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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Sep 22. 2023

세상엔 한가한 사람이 참 많구나

이런 운치있는 골목이 아직도 서울 한복판에 남아있다니, 놀라운걸

요즘 쏟아져나오는 뉴스를 보면 눈쌀을 찌푸리다가도 '한가한 사람 참 많네' 싶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그 삶을 파괴하기 위해 자기 시간을 쪼개고, 계획하고, 준비해서 실천하는 사람이 사회 곳곳에 속속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자기 아이를 맡긴 선생님을, 헤어진 연인을, 전에 다니던 회사 동료를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결과는 같다. 결과는 언제나 피해자가 발생하고, 최악에는 피해자가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 죽음에 이르도록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


  

나도 경험이 있어 안다.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무서운지를 말이다. 당하는 사람은 이 새끼가 세상 끝까지 따라올 것 같고, 이 일이 영원히 반복될 것만 같다. 연락처를 바꾸고, 직장을 옮기고, 아무리 흔적 없이 이사를 가도 언젠가를 나를 찾아 다시 쫓아올 것만 같은 공포를 느낀다. 그 새끼를 죽일 자신이 없어 내가 죽고 싶었다. 이렇게 사는 건 너무나 괴롭고, 이 괴로움을 내가 앞으로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서였다.


그러면서도 의아했다. 아무리 한 때 좋아했던 사람이라지만, 그 사람을 괴롭히려고 회사까지 그만두고 온 종일 그 주위를 맴돌며 주변인을 탐색하고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공포를 느끼게 할지 고민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한 인간이, 다른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해 이렇게까지 정성과 노력과 시간을 들인다는 건 당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헤어지자는 말을 들으면,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다신 연락하지 않고 보란듯이 잘 살려 노력할텐데. 자신의 일상과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자기 인생을 망치면서까지 헤어진 사람을 파괴하려 드는 그 심리는 뭘까.



페트병을 자르다 손을 다친 아이를 핑계로 몇 년 간 담임선생님을 괴롭혀온 학부모의 이야기를 알게 되자, 이제는 극복했다 '믿고 있던' 옛날 그 일이 떠올라 괴롭다. 공적자금으로 두 번이나 치료비를 보상받았으면서 계속 연락하고, 군에 입대까지 한 선생님을 찾아갔다니, 이 쯤 되면 이미 아이의 부상은 핑계였을 것이다. 차라리 애엄마가 아이 선생님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하는 게 더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잊을 만 하면 화가 치밀고 아이 손을 볼 때마다 다시 복수심이 불타오른 걸까. 군 복무지까지 알아내 연락을 취하고, 제대 후 선생님으로 복귀하자 다달이 피해보상금을 받아냈다는 부분에 이르자 이젠 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생판 상관 없는 나까지 이 뉴스를 알게 한 인터넷이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괴롭다. 나쁜 뉴스는 그 자체만으로도 부정적이지만, 보는 사람의 나쁜 기억까지 들춰낸다. 귀막고 눈감고 살 수 없으니, 이것도 언젠가 적응이 될까.


나는 내 삶을 살기에도 빠듯한데, 나에게 상처준 사람은 얼른 잊으려 노력하고 아무리 원망스러워도 어쩌지 못하고 상대방 대신 내 속을 썩히는데. 그 상처를 해결하느라 나는 내 삶을 살기에도 너무나 벅찬데. 어떤 에너지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게까지 최선을 다 해 긴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 있게 한걸까. 이해할 수 없는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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