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정각이 되면 근태를 기록하는 팝업이 뜬다. 18:00:05에 누르는 건 너무 양심이 없어보이니, 서류와 펜을 정리하고 신발을 갈아신으며 18:01:00가 되길 기다린다. 퇴근 버튼을 누르는 순간,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출입구를 향한다. 내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이 없지만 '내일 뵙겠습니다~' 라는 나만의 퇴근 의식을 치르고 서두른다. 밖으로 통하는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훅 끼치는 습하고 더운 공기. 이제. 퇴근이다.
지금 회사에 출근하기 전엔 어린이집 기본보육이 끝나는 4시부터 10시에 잠들때까지 6시간이 좋든지 싫든지 어떻게 되었든 아이와 엉겨붙어 있어야 했다. 야외에서 놀면 시간이 빨리 갔지만 집에 들어와 저녁 준비하기 벅차고 몸이 피곤했다. 그렇다고 너무 덥거나 비오는 날 집에서만 놀면 아이는 지루해하고 시간이 더디갔다. 어떤 상황에서든 평일 오후부터 저녁까지의 6시간은 이래저래 힘에 부치는 시간이었다.
출근을 하고부터 하루는 회사 업무시간을 기준으로 흘러간다. 6시 퇴근해 아무리 서둘러도 집에 도착하면 6시40분. 그때부터 아이와 마냥 놀 수는 없는 게, 하루 중 유일하게 세 식구가 같이 제대로 된 밥을 먹는 시간이니 국이라도 새로 끓이고 아이가 좋아하는 콩나물이라도 무치게 된다. 7시, 7시반부터 전쟁처럼 밥을 먹이고 아이가 남긴 밥을 몇 숟갈 내 입에 넣고. 아이아빠가 아이를 씻기는 사이 설겆이와 청소기 돌리기, 어린이집 가방 챙기기를 해내야 한다. 그래야 수월하다.
어제는 아이가 잠들고 시계를 보니 밤 10시40분이었다.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은 7시 다되어 집에와서 3시간 반 남짓이었다. 그나마 3시간 반 동안 내가 아이랑 얘길 하고, 아이가 연기하는 슈퍼히어로에 맞춰 악당 역할을 해준 건 얼마만큼일까. 단 30분도 안 되었던 것 같다. 아이가 '엄마랑 같이 한 때'가 하루 중 얼마가 되는지를 생각하면 더욱 아찔해진다. 잠깐. 숨 좀 돌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아이 얼굴을 보고 대화라는 걸 하고는 있는걸까.
죄책감은 인간이 가진 감정 중 최하위권에 속하는 부정적 감정이란다. 감정마다 고유의 에너지 지표가 있는데, 죄책감은 에너지가 거의 없이 오히려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감정이라는 육아전문가의 말이 기억난다. 그리고 인간은 저마다 고유의 '주 감정', main emotion이 있는데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을 느끼고 계속변화하지만 그 중에 그 사람의 기반이 되고 성격을 형성하는 주요한 감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무서운 사실은, 이' 주 감정'이 생후 2년 남짓 됐을 때 정해지고 그걸 정해주는 건 주양육자라는 것이다.
일을 시작하니 이렇게 내 브런치에 글도 다시 쓸 수 있게 되고, 하루 단 한끼라도 조용히 앉아 먹을 수 있게 되어 좋다. 무엇보다 월 일정금액의 급여가 들어오고 남편 월급을 한 움큼씩 잡아먹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회사가 대신 내어주니 좋다. 이밖에 좋은 것들이 이렇게나 많아졌는데,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것이 '죄책감'일 것이고, 이 죄책감을 기가막히게 알아보는 아이는 매일 퇴근해서 돌아온 나에게 심통이 나있다. 언제쯤 되면 죄책감 대신 기쁨과 반가움으로 퇴근할 수 있을까. 내 주 감정이 혹시 죄책감인 건 아닐까. 이렇게 글 한편을 써서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진다면, 주구장창 하루에 열 개씩 1년 내내 써재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