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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때 글을 쓰지 못한다

햇사과, 올해 첫 사과인 '홍로'가 배송됐다

by bbulddae

기자로 일할 때 내가 하루 집중해 한 편의 글을 쓰는 횟수는 2~3편. 보도자료 처리와 같은 집중도 50% 이하로 처리할 수 있는 기사 말고, 내가 얼개를 잡아 제목, 리드, 본문, 마무리, 교정까지 고도로 집중해 써내야 하는 기사의 숫자.


지금은 홍보직으로 옮겨 '집중해 써내야 하는 글의 수'가 하루 5편 이상이 되었다. 실은 회사에서 요구하는 건 더 많지만, 내 체력이나 뇌 용량이 이 이상은 감당하지 못하기에 하루 5편까지는 쓰자고 다짐다짐 & 1년 간 트레이닝한 결과다.


그러면서 전에는 없던 '글쓰기 습관' 혹은 '루틴'이 생겼다.


그 사이 내가 나이를 먹은 탓도 있고, 체력이 약화된 탓도 있고, 아이 등하원과 케어를 병행하며 일을 해야 하는 탓도 있지만.


여튼. 전과는 다르게 특정 조건이 만족되지 않으면 집중이 되지 않고 글도 써지지 않는다.


우선 나는.


1. 손톱이 길면 글을 쓰지 못한다.


2. 커피를 안 먹으면 글을 쓰지 못한다.


3. 귀에 이어폰을 꽂지 않고는 글을 쓰지 못한다.


4. 마음이 불편하면 글을 쓰지 못한다.


5. 배가 고프면 글을 쓰지 못한다.


4번 관련해서는 소설가 김영하가 소설 집필에 들어가기 전 가족, 친척 등 지인 중 불편한 관계가 있으면 받느시 사과를 하든 갈등을 해소해 마음에 거리낄 게 없게 만든 후 쓰기에 몰입한다 했는데- 그때만 해도 그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내가 그렇다. 가족과의 작은 언쟁이라도 있으면 그게 신발 속 돌멩이처럼 마음에 계속 굴러다니며 작은 스크레치를 내 글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작은 갈등조차 그냥 무시하지 못할 만큼, 김영하 당신만큼 나도 그새 나이가 든 듯하다.


오늘의 나는 코로나 감염 투병 후 6일이 지난 날로,

쇄약해졌는지 집중도가 여느날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데다,


1. 손톱이 길고 2. 커피를 때려부어도 머리가 멍하고 3. 귀에 이어폰을 꽂았지만 4. 아빠 신발 주문건이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않아 껄끄러운 마음에 5. 점심을 걸렀더니 몹시 배가 고파


현재. 오후 3시 49분. 아이 하원을 약 30분 남겨두고도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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