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 목요일부터 가을바람이 불더니, 추석.
쨍하고 깨질듯한 햇볕에 물기 없이 바짝 마른 하늘.
봄비가 오면 사람들이 옷을 한 겹씩 벗고, 가을비가 오면 한 겹씩 입는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해준 말이 이상하게 오래토록 기억이 나는 건, 아마도 내가 그 사실을 직접 경험한 기억이 강렬해서일 거다. 봄이 오는 건 몰라도 가을이 오는 건 매년 날짜를 짚을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구분이 된다.
엇. 가을이야. 오늘부터 가을이야 - 라는 메모가 매년 9월의 어느 날에 적혀 있다. 올해는 지난 주 목요일 아침부터 가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는데 어제와 다르게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지고 코가 막혔다. 어릴적 축농증을 앓았던 내 코는 습도에 무척 예민한데, 그날 아침엔 자고 일어나니 코가 건조했다. 밤새 습도가 5~10%는 떨어진 것 같았다. 이렇게 가을이 시나브로가 아니라 예고 없이 갑자기, 확, 한꺼번에 왔다.
오늘 아침 출근하는데 기분이 여느 월요일과는 달랐다. 오늘 아이의 등원룩은 지난 여름에 새로 사둔 한복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설과 추석 행사를 꼭 하는지라, 팔과 다리가 훌쩍 길어진 아이를 보고 입히고 싶었던 인디언핑크 빛 한복을 미리 쟁여둔 터였다. 생각한대로 입히니 내가 새 옷을 입은 것보다 뿌듯했다. 한복을 입혀 등원시켜달라는 어린이집 알림장을 보고, 오늘 아침에서야 나는 추석연휴가 이번주부터라는 걸 알았다. 그럼 이번주엔 하루이틀사흘만 출근하면 되고, 아이도 어린이집에 사흘만 데려다주면 된다는 걸 알고 나니 오늘이 월요일이 아니라 금요일처럼 느껴졌다. 매주 5일을 출근하는데, 3일은 껌이지 뭐. 마실가는 기분으로 회사에 들어왔다. 여느때와 같이 상사의 짜증과 여느 직원의 하소연이 가득한 업무시간이 오늘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흘러갔다. '희망'이란 이렇게 강력하구나. 가까운 시일 내에 앞둔 연휴가 주는 여유와 설렘. 비록 시댁으로 가는 귀성길과 6일 동안 하루 삼시세끼를 차려 식구를 먹여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을지언정 '출근하지 않는 날'은 이렇게나 고마운 존재다.
추석연휴에 대한 기대감으로 서론이 길어졌지만, 추석이 다가오는 가을 날씨는 언제나 나에게 어릴 적 큰집가는 길을 떠올리게 한다. 빨간색 체크 남방을 입고 서늘해진 가을공기를 느끼며 큰집에 추석쇠러 가는 길. 지금은 연을 끊고 살 정도로 큰집과는 사이가 틀어졌지만, 어렸을 때 큰집은 일년에 두어번밖에 못보는 사촌 언니 오빠 동생들과 재밌고 신나게 놀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엄마를 포함한 '엄마들'이 제사음식 준비하시느라 바쁘고 어린애들은 전부 나가서 아무거나 하고 놀아도 즐거웠다. 터울이 많이 지는 언니오빠들 방에 들어사 화장품이며, 브로마이드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어두워지면 대장 격인 사촌오빠가 폭죽을 사와 터뜨렸는데, 바닷가도 아닌 동네 골목에서 난데없이 작렬하는 폭죽소리에 이웃집 항의도 적지 않았다. 한바탕 놀고 들어와 다 익은 부침개를 몰래 집어먹는 것도 별미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엄마들, 아빠들, 언니오빠동생들 다 모여 송편도 빚었다. 나는 눈사람 모양.별 모양, 강아지 모양 송편을 만들다가 엄마에게 혼이 났고, 그래도 기왕 만든 것이니 쪄서 나온 요상한 송편들은 모양이 무너져 나를 속상하게 했다.
늘어놓자면 끝도 없는 어릴적 명절 풍경. 노천명 시인의 수필 '여름밤'이 강화 외갓집 어렸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만큼, 가을 공기는 어릴적 친척집과 맞닿아있다. 나는 그런 명절기억이 있는데, 우리 아이에게는 친척이 가득한 명절 기억을 만들어주지 못하겠구나. 형제자매가 적지 않은데도, 비혼주의 언니와 유럽에 사는 여동생,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남동생을 생각하면 내 아이의 '친척 형제'는 전무하고 앞으로도 전무할 것 같다. 대신 내가 더 많이 놀아줘야지. 한복도 많이 입히고 송편도 많이 먹여줘야지. 10분 후 퇴근하면 얼른 뛰어가 우선은 번쩍 안아서 많이많이 보고싶었다고 말해줘야지.