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도망치듯 나왔다. 실로 오랜만의 백수가 되었다.

그리고 글쓰기를 다짐한다.

by bbulddae

말 그대로 도망치듯 나왔다. 죽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앞에 떨어질 일이 지금까지 '죽을 것 같은 수준'의 족히 두 배는 넘어 보였다. 기가 질렸다. 뒤가 어떻게 되든, 나는 못하겠다 싶어 얼른 그만두겠다 말했다. 대부분은 만류했지만, 나에게 매번 일방적으로-왜 지금, 이 시점에 갑자기 이걸 해야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지는- 일을 던지는 팀장은 "회사는 개인의 사정을 봐주는 곳이 아니다. 지금 수준이 힘들다고 하면 나는 당신에게 좋은 평가를 줄 수 없다"며 다행히 정떨어지는 답을 주었다. 미련없이, 육아휴직이고 실업급여고 - 좀 더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결정할 여유 없이 얼른 그만두었다. 그만두겠다 마음먹은 날 밤부터 나는 놀랍도록 깊이 잠들었고, 먹은 게 잘 소화되었으며, 24시간 내내 두근대던 심장이 안정화되었다. 아. 비정상이 정상으로 돌아오는구나. 진작 그만뒀어야 하는 거였구나 - 내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내내 2개월 남짓,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아이 돌보고 집안일 하는 것 외에는 무엇도 하지 않고 머리를 비웠다. 난생 처음 쇼츠를 보며 웃었고, 혼자 먹는 점심은 라면을 끓여 웹툰을 보며 후루룩 씹어 삼켰다. 이런 행복이 있었다니, 돈이 좀 없으면 어떠냐. 평생 누려보지 못한 호사를 - 1시간의 운동과 2시간의 독서, 2시간의 잉여짓으로 만끽했다. 일하는 남편에게 미안하리만치 - 나 혼자 행복해서 미안했다.


그리고 3개월에 접어드니, 이제 3개월 만에 노트북을 펴고 뭔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실천으로 옮겨졌다. 이제는 비로소 내가 왜, 어떤 경위로 '내 인생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던 절박한 기회를 스스로 그만두었는지. 그 과정에 내가 어떻게 망가져갔는지, 그럴 수 있었던 결정적인 가스라이팅은 어떤 형태로 날 독촉했는지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불어 과거에, 아니 지금까지 무의색에 각인되어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그 사건들에 대해서도 찬찬히 써보자고 마음 먹었다. 너무 무섭고 무서워 지금껏 제대로 입밖에 내지도 못했던 일. 나를 죽음의 다짐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사건에 대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제외한 내 시간을 -잉여짓과 함께 - 기록과 푸념, 하소연, 자기합리화와 변명으로 풀어내보고자 용기가 생겼다. 그제 읽은 책에서 건져낸 단 한 줄 "쓰는 동안 괴로웠지만, 괴로운 만큼 치유되는 게 글쓰기"라던 어떤 작가의 말에 용기를 얻어 - 정말 치유가 될지 , 이렇게 늙고 닳은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글쓰기는 치유의 통로가 될지. 일단 써보겠다. 우선, 주말 동안 육아 좀 하고나서. 담주부터 스따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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