해 쪼그라들었다. 둘다 워크숍도 회식도 없다시피한 직장생활 중이라, 이따금 기분을 내고싶을 땐 그래서 무알콜을 준비한다. 안주는 언제나 나초에 치즈, 살사소스. 이것만 있으면 천국이 멀지 않다.




예전에는 정말, 부어라 마셔라 잘도 마셨다. 예전이라 하면, 현직 기자로 일할 때를 말한다. 기자라면 응당. 그렇게 마시고 다녀야 하는 줄 알았다. 미디어가 심어준 고정관념은 얼마나 무서운가. 나는 기자를 하겠다 결심하고 내 주량이 세다는 점에 정말 많이 감사했다. 특히 아저씨 뻘 취재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어느 자리에나 초대받았고, 내가 가지 않은 자리에서도 내 이름이 많이 회자됐다는 말에 흐뭇하기까지 했다. 그정도로 난 많이, 잘 마셨다. 그리고 웬만한 정도까진 취한 티를 내지 않아 내 주량은 더더욱 세 보였을 거다. 웬만한 남자 기자들보다 잘 마시고, 잘 놀고, 잘 돌아가 늦은 밤 기사 마감까지 하고 쓰러지길 여러번. 내 몸이 속으로 축나는 줄 모르고 젊은 시절 참 방탕하게 살았다.


그런데 그 땐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특히 여자로서 기자일을 하기 위해 나는 더 열심히 마시고 열심히 일했다. 취한 티를 더더군다나 내지 않았다. 그런 자리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 안에 심어진 '기자'란 일은 그래야 하는 일인 줄 알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그렇게 당차고 억센 기자들이 꼭 특종을 물어왔으니까. 기사를 잘 쓰고 사람을 많이 알고 다니는 만큼, 술까지도 잘 마시고 싶었다. 빙산의 일각인 그 몇가지들만 보고 나는 '기자는 멋있다. 내 인생을 걸만 한 일이다. 내가 기자가 되었으니 응당, 이래야 한다'고 은연 중 세뇌됐을 거다.


막상 기자일을 10년 이상 해보고 느낀 건, 술 마시는 건 그 일의 빙산의 일각의 먼지만큼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부분이라는 점이다. 기자라는 직업의 본질은 '잘 듣고, 오해하지 않게 이해하고, 오해 없이 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을 보고 듣는 거다. 내 안의 편견으로 사건을 단정짓지 않기 위해 말이다. 기자는 글쓰는 일이라기 보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어떤 면에서 영업사원과 아주 많이 유사하다. 하지만 영업과 다른 점은 내 업무성과의 목표에서 드러난다. 구매능력이 큰 사람보단 그렇지않은- 약자 편에서도 사건을 인식해야 하며, 힘있는 명제보단 중요한 명제에 더 비중을 둬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이 쉽지 않듯, 기자도 그저 술 얻어먹고 노가리나 까며 다니는 헐렁한 직업은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






처음 직업을 정할 때 나는 불안했다. 그 직업의 본질과 업계를 모른 채 (관계자가 아닌 대중에게 알려진) 표면만을 보고 직업을 선택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무모한? 짓이냐-하는 불안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을 다 경험해보고 택할 수는 없었고, 모든 결정을 100%의 정보를 수집해놓고 결정할 수도 없는 일. 불완전한 채로 내린 결정에 나는 일생을 걸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불안이 어쩌면 정말 의미있는 불안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표면'만 보고서도 그 일을 선택했다는 점- 그 일이 주는 화려한 면, 아주 적은 포션을 차지하는 '의미'만을 보고도 나는 이 일을 하고싶었다는 것 말이다.


기자라는 일이 주는 직업적 환상, 현장을 누비고 사건을 파헤치고, 기사로써 약자를 도울 수 있다는 - 나를 포함한 대중이 인식한 직업관이 바로 - 직업에 대해 많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도 내가 하고싶었던 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세상에 그 직업의 밑바닥까지 모든 걸 알고 선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따져보면 모든 선택이 그렇다. 나는 이 사람과의 결혼, 이 직장, 육아 방식, 하다못해 오늘 먹을 점심 메뉴까지도 100% 알고 선택한 적이 없다.


결국은 일이든 무엇이든, 빙산의 일각만 보고 판단한다. 어쩌면 그 빙산의 일각에 그래서 그 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내 결혼식 주례까지 해주신, 고등학교 시절 역사 선생님과 선생님 자제분에 대해 대화한 적이 있다.(참고로 나는 졸업 후에도 선생님과 1년에 한 두번을 꼭 만나 맥주를 마셔왔다. 내 인생의 스승이라 할 만한 분이다) 선생님 당신은 교사라는 선택을 할 때 사범대를 나와 아무 고민없이 직진하신 인생이라, 자식이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새삼 걱정스러우셨던 거다. 대화 중 그 말이 나왔다. 나 역시 미대를 가고, 기자를 하겠다 맘 먹은 모든 선택의 과정을 선생님은 알고 계셨는데, 직업적 방황?이 적지 않았던 내가 이제 선생님께 도움말을 드릴 정도로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에 감개무량하며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는 유명 일간지 문화부 기자가 되고 싶어 언론고시를 시작했고, 방송 4사 모두 떨어지며 시련을 겪었지만, 그 결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전문지 기자로 일(하고 있던 때였다)하지만, 일이란 그런 것 같아요.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 업계의 탑이 아니라도,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에 머물고 말지라도 즐거움을 느끼고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더라고요. 누구나 그 일의 탑클래스를 보고 그 일을 하고싶다 말하죠. 하지만, 진짜 좋아한다면, 정말 고민 많이하고 관심있는 만큼 많이 조사하고 알아보고 한 선택이라면 - 탑클래스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일이 즐거울 거예요. 제가 그렇거든요. 저는 이 일이 재밌어요. 조선일보 기자나 MBC PD가 아니어도요.


아드님도 잘 할거에요. 만약 그 바닥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그렇게 방황하고 고민하며 선택했다면 그 자체로 일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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