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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Aug 24. 2023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설마 설마. 에이 설마...


35개월인 아이가 이 말을 어디서 배웠는지 요즘 입에 달고 산다. "ㅇㅇ아, 밥 먹자." "에이 설마~~" / "ㅇㅇ아 지금 이모가 오고 있대!" "에이 설마~~" 아무리 화가 났더래도 푹 하고 웃을 수 밖에 없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8월24일이라 했을 때 얼마나 가까이 있는 날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어제 저녁 밥을 먹는데, 24일에 방류한다면서요?라는 내 말에 남편이 말했다. "내일. 내일이잖아요."


그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건을 현실감있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에이 설마, 진짜 버리겠어? 오염수라매, 그걸 바다에 버린다고? 다 죽자는건가? 설마, 버리겠어? 설마.


오늘 아침에 사무실에 들어와 시계를 보니 8시 45분. 네 시간 후면 바다에 방사능물이 쏟아진다? 믿겨지지 않았다. 일본이야 그렇다 쳐도, 전세계가 그걸 내버려둘 리 없잖아. 병신같은 우리나라야 입에 올릴 가치도 없고, 선진국들이. 세계 경찰(이라고 자타공인하는)인 미국이 가만히 있겠어? 유럽이 그걸 그냥 둘리 없어. 그건 다 죽는건데 용인할 리 없.


점심을 먹고 간단한 이메일 하나를 처리하고 나니 1시가 넘었다. 뉴스를 열어보니 방류가 시작됐다고 다. 몇백 톤의 오염수가 바다로 쏟아지고 있다고 다. 바다에 서서 그 광경을 보지 않아서인지, 보도된 뉴스 어느 것 하나 실제 현장 사진 한 장이 없어선지 믿겨지지 않았다. 그저 하얀 모니터에 떠있는 까만 글자로 읽혔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얼마전까지만 해도 걱정 없이 아이와 뛰어놀았던 강릉 바다가, 아이가 좀 더 크면 여행가 맛있는 걸 많이 먹자고 약속한 남해 바다가 이제는 방사능에 오염될 거라 생각하니 현실감이 없었다.


우리는 얼마나 더 병신같은 짓을 봐야 대통령 탄핵에 나설까. 방사능 오염수 방류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가 현실이 됐는데, 뭐 하나 큰 일 없이 자연스레 용인되고 있는데. 앞으로 우리 삶이, 우리 먹거리가, 물이 기반이 되는 모든 행동이 영향을 받을텐데 오염수 방류가 이렇게 아무 저항 없는 듯 용인되는 수순이라니. 내가 사는 이 사회가 오히려 현실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일상은 평온하고 다들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만 바라볼 뿐 누구 하나 이 큰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나만 그런가. 세계가 발칵 뒤집어질 일인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다들 방사능 오염수가 '괜찮은 건가'. 2년 후면 일본이 방류한 물이 전세계 바다에 퍼질 거라는데,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어도 되는건가. 그저 어제처럼 똑같이, 전화받고 이메일 처리하고,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있어도 되는건가. 어제랑 똑같이 업무 메일이 들어오고 핸드폰으로 광고 카톡이 오고, 스팸문자가 오는 걸 보면 다들 살던 대로 어제랑 똑같이 살고있는 것 같다.  나는 다가올 미래가 걱정돼 미치겠는데, 우리 아이가 살아갈 날들이 걱정되는데, 나만 이런건가. 혼란하고 혼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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